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를 그만두고 시간이 지났다. 나는 도서관 3층 구석 자리에 앉아 편입 수학 문제집을 펼쳐놓고 있었다. 미적분 공식이 빼곡히 적힌 노트가 옆에 쌓여 있었다. 샤프심이 부러질 때마다 까만 가루가 종이 위에 떨어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김명상은 같은 시각 종로에 있었을 것이다.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 등록했다고 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수업이 있다고. 드라마 작법, 예능 구성, 다큐멘터리 기획 같은 과목들을 배운다고 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2주 전이었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여느 때처럼 제육덮밥을 먹었다. 김명상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눈빛은 살아 있었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것 같았다.
- 방송작가라... 잘 어울리네.
내가 말했을 때 김명상이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불안도 섞여 있었다.
- 잘할 수 있을까? 경쟁이 치열하다던데.
김명상이 숟가락으로 밥을 뒤적이며 말했다. 평소와 달리 식욕이 없는 것 같았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 휴대폰을 확인했다. 김명상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오늘 첫 수업. 긴장된다.” 짧은 문자였지만 김명상의 떨림이 전해졌다. 답장을 하려다가 말았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편입 학원은 대방역 근처에 있었다. 매일 아침 7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가야 했다. 학원 건물은 오래되고 좁았다. 복도에는 항상 커피와 컵라면 냄새가 났다. 강의실에는 나처럼 편입을 준비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모두 절박한 표정이었다.
수학 강사는 대머리 중년 남자였다. 칠판에 수식을 써 내려가는 속도가 빨랐다. 따라 적기도 벅찼다. 가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도 질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들 알아듣는 것 같은데 나만 모르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에는 근처 식당에서 컵밥을 먹었다. 3천 원짜리 참치마요컵밥. 매일 같은 메뉴였지만 질리지 않았다. 아니, 질릴 여유가 없었다. 먹으면서도 영어 단어장을 봤다. 하루에 100개씩 외우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다.
어느 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김명상을 떠올렸다. 지금쯤 수업을 듣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을까. 방송작가의 꿈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을까.
공기가 서늘해지던 겨울의 문턱, 김명상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 야, 나 과제로 단막극 써야 해. 30분짜리.
김명상이 신나서 떠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쓸 건지, 어떤 인물을 만들 건지. 열정이 전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 주인공은 아픈 청년이야. 시한부 인생인데 마지막까지 사랑을 찾는 이야기.
자전적인 이야기인 것 같았다. 김명상은 자신의 삶을 극본에 녹여내려는 것 같았다.
나는 편입 시험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모의고사를 봤는데 성적이 좋지 않았다. 특히 수학이 문제였다. 아무리 공부해도 늘지 않았다. 문제를 보면 머리가 하얘졌다.
학원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을 봤다. 나도 따라 올라갔다. 담배는 피우지 않았지만 바람을 쐬고 싶었다. 옥상에서 보이는 서울은 회색빛이었다. 빌딩과 아파트, 그리고 매연으로 뒤덮인 도시.
한 학생이 울고 있었다. 세 번째 편입 시험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포기해야 한다고. 그 절망이 전염되는 것 같았다. 나도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12월 초, 김명상과 오랜만에 만났다. 얼굴이 더 야위어 있었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었다. 밤늦게까지 글을 쓴다고 했다.
- 요즘 하루에 두세 시간밖에 못 자.
김명상이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카페인 과다인지 피로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 몸은 괜찮아?
- 괜찮아야지. 이제 시작인데.
김명상이 가방에서 원고 뭉치를 꺼냈다. 빼곡하게 글씨가 적혀 있었다. 수정한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빨간 펜으로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한 흔적.
- 선생님이 재능 있다고 했어. 감정 표현이 좋다고.
김명상의 눈이 반짝였다. 오랜만에 보는 생기였다. 하지만 동시에 위태로워 보였다. 촛불이 꺼지기 전 마지막으로 크게 타오르는 것 같았다.
편입 시험일이 다가왔다. 일주일 전부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수학 공식이 떠올랐다. 영어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악몽을 꿨다. 시험장에 늦는 꿈, 답안지를 백지로 내는 꿈.
시험 전날, 김명상에게서 문자가 왔다. “잘할 거야. 넌 늘 잘해왔잖아.” 짧은 응원이었지만 힘이 되었다.
시험장은 대학교 강의실이었다. 수백 명의 수험생이 모여 있었다. 모두 나처럼 간절한 사람들이었다. 시험지를 받고 펼쳤을 때 손이 떨렸다. 첫 문제부터 막혔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읽었다. 아는 문제부터 풀기 시작했다.
시험이 끝나고 나왔을 때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잘 본 것 같지도, 못 본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끝났다는 안도감만 있었다.
결과 발표일, 나는 합격했다. 서울 시내 4년제 상위권 대학교 전자공학과.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김명상에게 전화했다.
- 축하해! 오늘은 돌솥비빔밥이다!
김명상이 기뻐했다.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것 같았다.
분식집에서 만났다. 김명상이 약속대로 돌솥비빔밥을 샀다.
- 나도 좋은 소식 있어. 교육원 수료작품이 방송사 공모전에 출품된대.
김명상의 얼굴에 희망이 있었다. 각자의 길을 가고 있었지만, 둘 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이 우리가 정기적으로 만난 마지막이었다. 나는 새 학교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김명상은 작가 생활을 시작하느라 정신없었다. 가끔 문자를 주고받았지만 예전 같지 않았다.
봄이 왔을 때, 김명상에게서 연락이 왔다.
- 종편 방송 예능 작가로 들어갔어. 막내지만.
축하한다고 답장했다. 하지만 만나지는 못했다. 나는 새 학교 새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바빴다. 김명상도 방송국 일로 밤낮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길을 갔다.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했지만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가끔 뒤돌아보면 김명상이 저 멀리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손을 흔들고 싶었지만 너무 멀었다.
나중에 깨달았다. 그때가 우리 우정의 분기점이었다는 것을. 각자의 길을 선택한 순간, 우리는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다만 가끔 그리웠다. 함께 제육덮밥을 먹으며 미래를 꿈꾸던 시절이. 같은 꿈은 아니었지만 서로의 꿈을 응원하던 시절이. 그 시절은 지나갔지만, 추억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