프롤로그

약이 없는 약국, 푸드파머시 이야기

by sarah

식탁에서 만난 세상

‘푸드파머시’는 약이 없는 약국입니다.


미국에서 약사로 일할 때, 나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복약지도 였다. 매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 약은 이런 부작용이 있고, 증상이 나타나면 이렇게 대응하세요.”
법적으로 반드시 안내해야 하는 내용들이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부작용이 있는데, 왜 사람들은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걸까?


만성질환 환자들은 대부분 약을 평생 복용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약의 개수와 용량은 늘어난다. 그리고 부작용을 덮기 위해 또 다른 약이 처방되기도 한다. 환자들의 약의 개수가 늘어날 때마다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약은 정말 병을 낫게 하는 걸까? 아니면 잠시 증상만 가려주는 걸까?
현대의학은 질병의 근본 원인을 찾기보다는 눈앞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데 더 치중하고 있지는 않은가?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많은 질병의 뿌리는 결국 우리의 생활 습관에 있다는 것을.
식사, 운동, 수면, 그리고 좋은 관계—너무나 익숙하지만, 소홀히 하기 쉬운 일상. 우리가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 말이다.

KakaoTalk_20250825_075021944.jpg 회진 챠트에서 발견한 첫 코로나 의심환자

2020년 봄, 코로나 팬데믹은 내 삶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병원에 첫 코로나 의심 환자가 왔던 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당시 미국은 아직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이 없었다. "그냥 유행하는 감기겠지." 의료진조차 마스크 없이 일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한 달 후, 상황은 급변했다. 미국 의료계는 큰 타격을 입었고, 가족들의 걱정 끝에 나는 잠시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처음엔 잠깐 쉬어가는 시간이라 여겼지만, 예상치 못한 가족의 확진과 투병으로 내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고, 나는 우울감에 빠졌다. 무기력하게 누워 있던 나를 일으켜 세운 건 매일 두 시간씩의 걷기였다. 자연과 마주하며 마음을 회복했고, 결국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내가 변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코로나 이후 떠난 여행에서 나는 다시금 삶의 본질을 마주했다.
낯선 사람들과 식탁을 나누며 느낀 건, 국적도 언어도 다르지만, 한 끼 앞에서는 모두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이었다. 음식을 함께 나누는 동안 드러나는 습관, 태도, 생각들이 내 안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식탁은 단순한 밥상이 아니라, 삶을 배우는 장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여행지에서 경험한 소소했지만, 강력했던 잔상들이 자꾸 떠올랐다. 어려서부터 늘 '사회와 인류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는 부모님의 말씀이 늘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던 나에게 꿈이 생겼다. 내 삶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 몸과 마음의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이 자기 돌봄을 시작할 수 있는 작은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문을 연 곳이 바로 ‘푸드파머시’다.


푸드파머시에서는 약 대신 나를 위해 정성껏 차리는 집밥을 배운다. 힐링 바디 세션에서는 거창하고 복잡한 요리가 아닌, 제철 식재료로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는 한 끼를 정성껏 준비하는 법을 배우는 동안, 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작은 식습관의 변화가 몸을 살리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하루를 바꾸며, 사소한 생활 습관이 삶 전체를 단단히 지탱한다. 워크숍은 요리를 배우는 자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돌보는 연습의 장이다. 힐링 마인드 세션에서는 매번 다른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고 삶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불특정 다수와의 만남 속에서 서로의 경험과 시선을 나누며, 때로는 전혀 다른 삶의 궤적에서 뜻밖의 배움을 얻는다. 그 과정에서 나의 삶도, 상대의 삶도 조금씩 확장된다.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문화이고, 기억이며,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다.
누군가는 할머니의 손맛에서 고향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낯선 음식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우리는 먹으며 살고, 나누며 성장한다.


이 이야기들은 내가 푸드파머시에서 만난 여행자들과의 이야기다.
그들의 선택, 삶의 태도는 내게 언제나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식탁을 통해 세상을 만나는 기쁨을 느끼길 바란다. 때로는 한 끼의 식사, 한 번의 새로운 만남과 경험이, 우리 삶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을 믿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