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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소유 Nov 13. 2024

지금의 이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더 이해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병가 휴직을 시작한 지 132일째, 나는 여전히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글을 쓰려고 큰 종이에 한 장을 썼는데, 아내가 소제목이 없냐며 빨리 정하라고 재촉했다. 나는 소제목이 떠오르지 않아 천천히 생각하려 했지만, 그녀는 그렇게 게으르면 안 된다며 나를 나무랐다. 말대답도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낮에는 골프장에 갔다. 장인께 새로 배운 그립이 아직 어색해서 실수가 잦았지만, 잘 맞으면 정확하게 날아가고 느낌도 좋다. 아직 연습이 더 필요하다. 아팠던 오른쪽 가슴의 통증도 많이 나아졌다. 집에 가는 길에 정육점에 들러 고기를 사서 저녁에 맛있게 구워 먹었다.


밤에는 ‘죽음에 대하여’라는 책을 4장까지 읽었다. 영혼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인간은 복잡한 유기체에 불과한 걸까? 죽음 이후엔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문득 인생이 의미 없게 느껴졌다. 세상에 미련을 갖는 것도 다 무의미한 것 같다. 그저 사는 동안 더 많이 느끼고 즐기고 알다가 가면 그만인 것 같다.


병가 휴직 133일째, 아내가 점심 약속으로 나갔다. 한가로운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조금 더 뒹굴거리다 점심을 먹고 골프장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게임을 하고, 간단한 식사를 했다. 어느덧 아내가 온다고 전화가 와서 골프장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얌체 운전에 화가 날 뻔했지만 잘 참았다.


연습장에서는 공이 잘 맞는 것 같더니 금방 100개를 다 쳤다. 옆에 운동선수 느낌의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의 자세에서 대단함이 느껴졌다. 나도 공 하나하나에 더 진지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오니 아내가 자고 있어서 나도 조금 쉬었다. 저녁 식사 후 ‘죽음에 대하여’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죽음 이후의 영혼에 대해 몇 가지 질문과 생각을 말해주었더니, 그녀는 무시당하는 것 같다며 기분이 나빠했다. 갑자기 아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혼란스럽고 느끼는 바가 많아졌다.


병가 휴직 134일째,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가 참 힘들다. 아내의 임신으로 나에게 해주는 배려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아침부터 그녀는 삐졌다. 말하지 말아야 했나 싶다. 나도 아내도 서로 감정의 기복이 심한 것 같다. 아내는 산모 교실에 간다고 나갔다. 나는 게임을 하고 은행에 다녀왔다. 공을 치고 집에 오니 집안 분위기가 썰렁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아내는 마리오 게임을 하고 싶다며 게임기를 연결해 달라고 했다. 큰 진전 없이 즐겁게 게임을 하는 아내를 보며 나는 뭘 할지 망설여졌다.


병가 휴직 135일째, 늦게 일어났지만 잘 잤다. 점심에는 블로그 체험으로 식당에 갔다. 나가는 김에 공도 치고 왔다. ‘죽음에 대하여’는 이제 8장까지 읽었다. 읽을수록 인생이 점점 덧없다는 게 느껴진다.


골프장에서 아버님을 또 만났다. 아내와 함께여서 같이 즐겁게 커피 한 잔을 했다. 골프장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선생님에게 한 수 배웠다. 도서관에 들러 예약한 책을 찾고 무려 네 권을 대출했다. 저녁에는 남은 피자와 맥주를 먹고 노래방에 가서 즐겁게 놀았다. 나는 많은 노래를 불렀지만, 아내는 선곡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병가 휴직 136일째, 상담소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애니어그램에서 나는 한국에서 살기 힘든 극단적인 4번 유형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개인적인 마음 치료가 많이 필요한 유형이라고 한다. 마음 컨트롤이 중요할 것 같다. 자책하고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 나. 사회생활에 부적응자로 찍힌 나는 큰 야망 없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살아야 하는 걸까.


밤에는 극장에서 영화 ‘저스티스 리그’를 보았다.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아내가 극장 계단에서 근육을 다친 것 같아 걱정된다. 빨리 나아지길 기도했다.


병가 휴직 137일째, 어느덧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상담소와 병원을 가야 했지만 차 키를 아내가 가지고 나가서 집에 머물렀다. 덕분에 잘 쉬었다.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 아내가 도착했다. 피자를 시켜 먹었는데, 너무 늦게 도착했다. 아내에게 복직이 걱정된다고 털어놓았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책만이 나의 살길이라 믿고 있기에 더 그렇다. 복귀 후 어떤 모습이 될지 고민이고, 악랄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병가 휴직 138일째, 아내가 들려주는 지오디의 ‘길’은 언제 들어도 명곡이다. 방황하는 우리들에 대한 한 편의 시 같다.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아내의 친구 결혼식에 데려다주고 골프장에 갔다. 집에 와서는 게임을 하고 잠을 잤다. 저녁에는 책을 다시 읽었다.


친구에게 1일 1책을 하는 한 아줌마의 기사를 받아보았다. 그렇게 힘든 역경을 이겨내는 사람들이 대단하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요즘 아내가 자주 삐지는데, 임신 증상인 것 같아 내가 더 너그러워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병가 휴직 기간 동안 여러 감정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때로는 우울하고 무기력했지만, 작은 일상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노력했다.
책을 읽고, 골프를 치고, 아내와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복직 후 어떤 모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이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더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앞으로는 더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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