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를 살아냈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위안이 된다

by 부소유

출근 22일째가 되자 뱃속의 아이 6개월 차 검사를 받기 위해 아내와 병원에 함께 갔다. 아마도 둘이 같이 가게 되는 마지막 병원 방문일 것 같아 무리를 해서라도 시간을 맞췄다. 문득 아이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아기가 부끄러운 듯 살짝 보여주는 미소를 상상하며 기분이 좋아졌다. 점심식사로 동네의 중식당에서 짬뽕밥을 먹었는데 오랜만이었지만 여전히 맛이 좋았다. 집에 돌아와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어느덧 채사장의 강연 시간이 다 되어 서둘러 코엑스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 이미 자리가 꽉 차 서서 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한 시간 넘게 이어진 강연과 질의응답 시간을 흥미롭게 보냈다. 강연자 특유의 유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강연이 끝난 뒤에는 아내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사인을 받을 수 있었고, 저녁으로 코엑스의 사보텐에서 일본식 카레와 미니 소바를 맛있게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자정이 훌쩍 넘었고, 전날 무리하게 술을 마신 상태였지만 바쁜 하루를 보냈다는 안도감에 편히 잠자리에 들었다.


출근 23일째에는 전날 늦게 잠들어 몸이 찌뿌둥했는데, 아내가 요즘 매일 밤 성수를 뿌려주어도 악몽이 찾아오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몸이 늘어져서 공을 치고 게임을 하거나 장을 보러 가려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졸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저녁이 되어 마트에 갔는데 갑자기 컨디션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아내가 마트에서 상품 설명을 들으며 한참 머무르고 있어 마음이 조급해졌다. 결국 불편한 기분으로 하루를 마무리했지만,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힘든 점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달래니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출근 24일째에는 밤에 잠을 설쳤는데, 아내 역시 내 걱정에 마음을 쓰는 모습이었다. 회사에 도착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원그룹 팀장에게 메신저를 보냈는데, 기대 이상의 좋은 답을 들었다. 곧 이동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기뻤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어서 아내에게만 조심스레 소식을 전했다. 보너스 명세를 확인했는데 기대보다 적었지만 그래도 감사하자는 마음으로 넘겼다. 저녁에 처갓집 제사가 있어 가족이 모였는데, 오랜 시간 앉아 있으려니 허리도 아프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게다가 아내도 무리한 탓에 배에 통증을 호소해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밤에 아내의 배를 만져주며 안아주고 달래주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출근 25일째에는 휴일을 맞아 서울로 가야 했다. 명상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해 아내와 어머님이 함께 동행했고, 나는 명상 센터에서 수업을 들었다. 전날 잠을 또 설친 데다 최근 자주 악몽을 꾸는 탓에 몸이 피곤했고 명상 중에 식은땀까지 흘렸다. 허리와 다리까지 함께 불편해 제대로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점심으로 코엑스의 피에프 창에서 식사를 함께했는데 맛있게 잘 먹었다는 사실에 뿌듯함이 들었다. 명상이 끝나고 나서는 얼른 집에 가서 게임을 하며 기분 전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 26일째에는 전날 게임을 하다 잠이 들었는데도 악몽에 시달렸다. 같은 꿈을 세 번이나 꾼 듯한 기분이 들어 더욱 피곤했다. 아내가 어머님과 외박을 한 덕분에 나는 집에서 하루 종일 게임만 하며 보냈다. 축구 게임 이벤트를 치르고, 여러 시뮬레이션을 하며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중간에 특정 선수들을 획득하면서 성취감을 느꼈고, 다른 시뮬레이션 게임도 클리어 직전까지 달렸다. 아내가 없는 집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쓰는 것이 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허전함도 느꼈다. 그래도 가끔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 27일째에는 악몽 없이 비교적 잘 잔 것 같아 월요일 아침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맞이했다. 이번 주 안에 인사이동 명령이 내려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현재 팀에서 해줄 수 있는 업무와 관련 공부를 병행하기로 했다.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도 동료들과 차를 마시며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상담소에서 또 한 번 내 이야기를 정리하며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나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작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크게 보고 행동하자는 다짐을 새로이 했다. 퇴근길에는 아내가 소고기를 먹고 싶다기에 고기를 사와 함께 구워 먹으며 작은 행복을 만끽했다.


출근 28일째에는 약을 먹고 잠이 들었는데, 오랜만에 꿈이 없이 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춥지만 알찬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회사에 도착했는데, 이동을 기다리던 중 지원팀 상무가 보고 싶어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조금 이른 시간에 먼저 찾아가 뵈었더니 압박면담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다양한 상황별 대처 방법, 테스트 결과, 목표와 의지 등을 묻는 질문이 많아 긴장감이 컸다. 삼십 분간 최선을 다해 답변을 했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곧바로 해당 팀의 팀장이 인력팀에 이동 요청 메일을 보냈고, 실제로 이동 날짜가 잡혔다. 아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이동을 주도한 팀장이 다시 보자는 문자를 보냈다. 나는 곧장 회사로 돌아가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내 인사사항에 관한 배경과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했고, 팀장은 나를 잘 이해해 주었다. 자리까지 미리 배정해 주겠다는 말에 마음이 한층 편해졌고, 진심 어린 축하까지 받아서 왠지 모르게 의심했던 순간들이 미안해졌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직접 케이크를 사와 아내와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동안 정말 힘들었지만 앞으로 기분 설레고 개운한 출근이 기대되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우울감에 시달리면서도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냈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위안이 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고, 작은 즐거움을 찾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값진 배움으로 남았다. 고단한 하루 끝에서 아내와 함께 나눈 작은 위로,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인 노력이 결국은 스스로를 구해냈다고 믿는다. 그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이제는 언제든 또 다른 어려움이 다가오더라도 한 발씩 전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