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것을 한 입 먹어보는 용기

Alexia & Maria

by sarah




그리스 태생 / 남아프리카 이민 / 현재 런던 거주 /

자매 여행자

Alexia, Sarah, & Maria

봄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오늘이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고 했는데, 아쉽겠다 싶은 마음으로 어떤 게스트를 만나게 될지 궁금해하며 음식을 준비했다.
비 때문에 퇴근 시간의 길은 더욱 막혔고, 30분이나 늦게 도착한 게스트는 연신 미안한 듯 사과를 했다.

“No problem! 괜찮아요. 마지막 날인데 이렇게 하루 종일 비가 와서 어떡해요.”

그러자 그들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오늘 밤, 이렇게 함께 밥을 먹게 돼서 너무 좋아요.”

그리스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남아프리카로 이주했고, 지금은 런던에 산다는 두 사람은 자매였다.

자매가 함께하는 첫 한국 여행이라고 했다.


나는 늘 게스트들에게 한국의 첫인상이 어땠는지, 한국에서 뭘 했는지 묻곤 한다.
“8일밖에 없었는데 정말 많은 곳을 다녔어요.”
보통은 ‘한옥마을, 경복궁, 남산’ 같은 관광지를 말할 법도 한데, 이 자매는 조금 달랐다.
“경복궁 갔다가, 퍼스널 컬러 진단도 받고, 제주도 한 바퀴 돌고, 경주까지 다녀왔어요.”
나는 놀라 웃었다. “제주도까지 갔다 오셨다고요?”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그렇게 넓은 한국을 품을 수 있었을까.
그녀들은 말했다.
“이번 여행은 예고편이었어요. 한국의 전체적인 느낌을 이제 조금 알았으니, 다음엔 더 깊게 들여다보려고요.”


식사를 시작하면서 내가 꼭 묻는 질문이 있다.
“한국 음식 중에 뭐가 제일 맛있었어요?”

자매는 서로를 바라보며 눈짓을 주고받더니, 동시에 외쳤다.
“게장! 양념이랑 간장게장 둘 다요!”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고 우연히 들어간, 외국인 하나 없는 작은 식당에서 ‘여긴 진짜다!’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정확히 어떤 음식인지 몰랐지만 crab이라는 단어를 보고 ‘marinated crab’, 게장을 주문했다고 한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자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졌다.
“게가 익지 않았더라고요! 저흰 한 번도 날 게를 먹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 순간, 동생 알렉시아가 언니에게 말했다고 한다.
“Don’t say anything. Don’t make any face. Just eat it.”
말하지 말고, 이상한 표정도 짓지 말고, 그냥 먹어!

그렇게 용기 내 한입 먹은 게장은 결국 그녀들의 ‘최애’ 음식이 되었다.

“한국에 다시 오면 제일 먼저 그 게장 먹으러 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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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다시 생각했다.
열린 마음이란, 낯선 것을 한 입 먹어보는 용기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


두려움과 호기심이 교차하는 짧은 순간, 그녀들은 거부하기보다는 그 속에 뛰어들기로 선택했다.
만약 “날 게를 먹는다고? Eww!” 하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면, 게장이란 보물을 평생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음식을 대할 때조차 이렇게 세상이 확장된다면, 읽지 않았던 책, 가보지 않았던 장소, 시도해보지 않았던 삶의 방식들은 우리를 얼마나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 수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낯선 한입, 낯선 사람, 낯선 생각을 무작정 거절하지 않고
“한번 먹어볼까? 한번 만나볼까?” 하고 기꺼이 마주 앉는 마음.

어쩌면, 그건 ‘열린 마음’이라기보다 ‘용기’ 일지도 모른다.
나의 기준을 조금 내려놓고, 익숙하지 않은 것에 한 걸음 다가가는 용기.
그 용기가 내 삶의 반경을 더 넓히고, 세상을 더 깊고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준다.

누군가 당신에게
“이건 안 먹어봤지?”
“이런 생각은 어때?”
“그런 길도 있어.”라고 말한다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보자.
그 작은 끄덕임이, 당신의 다음 세계를 여는 열쇠가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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