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장발남 28화

거울에 비친 내 모습

by 부소유

머리를 자른 지 일주일.


매일 아침이 낯설었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볼 때마다 깜짝 놀랐다.


‘이게 나야?’


짧은 머리의 내가 거기 있었다. 1년 반 전으로 돌아간 모습. 하지만 뭔가 달랐다. 눈빛이 달랐다.


“또 거울 보고 있어?”


아내가 욕실로 들어왔다.


“아직 적응이 안 돼.”


“금방 익숙해질 거야.”


하지만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다.


출근 준비가 빨라졌다. 샴푸도 조금, 드라이도 5분. 린스도, 트리트먼트도 필요 없었다.


‘편하긴 하네...’


하지만 그 편함이 서글펐다.


회사에서의 반응은 극적이었다.


“김 과장, 요즘 일이 더 잘 되는 것 같은데?”


부장님의 칭찬.


“아무래도 단정하니까 집중력도 좋아지고.”


터무니없는 논리였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역시 내 말이 맞았지? 외모가 바뀌니 모든 게 달라져.”


거래처의 반응도 달랐다.


“김 과장님, 뭔가 달라지셨네요?”


“머리 잘랐습니다.”


“아, 그래서! 훨씬 프로페셔널해 보이세요.”


프로페셔널. 그게 짧은 머리를 의미하는 건가.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동료들과 식사를 했다.


“과장님, 확실히 젊어 보여요.”


“그래?”


“네, 이상하게 머리 길 때보다 더 젊어 보여요.”


아이러니했다. 개성을 포기하니 젊어 보인다는 평가.


화장실에서 또 거울을 봤다. 손이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하지만 잡히는 게 없었다.


‘아직도 버릇이...’


머리끈을 만지작거리는 버릇도 남아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없는 머리끈을 찾았다.


퇴근길 지하철. 이제 아무도 내 머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편했다. 하지만 동시에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평범한 40대 회사원 1번.’


그게 지금의 나였다.


집에 돌아왔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데 딸이 다가왔다.


“아빠...”


“응?”


“오늘도 거울 많이 봤지?”


들켰다.


“조금...”


“나도 알아. 아빠가 아직 적응 못 하는 거.”


“...”


“괜찮아. 언젠가 다시 기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언젠가가 올까?


저녁을 먹으며 아들이 말했다.


“아빠, 오늘 친구들이 물어봤어.”


“뭘?”


“아빠 왜 머리 잘랐냐고. 멋있었는데 아쉽다고.”


“그래?”


“응. 특히 여자애들이 많이 아쉬워했어.”


작은 위로였다.


긴 머리일 때는 매일 사건이 있었다. 누군가의 시선, 작은 차별, 때로는 응원... 하지만 이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평범하다는 게 이런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눈치 받았던 일들, 머리를 묶었다 풀었다 했던 일들, 딸이 선물해준 머리끈. 갑자기 서랍을 열었다. 머리끈이 그대로 있었다. 검은색, 갈색, 네이비색.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목에 차보았다. 팔찌처럼.


‘언젠가...’


다시 서랍에 넣었다. 새벽, 잠이 오지 않아 거실로 나갔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시며 창밖을 봤다.


‘나는 누구일까?’


짧은 머리의 나? 긴 머리의 나? 아니면 그 너머의 무언가? 핸드폰을 꺼내 사진첩을 열었다. 긴 머리일 때의 사진들이 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 머리 묶은 모습. 가족들과 찍은 사진.


‘저게 나였어.’


하지만 지금의 나도 나다. 단지 다른 모습일 뿐.


“안자?”


아내가 나왔다.


“응... 생각이 많아서.”


“머리 때문에?”


“그것도 있고... 여러가지로..”


아내가 옆에 앉았다.


“후회해?”


“모르겠어. 후회인지, 아쉬움인지... 그 둘다 일지도..”


“당신은 당신이야. 머리가 길든 짧든.”


“알아. 하지만...”


“하지만?”


“뭔가 잃어버린 것 같아. 나의 일부를.”


아내가 내 손을 잡았다.


“찾을 거야. 언젠가는.”


그날 밤,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다시 긴 머리였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렸다. 자유로웠다. 꿈에서 깨어나 거울을 봤다. 여전히 짧은 머리의 내가 있었다. 하지만 눈빛은 살아있었다.


‘포기하지 않을 거야.’


작은 다짐을 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도 짧은 머리로 출근할 것이다. 하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긴 머리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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