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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조각글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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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라 Oct 15.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쓰고 싶어서

Nevertheless, I want to write

요 며칠, 정신이 없었다.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계속 자라는데, 나는 글을 쓸 수가 없어서, 계속 되새겼다. 이 감정을 잊지 마. 이 순간을 잊지 마. 그리고 글을 쓸 수 있는 순간이 오면, 펜을 들고 마음껏 쓰도록 해. 누구에게 상처주려 하지 않고 위로하려 하지 않고, 네가 쓰고 싶은 글들을 쓸 수 있도록 해.


어느 여름에는 서늘한 그늘 한 켠에 누워 수박을 먹으면서 단편집을 읽자니, 읽으면 읽을수록 넘길 수 있는 페이지가 계속 닳는 것이 아쉬워서, 그의 신작 소설을 기다리면서 작가를 가둬두고 글만 쓰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가둬두고 글만 쓰게 했으면 좋겠다. 나는 고작 콜드부르 커피나 몇 잔이고 삼키면서 기뻐 눈물 흘리며 글을 쓸 테다.


뒷바라지받아 존재한 창작자들을 안다. 나는 그 글들을 기꺼이 읽지 못한다. 어쩌자고 끝끝내 돈을 만질 수 없는 글쟁이를 사랑하여, 끼니 챙겨 밥을 차려주고, 방을 청소해 주고 온전히 세계를 펼치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그렇게 작가의 방을 이어온 이름 없는 이들을 내가 안다. 더러는 모든 것을 바쳐 희생한 그 서사를 뺏어서 자기 이야기인양 꾸며 유명해진 어느 작가도 내가 안다. 나도 그런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마저 들어서, 어쩌면 내가 글만 쓸 수 없는 것은 시대를 타고나지 못해서, 성별을 타고나지 못해서라는 못된 생각마저 들곤 하는 것이다.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그 말이 여전히 이어진다.


글을 쓸 수 있을 때 많이 써 둘 걸. 나의 피조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내놓을 걸. 질책도 받아보고 칭찬도 받아보면서 함부로 써볼걸. 까짓 거, 나는 아직 어리므로- 나는 아직 완벽하지 않으므로- 하며 남들이 다 대는 핑계와 변명도 대보면서 그렇게 글을 뿌려볼걸. 우습고도 우스운 자존심 때문에, 이까짓 글로는 투고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기회는 스스로 만들어야 함을 알면서도, 어느 출판사의 편집가가 나의 글을 발굴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환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해서. 완벽하지 않은 어느 글도 세상에 내놓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누군가의 창작물은 쉽게 쓴 글이라며 감히 멸시하면서. 영영 완벽한 세상을 만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완벽하지 못한 세계를 세상에 내놓으려는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해서. 어깨에 힘을 빼고 써도 된다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으므로. 지워야 깔끔해질 이상하고 장황한 말만 계속 써 내려가면서.

이 글은 역시 세상에 나오지 못할 테다.


글은 어떻게 쓰는 거냐는 남들의 질문에는 '일단 써요. 쓸 수 있을 때 많이. 많이 쓰고, 많이 읽어요' 그 간단한 말을 항상 내뱉으면서, 정작 나는 그러지 못해서. 


읽고 쓰는 삶을 사랑하면서 저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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