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 섰다. 이제는 어깨를 넘어 가슴 가까이 내려온 머리카락. 1년 반 동안 기른 결과였다.
“오늘이야?”
아내가 뒤에서 물었다.
“응...”
“정말 자를 거야?”
“어쩔수가없다.”
어젯밤, 인사팀에서 최종 통보가 왔다. 부장님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로 결국 강력 권고 형태의 조치가 내려졌다.
‘팀워크와 조직 문화를 위해...’
그럴듯한 명분이었다.
“아침 먹고 가.”
“입맛이 없어.”
“그래도 먹어. 힘들 텐데.”
아내가 차려준 아침을 억지로 먹었다. 밥알이 목에 걸렸다.
딸이 학교 가기 전에 내 방으로 왔다.
“아빠...”
“응?”
“정말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런 것 같아.”
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빠가 제일 아빠다웠는데...”
“머리 짧아도 아빠는 아빠야.”
“알아. 그래도...”
딸을 안아줬다. 따뜻했다.
미용실로 가는 길. 발걸음이 무거웠다. 마치 사형장으로 가는 기분이었다.
‘1년 반...’
그동안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수많은 시선들, 편견들, 그리고 작은 응원들.
미용실에 도착했다. 헤어디자이너 재현이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다듬으러... 어?”
내 표정을 보고 눈치챘나 보다.
“설마... 자르시려고?”
“네...”
“왜요? 이렇게 잘 기르셨는데!”
사정을 설명했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정말 아쉽네요. 고객님처럼 잘 어울리는 분도 드문데...”
“어쩔 수 없네요.”
거울 앞에 앉았다. 가운을 두르고 마지막으로 내 긴 머리를 봤다.
“어느 정도로 자를까요?”
“짧게... 회사원 스타일로...”
“정말요?”
재현이 한 번 더 확인했다.
“네.”
가위를 든 재현의 손이 잠시 머뭇거렸다.
“시작할게요.”
서걱.
첫 가위질과 함께 머리카락이 떨어졌다. 길고 긴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서걱. 서걱.
소리만 들렸다. 눈을 감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
“고객님...”
재현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혹시 이거... 기념으로 가져가실래요?”
잘린 머리카락 몇 가닥을 모아 들고 있었다.
“아니... 괜찮아요.”
“정말요? 이렇게 긴 머리 다시 기르려면 시간이...”
“버려주세요.”
미련을 두고 싶지 않았다.
30분 후, 모든 게 끝났다.
“다 됐습니다.”
거울을 봤다. 낯선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아니, 1년 반 전의 내가 앉아 있었다.
짧고 단정한 머리. 양옆은 바짝 밀렸고, 위는 가지런히 정리됐다.
“괜찮으세요?”
재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네...”
가벼웠다. 머리카락의 무게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마치 내 일부를 잃은 것 같았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재현이 말했다.
“고객님, 언제든 다시 기르고 싶으시면 오세요. 도와드릴게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다시는 없을 것 같았다.
밖으로 나왔다. 머리가 가벼웠다. 바람이 불어도 날리는 게 없었다.
회사로 가는 길, 편의점에 들렀다.
“어서오세요!”
그 알바생이었다.
“아... 고객님?”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네, 저예요.”
“헉! 머리 자르셨네요! 왜요?”
“그냥... 자를 때가 된 것 같아서...”
“아쉬워요. 정말 잘 어울렸는데...”
작은 위로였다.
회사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동료들이 놀랐다.
“김 과장? 머리 잘랐네?”
“응...”
“시원해 보인다!”
“이제야 사람 같네!”
예상했던 반응들이었다.
사무실에 들어갔다. 부장님이 나를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김 과장! 이제야 제대로 됐군!”
“...”
“역시 우리 팀 에이스답게 결단력이 있어. 잘했어!”
칭찬이 비수처럼 꽂혔다.
자리에 앉았다. 김 대리가 다가왔다.
“과장님...”
“괜찮아.”
“정말 괜찮으세요?”
“응. 시원하고 좋네.”
거짓말이었다.
점심시간, 화장실에서 거울을 봤다.
이제 머리 정리할 필요도 없었다. 빗도, 머리끈도 필요 없었다.
편했다. 하지만 공허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왔다.
“어서 와... 오마.”
아내가 놀랐다.
“익숙해질 거야.”
“그래... 수고했어.”
저녁 식탁. 가족들이 날 훔쳐봤다.
“아빠...”
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응?”
“그래도 아빠야. 머리 짧아도.”
“그래.”
“언젠가 다시 기를 거지?”
대답할 수 없었다.
오늘 머리를 잘랐다. 1년 반 만이다. 미용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내 작은 반항이었고, 자유였고, 나다움이었다. 다시 돌아왔다. 정상적인 회사원의 모습으로.
모두가 만족한다. 부장님도, 회사도, 사회도. 하지만 나는? 거울을 본다. 낯선 나를. 아니, 익숙한 나를. 무엇이 진짜 나일까? 긴 머리의 내가? 짧은 머리의 내가? 모르겠다. 단지 하나는 확실하다. 오늘 잃은 것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나의 일부였다는 것.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비록 머리는 잘렸지만, 마음은 여전히 자유롭다. 언젠가, 정말 언젠가, 다시 기를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날을 꿈꾸며 오늘을 견딘다.
서랍을 열었다. 거기엔 머리끈이 그대로 있었다. 버리지 못했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