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매인 한 마리 낙타
어제의 도서관 산책은 사실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9:00 ~ 12:00
오전 시간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은 하루가 될 줄 알았다.
도서관 출근 후 일기를 휘리릭 썼다.
약 30분 걸렸다.
이후 예약을 걸어둔 오늘의 소설을 퇴고했다.
아무리 고쳐쓰기를 거듭해도
마음에 안 드는 단락, 문장, 단어가 계속 눈에 띈다.
수없이 고쳐 쓰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퇴고를 마치고 새로 작성할 소설을 구상했다.
갑자기 생각하는 게 귀찮았다.
왠지 모를 귀찮음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냥 오전에는 독서를 할까 고민을 했다.
큰 진전 없이 점심시간이 되었다.
13:00 ~ 18:00
오후 시간은 언제나 장기전이다.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한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정수기에 가서 냉수를 한 모금 마셨다.
아니, 저 선배는.
10년 전에 같은 팀에서 일하던 선배다.
닮은 사람인가.
오래간만에 카톡을 보내봤다.
본인도 도서관이 맞다고 한다.
집에서 멀지만 이 도서관이 좋아서
자가용을 끌고 일부러 왔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10년 만에 만났다.
도서관 2층에는 카페가 있다.
선배가 지갑을 안 갖고 나왔다고 해서
흔쾌하게(?) 내가 계산했다.
그간 81년생인 줄 알았던 선배가
79년생이라고 한다.
나랑 세 살 차이다.
그래도 크게 위화감은 안 든다.
그동안 살아온 얘기,
나의 소설 얘기,
선배의 이른 은퇴준비,
선배의 선배들이 모두 50대 중후반인 것에 놀라고,
그만큼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한 시간이 지나버렸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가 먼저 일어나자고 했다.
14:30
다시 본격적으로 글을 쓰려고 했다.
오늘따라 글이 안 써진다.
독서나 할까.
다시 오전과 같은 고민을 반복.
갑자기 너무 덥다.
내가 지금 졸린 건가.
선배를 만나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나.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내 가슴팍을 보니
땀에 젖어 있었다.
짜증이 난다.
지금 실제로 더운 것이다.
도서관은 언제나 서늘하다.
난 그 서늘함을 즐긴다.
무더위에 서늘함을 즐기는 것은 행복이다.
물론 집에서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집에서의 그것과는 다르다.
주변에 책도 많다.
함께 읽거나 쓰거나 공부하는 존재들이 있다.
그 환경이 내게 좋은 기운을 준다.
그런 생각도 잠시.
덥다는 생각에 또 짜증이 난다.
난 그 서늘함이 좋아서
카디건이나 바람막이를 입고 글을 쓴다.
집에서 그랬다가는 아내님에게 잔소리를 듣게 된다.
16:00
난 아직도 땀을 흘리고 있다.
대체 왜 이렇게 더운 것인지
도서관 내부를 한 바퀴 돌아봤다.
도서관의 에어컨은 모두 천장에 설치된 시스템 에어컨이다.
이상하다.
직원이 있는 중앙 쪽은 시원하다.
쾌적함이 느껴진다.
도서관 내부를 한 바퀴 돌며
위치별로 온도의 차이를 느꼈다.
정말 이상했다.
무심코 천장의 에어컨을 봤다.
이럴 수가.
중간중간 하나씩 전원이 꺼져있다.
난 늘 비슷한 자리에 앉는다.
이런 문제가 생기면 바로 알아차렸을 나다.
오늘부터 에너지 절약을 하는 것인가.
내 자리는 그야말로 갑자기 약냉방칸이 되어있었다.
관리자의 실수인가.
사서에게 말을 해봐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그런 고민도 귀찮아져서 그냥 자리에 앉았다.
이것 또한 견뎌야 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
17:00
땀을 흘리며 글을 쓰니 힘들다.
옛 선조들은 대체 어떻게 고전들을 써냈을까 싶다.
18:00
꾸역꾸역 에피소드 한편을 써냈다.
마음에 안 들지만 다음날 퇴고를 생각하며 미루기로 했다.
짐을 정리하고 로비로 내려왔다.
열람실 및 자료실은 3층이고
로비는 1층이다.
무척 서늘했다.
아무도 없는 로비가 쓸데없이 서늘했다.
갑자기 또 짜증이 났다.
아무도 없는 공간이 서늘하다는 것이 짜증 났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짜증을 자주 경험한 게 퍽 오래간만이다.
그동안 난 꼭 내가 익숙한 자리에만 앉아야겠다는 고집을 부렸다.
앞으로는 천장의 시스템 에어컨이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수고로움을 겪더라도
서늘한 자리를 찾아서 이동할 것이다.
선생님 말대로
그야말로 어제의 난 목이 매인 한 마리 낙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