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선생님'이라는 이름의 '꽃'이 되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김춘수 <꽃>

by 이중생활자

마침내 면접날이 되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깨끗하게 씻고 반 년만에 외출 준비를 했다. 출판사나 기획사 미팅 정도는 가봤지만 직장을 얻기 위해 나서는 면접용 외출은 내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엄청 떨릴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담담했다. 오히려 지켜보는 엄마가 더 초조해했다. 글만 쓴다고 쳐박혀 나이를 먹을데로 많이 먹어버린 딸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이 오죽 애가 탔을까. 뒤돌아생각해보니 내가 무경력, 나이많음에도 떨지 않은 이유는 든든한 엄마가 언제나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차를 몰고 집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신도시로 향했다. 초여름을 맞이한 시골 풍경은 바람 한 점,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투명했다.


첫 번째로 학습지 회사 면접을 보러갔다.

나는 낯선 장소에서 잠깐의 면접을 봤고 자기소개서 작성서를 10분 안에 뚝딱 작성했다. 그 글을 읽어본 지점장님은 크게 놀라워했고 국어에 능한 선생님이 나타났다며 나를 한껏 띄워주셨다. 지점장님의 큰 기대를 받으며 나는 다음 주 월요일 최종 입사 면접에 꼭 오라는 말을 들으며 학습지 회사를 나왔다.


‘구르는 재주라도 있긴 있었구나.’


지금 생각해보니 특별히 내가 자기소개서를 잘 썼다기보다 학습지 회사 특성상 늘 사람이 필요한 구조였던 듯 했다.


그 뒤 간단하게 햄버거로 점심을 먹고 나는 두 번째 면접장소인 학원으로 향했다.

학원은 신도시에서 가장 번화한 골목에 위치한 건물 2층이었다.

신기했던 건 첫 번째 면접도 그랬고, 두 번째 면접도 떨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방 안에 처박혀 글만 쓰다가 밖으로 나오니 콧구멍에 신선한 바람이 들어온 것만 같았다. 어느 새 나는 여행이라도 하듯 처음 방문한 장소들을 즐겁게 관찰하고 즐기고 있었다.


책읽기와 글쓰기라는 글씨가 적힌 주황색 학원 간판이 눈앞에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통화 때 들었던 목소리의 주인공인 원장 선생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예상대로 엄청 젊으셨다. 한 눈에 봐도 원장 선생님은 20대였다.


“안녕하세요.”


나도 인사를 건네고 상담실에 마주 앉았다. 검고 윤기 있는 긴 생머리에 하얀 피부를 지니신 눈빛이 맑은 분이셨다.


“저는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경험은 없어요.”


솔직하게 내 결격 사유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장 선생님은 학원 커리큘럼과 학습지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해 주셨다.


급하게 선생님을 구해야하는 상황 같았다.

나는 원장 선생님의 설명을 모두 듣고 함께 학원을 둘러보았다. 학원 로비 옆에는 도서관처럼 수 백권의 책이 꽂혀져 있는 리딩룸이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강의실에 4개 있었다. 강의실마다 큰 테이블과 6~8개의 의자들이 있었다.


한 강의실에서 수업 중인 선생님과 아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 저렇게 한 방에서 아이들과 수업을 해야 하는 거구나.’


꿀꺽. 그제야 긴장감이 돌았다.


‘아이들과 한 공간에서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며 수업을 하고 부족한 면을 채워주고...’


아이들과 어떤 식으로든 가깝게 지내 본 적은 조카 두 명 빼고는 없었기에 가르친다라는 사실보다 아이들과 어떻게 어울릴까..하는 부분이 걱정으로 다가왔다.


그런데도 은근히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유는 학원에서 마주친 아이들 때문이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이 너무나 귀여웠기에.


집에 돌아와 학습지 회사냐 학원이냐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을 직접 마주쳤던 학원, 내가 십여년 넘게 꾸준히 하고 있었던 책읽기와 글쓰기.

이 두 가지 때문에 나는 바로 학원에서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원장 선생님. 오늘 면접 봤던 사람입니다. 학원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월요일. 나는 처음으로 학원이라는 곳에 출근을 했다.

나는 면접 때와 다르게 떨렸다. 아이들과의 만남이 긴장되었기 때문이다.

첫 날은 오후 1시까지 출근에 7시까지 리딩룸에서 아이들과 책을 고르고 읽어주는 업무를 맡았다. 3개월 간의 수습 기간을 거치며 정식 강사로 채용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본격 수업은 한 달 뒤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 때까지는


그리고 오후 2시.

나는 도서관처럼 3면이 책으로 둘러쌓인 리딩룸에서 아이들을 맞았다.


학교를 끝낸 초등학생들이 익숙하게 리딩룸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은 경계 반, 호기심 반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선생님을 해 본 적이 없어 선생님의 역할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지만 처음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한 명 한 명 아이들의 이름을 외워야만 했다.


갑자기 선생님을 하게 된 후의 첫 번째 임무였다.

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안녕, 이름이 뭐야?”라는 질문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학원에 등원해 리딩룸으로 들어설 때,

나는 나의 첫 번째 임무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내 질문만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내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아이들이 먼저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나는 그렇게 갑자기 ‘선생님’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아이들 덕분에

나는 '선생님'이라는 이름의 꽃이 되었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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