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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소유 11시간전

<야간열차>

문예중앙 1994년 여름호에 발표된 한강작가의 초기 소설.


신국판 53페이지의 적지 않은 분량의 중단편 소설.


짠 짜짜짜짠 짠짠

어둠을 뚫고 야간열차야

가자 내 야망 싣고 내일을 향해

가자 가자 가자 야간 열차야


이 노래가 생각나는 제목..


역시나 어두운 소설이다. 어둡지 않으면 한강의 소설이 아니다.


주인공은 영현이고, 반주인공은 동걸이다. 동걸이라는 이름에서 뭔가 꽉 막힌, 덩치가 큰, 어두운 표정의 사내가 떠오른다. 읽고 나니 이름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 편으로는 이름을 그렇게 지어서 너무 절묘하게 앞으로 전개될 기구한 그의 삶이 더욱 처연하게 느껴졌다.


-. 동걸은 덩치가 좋은 녀석이었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통 하나만큼 큰 키에 가슴이 벌어졌다. 녀석의 목소리는 그 우람한 공명통에서 울려 나오는 것이니만큼 남달리 굵고 우렁찼다.


영현은 어느 날 동걸에게 야간열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취기가 달아오른 동걸은 진지하게 야간열차를 타고 운행하는 노선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영현과 친구들을 말 나온 김에 야간열차를 타기로 하고 다음날 청량리 역에 모였는데 정작 동걸이 나오지 않아서 다들 실망한 채로 환불 한 돈으로 술만 마셨다. 이후로 동걸은 술자리에서 야간열차 이야기를 하는데 열정적이지만 어딘가 외롭고 고단해 보인다. 완벽해 보이는 동걸에게서는 어딘가 아픔이 느껴졌다.


영현은 군대에 입대했고, 입대 전 친구들과 야간열차로 짧은 여행을 했다. 동걸은 청량리 역까지 와서는 차마 열차를 타지는 않았다. 영현은 군대에서도 동걸의 모습이 계속 아른거렸다. 영현은 어느새 군대에서 제대해서 조용히 살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동걸을 찾아갔다. 그는 여전했다.


영현은 오래간만에 술을 마시며 마치 동걸에게는 금기어와 같은 야간열차에 대한 말을 꺼냈다. 동걸은 끝까지 야간열차에 대한 말은 이어가지 않았다. 둘은 만취해서 길에서 넘어지도 자전거를 훔쳐서 동해로 가자고 하고 난리도 아니다. 그 와중에도 동걸은 때때로 자꾸 기차소리가 들린다며 머리를 쥐고 힘들어한다. 결국 동걸이 인사불성이 되어 영현은 그를 택시로 집에 데려다 주기로 한다.


동걸의 좁은 집에는 그의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남동생이 있었다. 그 남동생은 의식이 없는 상태로 동걸과 꼭 닮은 얼굴을 하고 누워있었다. 영현은 그 모습에 놀란다.


-. 동걸 오빠는 동주 오빠가 저렇게 된 후로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조급해하고 종종 무섭게 화를 내고, 누구보다도 완전하게 살려고 해요, 내가 보기엔 마치.. 마치 누워 있는 동주 오빠 몫까지 살아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술에 취해 돌아오면 동주 오빠 어깨를 붙들고 일어나라고 고함치곤 하죠, 네 몫까지 살려니 내가 미치겠다..


동걸의 동생 선주는 말하다 말고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진심으로 동걸을 걱정하고 있었다.


-. 나는 지난밤 동걸이 어둠 속에서 지어 보였던 뜻 모를 미소를 기억해 냈다. 내 머리는 한 대 얻어맞은 듯 멍멍해졌다. 그렇다면 그 웃음은 무엇인가. 그때 녀석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던 실낱같은 탈출의 희망을 체념하고 있었던 것일까. 체념해 버린 채 웃고 있었던 것일까.


영현은 그런 동걸을 떠올리며 혼자 야간열차에 탑승했다.


친구들이 하나둘 씩 제대하고, 졸업하고, 각자 취업을 했다. 영현은 혼자 세상을 걷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걸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몇 년 만에 새벽에 연락을 해서 느닷없이 벽제에 가자고 한다. 영현은 그를 가볍게 무시한다. 영현은 동걸의 어떤 기운 때문에 악몽에 시달리며 힘들어했다.


다음날 사무실로 동걸의 전화가 왔다. 갑자기 떠난다고 배웅을 나와달라고 한다. 동걸은 야간열차에 탑승했다.


-. 내가 올라타려 하자 열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발을 헛디뎠다. 젖은 승강장에 엎어졌다. 몸을 일으켰다. 열차는 점차 속력을 내고 있었다. 사력을 다해 달렸다. 난간에 매달렸다. 오른발을 올려놓았다. 빗발이 얼굴에 몰아쳤다. 남은 왼발을 난간에 올려놓았다.


소설은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었다. 야간열차가 이렇게 슬플 수가 있을까.. 어둠 속에 살며, 어둠을 뚫고 간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 어둠을 뚫으면 과연 빛이 보일까. 동걸은 아마도 그 빛을 보고 싶어서 야간열차를 타고 싶었고, 자꾸만 기차소리의 이명이 들렸던 것 아닐까. 영현은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가 삶 속에서 동걸을 이해하는 친구가 된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내일은 뭘까. 문득 나도 그런 야간열차를 타고 세상 밖으로 탈출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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