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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소유 Nov 20. 2024

쉼의 시간 속에서…

병가휴직 139일째, 아침 아홉 시 반에 기상했다. 책을 조금 읽다가 점심에는 블로그 체험단으로 곰탕집을 방문했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친절하고 깨끗했으며 음식 맛도 괜찮았다. 돈을 내고서라도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 길로 근처에 있는 골프 연습장을 찾아 공을 쳤다. 새로 바꾼 그립에 점점 익숙해져 공이 잘 맞기 시작했다. 오늘은 쉬지 않고 빠르게 105개의 공을 쳤다. 집에 가려던 길에 처가에서 저녁을 먹으라는 연락을 받고 일찍 방문했다. 골프 연습 때문인지 피곤했지만, 어머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아내의 배려로 방에 누웠다. 저녁에는 삶은 고기와 굴, 김장김치를 맛있게 먹었다. 아버님이 요즘 골프를 시작하셔서 함께 대화를 나눌 주제가 많아졌다. 아버님과 건강하게 필드에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과 처가 부모님 모두 건강하실 때 더 많은 것을 즐기셨으면 좋겠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


병가휴직 140일째, 아침 아홉 시 반에 일어났다. 책을 읽다가 졸음이 몰려와 낮잠을 조금 자고, 아내가 해준 볶음밥을 맛있게 먹었다. 요즘 읽는 죽음에 대한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웠다. 오늘 안에 꼭 완독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소화를 시킬 겸 골프 연습장을 찾아 공을 쳤다. 왼손에 통증이 생긴 것을 보니 코킹이 잘못된 듯했다. 집에 와서 간단히 간식을 먹고 늦은 저녁으로 비빔냉면을 만들어 먹었다. 이후 독서에 집중한 끝에 새벽 한 시에 책을 완독 했다. 짧은 삶 속에서 너무 많은 것에 얽매이지 말고 순간을 즐겨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죽음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 불행한 생각을 버리고 좋은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복직에 대한 생각도 점차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아내는 나의 철학적 고민에 좋은 대답을 해주었다. 늘 오늘처럼 지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마음이 흔들리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병가휴직 141일째, 오늘은 병원에서 탈모 진료를 받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아내와 함께 병원을 찾았는데 생각보다 주차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진료를 받으며 그동안의 잘못된 치료를 깨달았고 새로운 약을 처방받았다. 아내를 시내에 내려주고 정신건강의 병원으로 향했는데, 한산해서 금방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의사와는 근황을 나누며 최근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집에 와서는 급히 점심을 해결하고 마음 상담소에 방문해 복직에 대한 마음가짐을 이야기했다. 복직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니 마음이 조금 조급해졌다. 다시 회사 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아내와 함께 저녁으로 소고기를 구워 먹으며 오랜만에 여유를 느꼈다.


병가휴직 142일째, 드디어 아이의 성별을 알게 되는 날이었다. 어제 아내와 사소한 다툼이 있어 마음이 무거웠지만, 아침에 서로 화해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병원에서 아들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쁘면서도 딸이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 와서는 점심을 먹고 아내를 산모 교실에 내려준 뒤 골프 연습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하체에 집중하니 공이 잘 맞는 느낌이었다. 집에 온 아내는 산모 교실에서 1등 경품으로 모유 수유기를 받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병가휴직 143일째, 아침형 인간이 되고자 일찍 알람을 맞췄다. 이른 기상 덕분에 서울로 가는 버스를 여유롭게 탈 수 있었다. 오늘은 차 명상 강좌 첫날이었다. 도착한 장소는 아기자기하게 준비된 차 도구들로 가득했다. 강좌의 주제는 ‘봄’이었고, 백차를 마시며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을 다졌다. 밤에는 보노보노 에세이 책을 한 권 완독 했다. 작가의 유머와 따뜻한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모두 너무 열심히 살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되었다.


병가휴직 144일째, 오늘은 바쁜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점심으로 타코를 먹으며 오랜만에 멕시코 요리를 즐겼다. 중고서점에서 책을 세 권 구매했는데, 니체의 책을 완독 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기대와 의문이 들었다. 만기 적금을 타고 흙집이라는 휴대폰 성지에 가서 새로운 아이폰을 받아 기분이 좋았다. 흙집 사장의 동작은 느릿느릿 하지만 쓸모없는 행동은 없어서 특이했다. 하루의 마지막은 신전 떡볶이로 마무리했다. 바쁜 하루였지만 알차게 보낸 날이라 뿌듯했다.


병가휴직 145일째, 아침에 아내와 추억의 음악을 들으며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점심은 돈가스 뷔페로 해결했는데, 맛과 친절함은 평범했다. 이후 근처 골프 연습장을 찾아 공을 쳤다. 오늘은 하체가 부실한 탓인지 샷이 잘 맞지 않았다. 집에 와서는 장자에 대한 책을 읽었다. 저녁에는 복직 전 마지막 여행으로 계획 한 여행이자 태교여행으로 제주도로 떠날 준비를 하며 설렘을 느꼈다. 아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생각에 기대가 크다.



아내와의 시간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때로는 사소한 다툼도 있었지만, 함께 손을 잡고 아이의 성별을 알게 된 날의 설렘, 산모 교실에서 받은 경품으로 웃음꽃을 피우던 순간들은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그녀와 나눈 대화는 내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었다.

쉼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나를 옥죄던 완벽함에 대한 강박과 끝없는 비교의 늪에서 벗어나도록 도왔다. 시간은 참으로 빠르게 흘렀지만, 그 속에서 나는 천천히 나를 찾아갔다. 무언가를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집착 대신, 지금 이 순간의 소소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여유를 배웠다. 병가라는 이름 아래 보낸 시간은 단순히 멈춤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시 살아갈 힘을 되찾는 과정이었다.

인생은 여전히 많은 숙제를 남겨두고 있지만, 이제 나는 그 숙제 앞에서 예전만큼 초조하지 않다. 쉼 속에서 얻은 깨달음은 앞으로의 길을 더 가볍고 단단한 발걸음으로 걷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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