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오한기의 소설 같은 에세이다.
민음사 출판, 눈에 띄는 고급스럽고 감각적인 디자인, 얇은 양장본, 엉뚱하고 진지해 보이는 표지그림, 자꾸만 뭔가 거슬리는 제목은 이 책을 골라서 읽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나같은 사람을 노린 책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이미 언젠가 신간 코너에서 눈에 띄어서 집어 들었다가 놨다가 반복했던 이 책을 골라서 나도 모르게 대출을 해서 읽고 있었다. 결국 나는 오한기 작가라는 사람이 소설가인지도 모른채로, 한 소설가의 소설 쓰기 싫은 날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이 책에 여러번 등작하는 또 다른 소설가 정지돈 작가는 여러번 들어봐서 알고 있었다는 것은 작가에게 의문의 1패를 전달할 것 같다. 하지만 이 흥미로운 책 덕분에 소설가 오한기를 넘어서 인간 오한기를 더 알고 싶어졌고 그의 또 다른 작품을 읽고 싶어졌다.
이 에세이는 초반에 언급되어 있지만 ‘소설에 가까운 에세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소설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소설에 가까운 에세이는 또 뭘까. 다 읽어본 결과 이 책은 소설과 에세이의 중간, 그러니깐 에세이를 쓴다고 했지만 허구적인 요소도 있다는 말이었다. 초반에는 이제는 우리의 고전에 가까워지고 있는 작품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처럼 어딘가 무기력해 보이는 한 소설가의 일상이 서술되어 있었다. 저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유명 소설가라고 하기에는 무명 소설가에 가까운 처절한 일상이 엿보였다.
주요 등장인물은 주인공인 소설가 오한기 작가와 아내 ‘진진’, 딸 ‘주동’, 동료 ‘정지돈’, 그리고 업체 대표, 팀장, 공무원 주무관 등이 있었다. 가족과 동료 작가는 실제 인물을 살려서 기록했고, 그 외 인물들은 허구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에세이를 모두 읽고 나면 모두 사실은 실존 인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대표와 팀장이 그렇다. 특히 오한기 작가 몰래 자꾸 낙서를 하고 사라지는 범인은 대체 누구인지 계속 궁금하게 만든다. 그만큼 모든 이야기들이 굉장히 사실적이다. 그러면서 소설가 오한기씨는 염세주의적이기도 하고, 가족적이며, 게으르기는 하지만, 성실하기도 하고, 착한것 같으면서도 한성격 하는 것으로 보여서 굉장히 모순적인 인물로 보였다. 이 작가의 소설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재미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세이를 통해 들여다본 오한기씨의 일일은 처절했다. 세입자로 살며 올라가는 전세보증금을 걱정하며 딸의 적금을 들여다보는 순간, 요거트를 먹고 싶지만 2만원 가깝게 올라가는 가격을 보고 포기하는 모습, 어떤 사정으로 인해서 법원에 드나드는 과정,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와 아버지를 간병해주는 어머니, 아내에게 아쉬운 소리 못하고 육아를 전담해야하는 상황들, 딸과 보내는 시간 중에 계속 반복되는 현타, 폭언을 그냥 들어야하는 일, 마감에 쫒기는 일상, 하소연 할 곳도 없는 저질인맥, 수면부족, 만성피로 등등 이 에세이를 읽으면 이런 소설가로는 하루도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그의 처절한 삶의 일상이 실절적으로 와 닿았다. 오한기씨 혹은 다른 많은 소설가, 시인, 에세이스트들은 정말 이렇게 피로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조금 과장되어 있긴 하겠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 순간 진짜 같아서 소름이 돋기도 했다. 특히 초등학생의 첫 방학을 함께 보내는 것, 그 중에서 아내 없이 아이와 둘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 그 안에서의 조율에서 실패, 실패의 반복에서 현타까지. 상황이 구체적으로 서술될 수록 오한기씨의 일상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게다가 수시로 오한기씨에게 폭언을 하는 팀장은 마치 내가 겪었던 어떤 팀장이 내게 폭언을 하는 것 같아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게다가 쌍욕으로 반복되는 낙서를 볼때면 오한기씨 처럼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대체 왜 이렇게 욕을 먹으며 힘들게 혹은 불안하게 글 쓰는 삶을 이어가는 것일까.
나 또한 그렇다. 남들은 편안하게 직장생활을 유지하고 있는데 난 왜 이렇게 그 직장을 뛰쳐나와서 글을 쓰며, 그 글을 쓰기 위한 책을 읽고, 또 글을 끄적이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내게도 물론 모순적이게도 책을 읽기 싫은 날, 글을 쓰기 싫은 날이 있다. 하지만 회사 가기 싫은 날이 더더더 많다. 그래서 그나마 덜 싫은 일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이 책의 말미에 작가의 말을 읽으며 마음의 안정감을 찾았다. 그는 긍정적인 인간이었다. 이 글은 민음사 블로그에 연재했던 에세이 모음집이며, 이 책이 출간된 지금은 많은 것들이 정리된 모양으로 보인다. 나 또한 조만간 많은 일들이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나 또한 긍정적인 마음으로, 혹은 밝은 마음으로 일상을 유지하다보면 안정감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날을 꿈꾸며 불편한 일상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의 마지막 단락, 마지막 문장이 여운을 남긴다. ‘하기 싫은 걸 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게 맞는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면 안 된다고 용기를 복돋아 주는 게 맞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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