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중학교 입학식.
“아빠, 오늘 진짜 와야 해?”
아침부터 아들이 불안해했다.
“당연하지. 네 입학식인데.”
“그런데...”
아들이 말을 멈췄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다.
“내 머리 때문이지?”
“...”
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이 뭐라 할까 봐?”
“응... 초등학교 때도 몇 명이 아빠 보고 이상하다고...”
가슴이 아팠다. 내 선택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고 있었다.
“오늘은 머리 묶고 갈게.”
“진짜?”
“응. 최대한 단정하게.”
아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내가 거들었다.
“그래, 오늘은 좀 신경 써서 가자. 애 입학식이잖아.”
머리를 낮게 묶고, 정장을 빼입었다. 거울을 봤다. 어색한 조합이었다.
학교에 도착했다. 강당으로 가는 길, 다른 학부모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저 사람 머리 좀 봐.”
"남자가 저러고 다니네."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 불쌍하겠다.”
그 말에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강당에 들어갔다. 아들의 반 학부모석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옆자리 학부모에게 인사했다. 그녀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입학식이 시작됐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
“우리 학교는 전통과 품격을 중시합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님들도 모범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순간 그 말이 나를 향한 것처럼 느껴졌다.
식이 끝나고 교실로 이동했다. 담임선생님과의 첫 만남.
“안녕하세요, 2반 담임입니다.”
젊은 여선생님이었다. 학부모들을 둘러보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잠시 멈췄다.
“아, 네... 학부모님들 모두 반갑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계속 내게 머물렀다.
학부모 자기소개 시간.
“저는 김준호 아버지입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교실이 조용해졌다.
“네... 반갑습니다.”
담임의 반응이 미지근했다.
쉬는 시간, 복도에서 아들을 만났다.
“아빠...”
아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왜? 무슨 일 있어?”
“친구들이... 우리 아빠 머리 이상하다고...”
“...”
“아빠, 미안한데... 다음부터는 엄마만 와도 될까?”
아들의 말에 가슴이 무너졌다.
“그래... 알았어.”
집에 돌아오는 길, 아내가 말했다.
“애한테 미안하지?”
“응...”
“나도 당신 편들고 싶은데... 애가 상처받는 건 다른 문제야.”
맞는 말이었다.
“잘라야 하나...”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저녁 식탁. 무거운 분위기였다.
“아빠, 나 때문에 자르지 마.”
아들이 갑자기 말했다.
“응?”
“사실... 아빠 멋있어. 남들이랑 다르고.”
“그런데 아까는... 친구들이 뭐라 해서 그랬어..”
아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빠가 아빠답게 사는 게 좋아..”
아들의 성숙한 말에 나도 울컥했다.
“고마워.”
“대신 학교 행사 때는 좀... 머리 단정하게 해 줘.”
“알았어.”
타협점을 찾았다.
다음 날,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아빠, 오늘 재밌는 일이 있었어.”
“뭔데?”
“담임선생님이 나 따로 불렀어.”
불안했다.
“뭐라고 하셨어?”
“아버지가 특별하신 분 같다고. 용기 있으신 것 같다고.”
“정말?”
“응. 그리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친구들한테 그런 얘기했대.”
의외의 반응이었다.
“그래서 애들이 더 이상 뭐라 안 해.”
“다행이네.”
“근데 아빠, 진짜 왜 머리 기르는 거야?”
아들의 진지한 질문에 잠시 생각했다.
“음... 나도 나만의 삶을 살고 싶어서?”
“그게 머리 기르는 거야?”
“작은 시작이지.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하는.”
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 것 같아. 나도 하고 싶은 거 많은데 못하잖아.”
“뭐 하고 싶은데?”
“음... 유튜브?”
“좋네. 해봐.”
“진짜? 엄마는 공부하래.”
“공부도 하면서 하면 되지.”
아들이 환하게 웃었다.
“역시 아빠가 최고야!”
오늘 아들의 입학식에 다녀왔다. 내 머리 때문에 아이가 상처받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잠시 흔들렸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잘라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아들이 말했다. ‘아빠가 아빠답게 사는 게 좋다’고. 아들이 나보다 더 성숙했다. 창피하면서도 자랑스러운 아빠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담임선생님의 반응도 의외였다. 젊은 세대는 확실히 다르다.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앞으로도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다. 남들과 다르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모습. 타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태도. 작은 것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용기. 이런 것들을 보여주고 싶다. 오늘 아들과 나눈 대화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빠가 최고’라는 그 말이, 어떤 상보다 값지다.
아들 방을 살짝 들여다봤다.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언젠가 아들도 자신만의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 오늘의 기억이 작은 용기가 되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