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종일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입니다." <행복한 청소님>
“선생님, 이 책 알아요?”
책장 앞에서 한참을 뒤적이던 시윤이가
책 한 권을 꺼내며 나를 올려다봤다.
표지에는 녹색 청소부 복장을 입은 아저씨가 빗자루를 든 채로 웃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보는 책이었다.
제목은 단순한데 묘하게 마음을 끌었다.
***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아이들보다 조금 먼저 리딩룸에 도착해
책상을 닦고, 바닥을 쓸고, 책상 밑에 굴러다니던 몽땅 연필들을 주웠다.
길이가 손가락 하나반 마디밖에 안 되는,
누군가 오래도록 쥐고 글씨를 써내려간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연필들은
하루만 지나도 바닥에 여러 개가 떨어져있었다.
몽땅 연필들을 주워 다시 뾰족하게 깎아 아이들이 쓸 수 있게 두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게 내 일이야?’ 하고 투덜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이런 시간이 이상하게 좋다.
청소가 끝나고 리딩룸 이곳저곳이 반짝거릴 때쯤
아이들이 하나둘 입장하며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할 때면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행복한 청소부》는
청소부 아저씨가 거리를 돌아다니며 표지판을 닦는 이야기였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먼지와 흙에 가려진 표지판을 말없이 닦는 사람.
“이 아저씨는 맨날 이걸 왜 닦는 거예요?”
시윤이가 물었다.
책은 단순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매일 닦고 또 닦으며, 아저씨는 말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말해준다.
그 순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겹쳐졌다.
나는 매일 몽땅 연필을 주워주고,
읽던 책을 꽂아주고,
자리를 잡아주는 일을 한다.
누구에게는 별것 아닐지 몰라도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는
그게 길일 수 있다는 걸, 요즘의 나는 배우고 있다.
혼자 책을 고르기 힘든 아이에겐
“이 책 어때?” 하고 내미는 손길이
하나의 표지판일지도 모른다는 걸.
***
그날 오후,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리딩룸.
책상 밑 구석에 작고 짧은 몽땅 연필 하나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주워 손에 쥐었다.
나는 지금 청소부가 맞다.
누군가를 위해 작은 것을 치우고,
보이지 않는 표지판을 닦고,
작지만 확실한 길을 밝혀주는 사람.
월 백만 원이 필요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걸 받고 있다.
바로 즐거움.
《행복한 청소부》 속 아저씨는
청소라는 일을 하며,
클래식 음악이라는 자신이 진짜 사랑하는 것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 일을 하며,
이야기를 만드는 내 진짜 좋아하는 일을
조금씩 다시 꺼내고 있다.
청소부가 음악을 놓지 않았던 것처럼,
나도 언젠가 다시,
내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 꺼내게 되길 바란다.
그건 아주 오래된 꿈이고,
지금도 여전히
내 안에서 작게, 하지만 분명히
울리고 있는 선율 같은 것이다.
나는 '행복한 선생님'이다.
나는 하루종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입니다.
글쓰기는 오로지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