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거름이 돼 줘야 한단다." <강아지똥> 권정생
“안녕하세요, 선생님.”
처음 보는 나에게 씩씩하게 인사를 해오는 아이들이 있는가하면
“안녕...하세요. 선생...님.”
쭈뼛쭈뼛 어색해하며 나에게 차마 다가오지 못한 채 인사를 해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예 인사조차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나를 관찰만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안녕.”
그런 아이들에게는 나도 인사하며 다가갔다.
사실 나의 첫인상은 차가운 편에 속해있어서 어른들조차 쉽게 말을 걸 수 있는 타입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다가와줬고
그렇지 못한 서너명에만 내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만난 친구들이 조금씩 리딩룸 안을 채워나갔고
내가 기억해야할 얼굴들과 이름들이 늘어갔다.
고백하자면 나는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 때까지는 나는 원래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는 첫 출근 한 날 20여명의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 학년까지 모두 다 기억해냈다.
정우, 태수, 준원, 민지, 나영, 효원, 신지, 유지, 강빈, 시은, 지은, 유지, 소윤, 민수, 가은, 지원, 시윤, 지환...
나는 나의 기억력에 놀랐다.
한 명 한 명이 또렷하게 내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 때 깨달았다.
내가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해내지 못했던 이유는 그저 사람들에게 관심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내가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내기 위해 관심을 갖고 애를 쓰자 그 즉시 나의 머리에 가슴에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글을 쓴다는 사람이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구나.’
내 작품들이 왜 큰 사랑을 받지 못했는지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
2주간 수습 기간을 갖고 저학년 위주의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수습 기간동안 나는 리딩룸 관리가 우선이었고 기존에 계셨던 홍선생님과 원장선생님이 진행하는 수업을 참관했다.
총 3번의 수업을 참관했다. 초 3, 초5, 중1.
홍선생님과 원장선생님 수업 참관을 위해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갑자기 나타난 낯선 이의 등장에 학생들은 수업을 들으면서 나의 존재를 계속 신경썼다. 아닌 척 수업에 집중을 하면서도 발표하는데 있어서 의식하는 게 느껴졌다. 초3 친구들은 대놓고 내가 누구인지 묻기 바빴다.
리딩룸에서 보내는 시간은 이랬다. 책장에는 그림책에서부터 각종 소설책, 과학책, 역사책, 경제관련책, 수학관련책, 자기계발서까지 있었는데 아이들은 주1회 진행되는 수업에 관련된 책 1권은 의무적으로 읽어야했고 그 외 시간동안에는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었다. 초등학교 1,2학년의 경우에는 그림책을 함께 읽어주기도 했다.
내가 소리내어 읽어주면 주변의 학생들도 몰려들어 자신이 그 책을 읽었을 때의 경험과 책을 읽고 느꼈던 점에 대해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월 100만원만 벌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은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들 속에 파묻혀 세상 그 어떤 존재들보다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일은 일이 아니었고 즐거운 시간을 경험하며 항상 혼자 읽던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고 책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혼자 책 읽고 혼자 글 쓰며 누군가와 그 경험과 감정들을 나눌 기회를 일을 통해 얻다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1학년 민지가 한 그림책을 뽑아왔다.
책의 제목을 확인한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아동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내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작가님의 책이었다.
권정생 작가님.
‘강아지똥’은 읽어본 책이었지만 민지에게 읽어주며 민지와 함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난 더러운 똥인데,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 수 없을 텐데.....”
강아지똥은 쓸쓸하게 혼자서 중얼거렸어요.
“아, 더러워. 강아지똥.”
민지의 그 말이 마지막 장을 읽었을 때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다.
“그런데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민들레가 말하면서 강아지똥을 봤어요.
“.......”
“네가 거름이 돼 줘야 한단다.”
“내가 거름이 되다니?”
“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 손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야만 별처럼 고운 꽃이 핀단다.”
“어머나! 그러니? 정말 그러니?”
어느 덧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렀다.
봄이 한창인 어느 날,
민들레 싹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어요.
향긋한 꽃 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갔어요.
방긋방긋 웃는 꽃송이엔 귀여운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사랑이 가득 어려 있었어요.
민들레의 말에 강아지똥은 드디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된다.
쓸모없다고 여기는 강아지똥도 쓰임이 있었다.
그 쓰임을 찾는 게 인생의 여정일테고.
무엇보다 내가 누군가의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 인생의 의미가 가치가 더욱 빛이 날테니.
‘나도 누군가의 쓰임이 될 수 있을까?’
부끄럽지만 살아오면서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그 때였다. 민지가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강아지똥 불쌍해요. 강아지똥은 죽었지만 완전히 죽은 건 아니죠?”
“그럼. 강아지똥은 민들레가 꽃을 피울 수 있게 도운 거잖아. 그건 완전히 죽었다고 할 수는 없지.”
민지는 더럽다고 말했던 강아지똥 그림을 작은 손으로 위로하듯 만져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일을 시작할 때 없었던 목표가 생겼다.
'나도 강아지똥이 되어야겠다. 그래서 아이들이 꽃 피우는데 작은 쓰임이라도 되어야지.'
즐거운 일에 목표까지 생기자
나는 갑자기 된 선생님이라는 일을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