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는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다. 3층 작업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첫 햇살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책상 앞에 앉았다. 노트북을 켜고 빈 화면을 마주했다. 흰 공백이 때로는 가능성으로, 때로는 공포로 다가왔다. 오늘은 무엇을 쓸까. 어제 쓴 글을 다시 읽으며 이어갈 부분을 생각했다. 첫 책 ‘반지하의 빛’이 출간된 지 두 달이 지났다. 초판 3천 부는 예상보다 빨리 팔렸다. 출판사에서 2쇄를 결정했다. 서평도 좋았다. ‘담담하지만 울림이 있는 문장’, ‘우리 시대 청년의 자화상'’, ‘계급과 차별을 정면으로 다룬 용기 있는 작품’,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 은지는 서평을 읽을 때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자신의 이야기가 이렇게 읽힌다니. 독자들의 편지도 왔다. 대부분 이메일이었지만 손편지도 있었다. 한 독자는 썼다. ‘저도 반지하에 살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이 울었습니다. 제 이야기 같아서요.’ 또 다른 독자는 ‘차별받는 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은지는 모든 편지에 답장을 썼다. 한 명 한 명의 독자가 소중했다.
두 번째 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소설이었다. 자전적 에세이가 아닌 완전한 픽션. 하지만 쉽지 않았다. 인물을 만들고, 사건을 구성하고, 갈등을 만드는 일. 은지는 수없이 썼다가 지웠다. 첫 문장을 열 번은 고쳐 썼다. ‘그녀는 매일 같은 시간에 지하철을 탔다.’ 아니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이것도 아니다. ‘스물다섯 살 겨울, 그녀는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 이걸로 시작해보자. 글이 막힐 때면 산책을 나갔다. 동네를 걸으며 사람들을 관찰했다. 시장 상인들의 대화,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 공원에서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모든 것이 이야기의 재료가 되었다. 작은 수첩에 메모했다. ‘할머니의 구부러진 등’, ‘청년의 피곤한 눈’, ‘아이의 맑은 목소리’.
어느 날, 은지는 예전 직장 동료를 만났다.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동료가 - 김 차장, 아니 작가님. 잘 지내세요? 책 봤어요. 은지가 - 그냥 은지라고 불러주세요. 동료는 부러운 듯 - 전 아직도 야근이에요. 월급은 오르지 않고 일만 늘어요. 은지는 그녀의 피곤한 얼굴을 보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작업실로 돌아와 은지는 새로운 장면을 썼다. 야근하는 여성의 이야기. 형광등 아래서 혼자 남아 일하는 그녀. 빈 사무실의 적막. 커피 자판기의 웅웅거리는 소리. 모니터 빛에 비친 창백한 얼굴. 은지는 경험하지 않은 것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었다. 공감의 글쓰기.
문학 강연 요청이 왔다. 지역 도서관에서 하는 작은 강연이었다. 은지는 망설였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수락했다. 작가로서의 첫 공식 행사였다. 강연 주제는 ‘상처를 글로 쓰는 법’. 강연 당일, 30명 정도의 청중이 모였다. 대부분 여성이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었다. 은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시작했다. - 저는 반지하에서 자랐습니다. 가난했고, 차별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히려 글의 재료로 삼기로 했습니다. 청중들은 집중해서 들었다. 질문도 많았다. 한 중년 여성이 - 저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용기가 없어요. 어떻게 시작하죠? 은지가 - 일단 쓰세요. 못 써도 괜찮아요. 첫 문장만 쓰면 됩니다.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강연이 끝나고 한 할머니가 다가왔다. - 작가님, 저는 문맹이었어요. 50에 한글 배웠습니다. 이제 겨우 읽을 수 있어요. 작가님 책이 제가 처음 끝까지 읽은 책이에요. 은지는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거칠고 주름진 손이었다. 노동의 손이었다. 어머니의 손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은지는 생각했다. 글쓰기란 무엇일까. 단순히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결하는 것이 아닐까.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을, 과거와 현재를, 상처와 치유를.
가을이 되자 은지는 첫 원고료를 받았다. 월간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한 대가였다. 50만 원. 많지 않은 돈이었지만 의미가 있었다. 글로 번 첫 수입이었다. 은지는 그 돈으로 부모님을 외식에 초대했다. 반지하 근처 작은 식당이었지만 특별한 저녁이었다. 아버지가 - 우리 은지가 작가가 되다니. 자랑스럽다. 어머니가 - 건강만 챙기면서 해. 무리하지 말고. 민수가 - 누나, 나 누나 책에 나오는 동생이지? 유명해졌어! 가족들의 응원이 은지에게 힘이 되었다.
두 번째 책 원고를 마쳤다. 400매 분량의 장편소설이었다. 제목은 ‘지하철을 타는 여자들’. 매일 출퇴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였다. 각자 다른 사연을 가진 여섯 명의 여성. 그들이 같은 지하철 칸에서 만나는 이야기. 은지는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며 긴장했다. 이번에는 어떤 반응일까. 편집자가 전화했다. - 작가님, 원고 잘 읽었습니다. 전작보다 깊어졌어요. 인물들이 살아 있어요. 은지는 안도했다. 몇 가지 수정 사항이 있었지만 큰 틀은 통과했다. 내년 봄 출간 예정이었다.
작업실에서 은지는 세 번째 작품을 구상했다. 이번에는 가족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할머니, 어머니, 자신으로 이어지는 여성 3대의 이야기. 차별과 편애, 상처와 화해의 이야기.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많았지만, 아니 그래서 더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새벽, 은지는 노트북 앞에 앉아 썼다. ‘할머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첫 문장을 쓰고 은지는 멈췄다. 눈물이 났다. 할머니를 용서하지 못한 자신이, 그리고 그런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자신이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계속 썼다. 글쓰기는 그런 것이었다. 모순을 껴안고 가는 것.
오늘도 썼다. 잘 쓰지는 못했지만 썼다. 매일 쓰는 것이 작가의 일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영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반지하에서 빛을 찾듯이, 빈 종이에서 이야기를 찾는다. 이것이 내가 선택한 삶이다. 불안하지만 충실한, 가난하지만 풍요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