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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미스터리를 쓰는 법

by 부소유
일본 소설계의 반전의 제왕이라고 하는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법서다.


작법서는 그만 읽어야지 하면서도 결국 또 읽었다. 이 책은 드라마 작가 과정에서 공부 중인 어떤 동인이 추천해 준 책이다.


일본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는 미스터리 장르에서는 유명하다고 하지만 처음 들어본 작가이기도 하고, 미스터리 장르에 특별한 흥미가 없어서 의구심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 우선 작가 이력 중 흥미로운 점은 48세에 등단했다는 점이다. 그는 젊었던 대학시절 각종 공모전에 응모했으나 계속 탈락해서 그냥 평범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게다가 그 직장 생활도 잘 맞아서 별일 없으면 정년까지 채울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서점 행사장에서 우연히 만난 소설가를 보고 감정의 동요가 와서 다시 취미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문학상을 수상하며 다수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 책을 다 읽어본 결과 이 책은 글쓰기 기술보다는 글쓰기라는 행위에 대한 인문학 책이었다. 책의 초반부에는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특징을 정리해 주고 있지만, 미스터리 작법을 넘어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법과 생활에 대한 중후반부는 소설가의 생각과 태도에 대해서 살펴보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다. 이 책은 미스터리 작품을 쓰는 법이라고 장르를 특정지어서 말하고 있지만 사실 글쓰기라는 행위 전체를 갖고 말하고 있다.


전반부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내용은 인풋에 대한 것이다. 전반부에도 그렇지만 이 책의 작법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인풋 이야기가 꼭 뒤따라 나온다. 그만큼 작가는 인풋을 강조하고 있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다는 얘기다. 작가는 영화 <ET>를 수차례 반복해 보며 이야기의 구성을 깨달았다고 하니 인풋을 꼭 책으로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작가는 영화광이었다고 하니 영화도 어느 정도 큰 역할을 했을 것 같다. 그 인풋만 축적하면 꼭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사실적인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꼭 법조계, 강력계가 경험이 있거나 인터뷰를 하지 않더라도 미스터리를 계속 집필할 수 있는 원동력은 인풋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금은 OTT 서비스에 일정 요금만 지불한다면 수많은 작품을 감상하고 분석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환경인가. 물론 작가는 독서를 더 강조하긴 한다.


이 책은 후반부가 흥미롭다. 다른 작법서에는 잘 언급되지 않는 사소한 혹은 그래서 더 궁금한 내용이 짧게 정리되었다. 물론 작가의 생각이지만 상당 부분 공감하며 읽었다. 글 쓰면서 생기는 졸음과의 싸움, 화가 날 때, 사회생활과 전업 작가에 대한 경험과 의견, 글을 써야 하는 이유, 신입 작가와 중견 작가의 태도 등은 상당히 개인적인 내용으로 가득해서 흥미로웠다. 그 외에도 편집자와의 관계, 자비 출판에 대한 생각, 작가의 SNS 활동 등의 이야기는 실질적으로 와닿아서 좋았다. 원고를 넘기고 나서 90%는 편집자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 자비 출판은 하지 않는다는 것, SNS 활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 역시 공감한다. 사실 이런 내용을 SNS에 기록하면 상당한 팔로우와 좋아요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여서 작가도 계속 고민될 것이다. 요즘은 독자와 소통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제일 인상적인 부분은 ‘영화 감상과 독서를 취미라기보다 식사’라는 챕터였다. 저자는 매일 하루에 영화를 한 편 보고, 책을 한 권 읽는 게 습관이라고 한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취미가 아니고 습관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식사에 비유한다. 우리가 습관처럼 식사를 하듯 당연하게 하는 행위가 영화 감상과 독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영화도 책도 편식하지 않는다고 한다. 영화는 수 천편이 넘는 블루레이 라이브러리에서 눈을 감고 고른다고 하며, 책도 진보초를 무작위로 돌아다니며 잡히는 것을 구매해서 읽는다고 한다. 장르도 가리지 않고 읽는다고 하며 스스로 잡식이라고 한다. 편식하지 말고 잡식하는 방법이 소재를 계속 생각하는 비결이라고 한다.


나 또한 어느 순간부터 독서를 식사처럼 하고 있다. 2017년부터 독서를 시작했으니 벌써 8년이다. 글쓰기는 2023년부터 했으니 아직 멀었다. 읽어야 할 수십, 수백 권의 도서 목록을 보면 가야 할 길이 한창이다. 그렇게 어느새 식사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어쩔 때는 식사 시간도 아까워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이런 마인드로 저자가 마지막 챕터에서 강조한 것처럼 목숨이 붙어있는 한 계속 인풋과 아웃풋의 반복을 지속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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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처럼 살고 싶지만, 현실은 이방인의 뫼르소 처럼 살고 있습니다. 싯다르타 처럼 속세를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은 호밀밭의 홀든 콜필드 랍니다. 뭐 그럼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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