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rowded Cafe
“‘사귈래?’는 의문문이잖아. 그래서 네가 ‘그래’라고 답한다면 좋겠지만 ‘아니’라며 거절할 수도 있잖아. 근데 ‘사귀자’는 거절을 답할 수 없는 청유문이잖아. 그러니까, 사귀자. 내가 대외활동도 해야 하고, 인턴 준비도 해야 하고, 공모전도 해야 하고 엄청 바쁠 거고 또 힘들겠지만, 그래도 네가 좋아. 좋으니까, 내가 노력할 테니까, 나랑 사귀자.”
평상시에 한적하던 이 카페는 오늘따라 빈자리 없이 많은 손님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므로 세 시간 전에 대머리 부장에게 결재서류를 까였다는 옆자리 여성의 일상이, 과제 제출 기간을 넘기고 나서야 생각이 나서 그냥 안 하기로 했다는 뒷자리 남학생의 일상이, 죽어도 부츠컷 청바지는 안 입을 거라는 앞자리 고등학생의 일상이 맞은편에 앉아 수줍게 말하는 너의 고백보다도 더 잘 들렸다. 원두 분쇄기는 분주하게 커피콩을 갈고 있었고, 진동벨은 우웅- 우웅- 거렸고, 알바생은 아메리카노 두 잔과 티라미슈 케이크를 주문한 손님을 소리쳐 불렀으며, 마샬 스피커에서는 어떤 밴드의 이별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카페 안은 소란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횡설수설했던 너의 고백은 그 누가 만드는 어떤 소음보다도 정확히 들렸다.
소란스러워서 뭐라고 하는지 안 들려. ‘사귀자’는 청유문이라서 거절할 수 있어. 마찬가지로 내가 ‘싫어’라고 하면 거절하게 되는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카페의 전면 유리창 너머의 벚꽃이 흐드러지게 펴 있는 봄이 왔기 때문에. 아니, 사실은, 벚꽃은 다 지고 녹음이 더 울창한 5월의 어느 날이지만 너의 얼굴에는 붉은 꽃이 마구 피어나고 있으므로. 아니 아니, 사실은 나도 네가 좋아서, 누굴 만나고 무슨 얘기를 해도 그저 그랬는데 너와 얘기하는 건 재미있어서, 같이 있는 것만으로 이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사람 많은 카페가 좋아져서. 내 얼굴도 한 입 베어 물면 과즙이 잔뜩 흘러내리는 물복숭아처럼 보기 좋게 익어버려서.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모든 마음을 담은 한 마디였다.
“그래 그러자.”
소란스러웠던 어떤 날, 손님 많은 그 카페에서 그렇게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다. 우리는 많은 약속을 했다. 봄에는 꽃놀이를 가자고 했고, 여름엔 사람이 없는 한적한 바닷가에서 불꽃놀이를 하자고 했다. 가을엔 전시회나 박람회에서 사진을 잔뜩 찍자고 했고, 겨울엔 같이 스키장을 가서 스키를 배우자고 했다.
그 해 봄은 유난히 장미가 예쁘게 피었고 꽃놀이하기 좋았다. 장미 덩굴 울타리의 뒤로 가거나 튤립 꽃밭 사이에 앉아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 '자기야, 어디 있어? 꽃밖에 안 보여'하며 놀기도 했다. 여름은 그 어떤 해보다 뜨거웠음에도 불구하고 어디든 사람이 많았으므로 바다는커녕 계곡도 가지 않았다. 가을은 짧았고 우리가 가기로 했던 고양이 박람회는 티켓이 매진되어서 전시회는 갈 수 없었다. 겨울에는 네가 심한 독감에 걸려서 만난 날보다도 보자고 해놓고 못 만난 날들이 더 많았다. 그 모든 계절들을 사랑했다. 우리는 한 해 동안 많은 영화를 봤고, 많은 카페를 갔고, 많은 음식을 먹었고, 많은 대화를 나눴고, 많은 밤을 함께 했다.
다시 봄이 왔다. 긴 봄이 시작됐다.
“나, 더 할 말 없어. 괜찮지 않은 것 같아. 고맙고, 고마웠고 미안해. 우리 그만하자.”
평상시에 한적하던 이 카페는 오늘따라 빈자리 없이 많은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므로 세 시간 전에 대머리 부장의 면상에 사직서를 던지고 왔다는 옆자리 여성의 일상이, 과제 제출 기간을 넘기고 나서야 생각이 나서 교수님에게 메일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다른 대체 과제를 받았다는 뒷자리 남학생의 일상이, 새로 산 부츠컷 청바지가 잘 어울리냐는 앞자리 고등학생의 일상이 맞은편에 앉아 건조하게 말하는 너의 통보보다도 더 잘 들렸다. 원두 분쇄기는 시끄럽게 커피콩을 갈고 있었고, 진동벨은 우웅- 우웅- 거렸고, 알바생은 바닐라 라떼 두 잔과 크레이프 케이크를 주문한 손님을 애타게 찾았으며, 마샬 스피커에서는 어떤 밴드의 사랑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카페 안은 소란스러웠다. 그러므로 너의 단호하고 날카로운 그 말은 그 누구에게서 나오는 소음 때문에 듣기 어려웠다.
소란스러워서 뭐라고 하는지 안 들려. 내가 말했었잖아. ‘그만하자’는 청유문이라서 거절할 수 있어. 마찬가지로 내가 ‘싫어’라고 하면 거절하게 되는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카페의 전면 유리창 너머의 벚꽃이 한 송이도 없었기 때문에. 아니, 사실은, 벚꽃이 막 피려고 하는 초봄의 어느 날이지만 너의 얼굴에서 다시는 꽃이 피지 않을 것 같았으므로. 아니 아니, 사실은 나도 네가 괜찮지 않아서. 누굴 만나고 무슨 얘기를 해도 그저 재밌었는데 이제 너와 얘기하는 건 즐겁지가 않아서, 같이 있는 것만으로 이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사람 많은 카페에 더 있는 게 힘들어져서. 내 얼굴도 닿기만 해도 찢어져서 진물이 흐를 것 같은 연시 마냥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상해서.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모든 마음을 담은 한 마디였다.
“그래 그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