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방에 낯선 얼굴이 나타났다.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이라고 했다. 이름은 태식. 나이는 스물다섯이었다. 짧게 깎은 머리, 각진 턱, 굵은 목. 아직 군인 티가 남아 있었다. 첫인상부터 불편했다. 동아리방에 들어서자마자 담배를 꺼내 물었고, 재떨이를 찾는 대신 빈 캔에 털었다.
준호 선배가 태식을 소개했다. 동아리 실력자였다고 했다. 드럼을 쳤는데 수준급이었다고. 하지만 태식의 첫마디는 실망스러웠다.
- 씨발, 좁아터진 방구석 여기 여전히 좆같네. 2년 동안 발전이 없어.
동아리방을 둘러보며 내뱉은 말이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태식은 아랑곳하지 않고 드럼 앞에 앉았다. 스틱을 잡고 몇 번 두드리더니 혀를 찼다.
- 스네어 헤드도 안 갈았네. 이런 걸로 무슨 연주를 한다고.
그날부터 동아리의 분위기가 변했다. 태식은 마치 상급자처럼 행동했다. 후배들에게 반말을 했고, 사소한 실수에도 욕설을 퍼부었다. 특히 후배들에게 가혹했다.
어느 날 연습 시간, 코드를 잘못 짚었다. 작은 실수였다. 하지만 태식이 갑자기 연주를 멈추게 했다.
- 야, 씨발 새끼야. 귀가 없냐? 그것도 못 듣고 계속 치고 있어?
후배가 얼굴을 붉히며 사과했지만 태식은 멈추지 않았다.
- 군대 갔다 와봐. 이런 실수하면 뺑뺑이 돌아. 정신 차려, 씨발.
김명상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 선배, 그렇게 말씀하시면...
- 뭐? 너 뭐야?
태식이 김명상을 노려봤다. 김명상의 창백한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렸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 실수는 누구나 해요. 그렇게 욕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태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명상에게 다가갔다. 키 차이가 확연했다. 태식이 김명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 야, 병신 새끼야. 내가 누군지 알아? 니네 고삐리 시절 여기서 공연하던 사람이야.
태식의 침이 김명상의 얼굴에 튀었다. 김명상이 한 걸음 물러섰다. 나는 일어서려 했지만 준호 선배가 막았다.
그날 이후로 태식의 횡포는 더 심해졌다. 연습 시간마다 트집을 잡았다. 템포가 느리다, 음정이 틀렸다, 감정이 없다... 끊임없이 지적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욕설이 따라왔다.
- 이 씨발 새끼들아. 음악이 이따위로 하는 거야?
- 아가리 찢어버리기 전에 제대로 해.
- 군대 안 갔다 온 놈들은 다 그래. 정신이 썩어있어.
특히 김명상을 집중적으로 괴롭혔다. 김명상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중간에 끊었다.
- 감정이 없어, 감정이. 사춘기 중딩도 저것보단 낫겠다.
김명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참았다. 하지만 나는 김명상의 손이 떨리는 것을 봤다.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10월의 어느 날,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가을 축제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태식이 세트리스트를 바꾸자고 주장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헤비메탈 곡들로 채우자고 했다.
- 그런 곡들은 대중성이 없어요.
김명상이 조심스럽게 반대했다. 태식의 얼굴이 붉어졌다.
- 뭐? 대중성? 니가 음악을 알아?
태식이 김명상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김명상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김명상이 비틀거렸다. 원래도 약한 몸이었는데 태식의 거친 행동에 중심을 잃었다.
- 이 병신 같은 새끼가. 목소리만 좀 된다고 까부네.
태식이 다시 김명상을 밀었다. 김명상이 뒤로 넘어졌다. 의자에 부딪혀 쓰러졌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김명상을 일으키며 태식을 노려봤다.
- 그만하세요!
내 목소리가 동아리방에 울렸다. 태식이 나를 봤다. 비웃는 표정이었다.
- 오, 의리 있네? 병신 친구 감싸주고?
태식이 내게도 다가왔다.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술 냄새와 담배 냄새가 진동했다.
- 너희 둘 다 여기서 나가. 음악 하는 놈들이 이런 정신 상태로 무슨 음악을 해.
그 순간 김명상이 일어섰다. 창백한 얼굴에 결연한 표정이 떠올랐다.
- 좋아요. 나갈게요.
김명상이 자기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악보, 마이크, 가방. 하나씩 집어 들었다. 나도 기타를 케이스에 넣었다.
- 어디 가? 도망가는 거야?
태식이 조롱했지만 김명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짐을 챙겼다.
동아리방을 나서기 전, 김명상이 돌아봤다. 동아리 부원들을 둘러봤다. 몇몇은 미안한 표정이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준호 선배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그동안 고마웠어요.
김명상이 인사했다. 그리고는 동아리방을 나갔다. 나도 뒤따라 나왔다. 계단을 올라가는 김명상의 뒷모습이 떨리고 있었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 김명상이 주저앉았다. 화단 벽에 기대어 앉았다.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 씨발... 음악이 좋아서 시작한 건데...
김명상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김명상 옆에 앉았다. 할 말이 없었다.
- 미안해. 너까지 나오게 해서.
김명상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 아니야. 나도 나오고 싶었어.
사실이었다. 태식이 만든 그 썩은 분위기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그날 이후 우리는 동아리에 가지 않았다. 음악은 좋았지만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싫어졌다. 아니, 한 사람 때문에 모든 것이 망가진 것이 억울했다.
일주일 뒤, 준호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태식이 또 사고를 쳐서 동아리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술에 취해 후배를 때렸다고. 이제 돌아와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김명상은 고개를 저었다.
- 안 갈 거야. 이미 끝났어.
김명상의 결심은 확고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 깨진 것은 다시 붙여도 금이 간다. 우리의 음악에 대한 열정도 그랬다.
그 뒤로 김명상은 휴학을 했다. 방송작가 준비를 한다고 했다. 나도 휴학하고 편입 준비를 시작했다.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가끔 그때를 떠올린다. 태식이 나타나기 전, 우리가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던 시절을. 김명상의 노래와 내 서툰 기타가 어울리던 시절을. 그 시절은 태식이라는 폭력 앞에서 무너졌다.
폭력은 단순히 신체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말과 태도로도 사람을 파괴할 수 있었다. 태식은 우리의 음악을, 우리의 꿈을, 우리의 순수함을 파괴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오래도록 남았다.
김명상이 나중에 말했다.
- 그래도 후회는 없어. 그런 인간 밑에서 음악 하느니 안 하는 게 나아.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웠다. 만약 태식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계속 음악을 했을까? 김명상은 더 많은 무대에 섰을까? 나는 더 나은 기타리스트가 되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날 우리가 선택한 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었다는 것. 폭력 앞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