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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n Aug 08. 2021

어떻게 드라마를 안 좋아하지?

드라마와 인류애에 대하여

2021.07.28


“어떻게 영화를 안 좋아하지?”


드라마 <런 온>의 대사다. 영화에 감흥 없는 육상선수 선겸을 영화 번역가인 미주와 수입영화배급사 대표 매이는 영 이해하기 힘들다. 매이가 영화를 얼마나 동경하는지가 이 짧은 대사에 고스란히 보인다. 영화 한 편 한 편이 이렇게나 다르고, 같은 작품도 볼 때마다 새로운데 어떻게 영화가 재미없을 수 있냐고! 어린 시절 처음 간 극장에서 위로를 받고, 이를 계기로 번역가를 업으로 삼기까지 한 미주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비슷한 심정으로 드라마를 본다. 내 말이, 어떻게 드라마를 안 좋아하지? 물론 드라마는 누군가의 취미나 관심사라기엔 지극히 보편적인 즐길거리다. 우리 할머니는 요리를 할 때도, 쉴 때도 드라마를 보고 계셨고, 아침에 학교에 가면 여자애들은 어제 방영한 드라마 얘기부터 하고 있었다. 게다가 요즘은 각종 OTT 서비스까지 널렸는데, 기껏 친해지려고 “뭐 좋아해요?” 하고 물어봤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고작 “드라마 자주 봐요.”라면 성실한 답변은커녕 철벽에 가깝지 않을까. 그치만 취미라고 꼭 엄청 개성 있거나 누구보다 좋아할 필요는 없으니까.


최근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네버 해브 아이 에버>를 재밌게 봤다. 30분짜리 에피소드 10편이 한 시즌인데, 작년에 첫 시즌을 5시간 만에 다 봤고 지난주에 나온 시즌 2도 한 번에는 아니지만 어쨌든 하루 만에 끝냈다. 그리고 짙은 여운에 차마 다른 드라마를 시작할 수 없어 (물론 <미치지 않고서야> 본방사수를 제외하고) 다음날 시즌 1을 역시나 5시간 만에 재주행했다. 끝내주는 고등학교 생활을 하리라 다짐한 범생이 주인공 데비의 어색한 로맨스와 일탈이 흥미진진하고, 데비의 절친 로봇 동아리 회장 레즈비언 패비올라와 패션도 행동도 드라마퀸 그 자체인 배우 지망생 엘리너도 사랑스럽다. 등장인물 한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유색인종인 풍경을 보면서도 마음이 편안했다.


반면 데비는 누군가는 충분히 싫어할 법한 인물이다. 엘리너의 엄마가 갑작스레 떠난 마당에 친구 곁이 아니라 팩스턴네 집으로 가기를 선택하고, 양다리를 걸치는 것도 모자라, 사과해야 할 친구에게 “나 징계받으면 명문대 못 가니까 좀 봐 달라”는 말부터 하는 등, 실생활에서 만났다면 용서하기 힘들 정도로 이기적이다. 그런데 나는 데비가 싫지 않았다. <네버 해브 아이 에버>는 데비의 첫사랑 이야기임과 동시에 그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여정이다. 데비의 부적절한 행동은 상처와 불안정에서 비롯하기도 했고, 용서를 빌고 화해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자니 도저히 그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주인공인 이상 드라마는 그를 변호할 수밖에 없는데, 뭐 어쩌겠는가?


물론 데비가 내 친구였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나라면 드라마 속 자비로운 친구들과 달리, 데비를 조용히 인스타그램 친한 친구 리스트에서 제외하고 졸업하자마자 맞팔도 해제했겠지. 나는 사람을 쉽게 미워하고 손절도 빠르다. 사람에게 화가 나면 “대체 뭐가 문제지?”라는 말부터 나온다. 도대체 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어떻게 저렇게 세심하지 못하지 (알고 싶어서 묻는 건 당연히 아니다)? 그들의 만행이 실제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이상 나는 그들에게 관대해지기가 어렵다. 세상의 질서를 어기고 남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의 사연을 별로 들어주고 싶지가 않다.


하지만 드라마 속 인물들은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미워하기 힘들다. 제작자가 처음부터 미워하라고 만든 인물이 아닌 이상, 어떤 파렴치한 짓을 해도 나한테 조금의 불이익도 주지 않을뿐더러 들어줄 만한 사연까지 있는데 왜 허상의 인물을 증오하는 데 내 기력을 쓰겠냐는 말이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나는 절대적인 영웅과 악당이 없는 드라마를 자꾸 찾게 된다. “너 나한테 잘못했잖아!”하고 윽박질렀더니 “너도 그때 나한테 이랬잖아!”가 돌아오는, 너나 할 거 없이 불완전한 인간들끼리 지지고 볶는 이야기들 말이다. 그들의 불완전함이 좋다.


내가 내향인이라 허상의 캐릭터를 사랑하고 현실의 개별 인간은 싫어하는 걸까? 실존 인물들의 자초지종을 들을 여유가 있다면 그들에게도 관대해질 수 있을까 (근데 꼭 그래야 하나?)? 얼마 전에 “나는 인류가 좋고 인간은 싫은데 이게 무슨 뜻인지 도저히 말로 설명이 안 돼”라고 말하니 친구가 ‘아이돌이 팬덤과 팬이라는 관념은 너무 사랑하지만 팬들로 인해 생기는 껄끄러운 상황에서는 빠(순이)혐(오)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 같은 게 아니냐고 답했다. 듣자마자 납득했다. 나는 인간 한 명 한 명이 참 싫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관념이 좋아서 드라마를 보고, 드라마는 인간의 불완전함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나에게 또다시 주입한다. 그렇게 나는 인류애를 유지한다.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되어야지, 어딘가 부족한 사람들과 공존해야지 다짐하면서도 거슬리는 인간들을 보면 ‘너네 좋으라고 이러는 줄 알아?’하고 속으로 덧붙인다. 그리고 되묻는다. 어떻게 인간을 안 싫어하지? 그치만 또, 어떻게 인류를 안 좋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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