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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조각글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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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라 Aug 25. 2023

봉지 속 물고기

Fish In a Plastic Bag


걔는 눈이 참 예뻤어.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고 하잖아. 진주린이 헤엄칠 때 비늘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알아? 딱 그만큼 반짝거렸어. 내가 무슨 말을 하거나 무슨 표정을 지을 때마다 찰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모든 순간을 눈에 다 담으려고 하는 게 보였어.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은 이렇게 예쁘구나. 걔는 내가 수줍어서 눈을 마주칠 때마다 시선을 피했다고 생각하고 있을걸?

계속 보고 있자면 참지 못하고 그 눈알을 뽑을 것 같아서 고개를 돌린 거였어. 그 반짝거리는 눈에 내가 비치는 게 너무 벅차서, 그대로 뽑아다가 박제하고 싶었어. 그 눈에 맺힌 내가 너무 예뻤어. 사랑을 잔뜩 받아서 빛나고 아름다운 내가 있었거든. 그 눈을 뽑아다가 방부액에 절여서 평생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알이 담긴 유리병을 아침저녁으로 정성스럽게 닦아주면서 매일 마주하고 싶었어. 거울 보듯 그 눈을 보고 싶었어.


내가 사랑한 그 눈이 나중에는 빛을 잃더라. 역시 진작 뽑았어야 했는데. 그 눈을 본 날이 아직도 기억나. 늘 하던 대로 일상을 물어봤어. 요즘 뭐 하는지. 재밌는 일은 없는지. 자기가 지금 맡은 프로젝트를 신나서 이야기하는 거야. 눈이 빛나더라? 집으로 가서 다시 프로젝트에 빠질 생각만으로 눈에 생기가 돌아. 그 눈에 비친 나는 더 빛나기를 기대하고 눈을 마주쳤는데, 눈깔에 어둠만 가득한 거야. 썩은 눈깔에 갇힌 내가 보였어. 그 눈에 비친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나를 봐야겠는데 무슨 짓을 해도 생기가 돌지 않는 거야. 눈깔에 갇혀서 내가 절규했어. 그때 알았지. 아, 우리는 곧 끝나겠구나.


그 무렵의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서 걔가 써준 어설픈 연애편지들을 몇 번이고 읽었어. 어느 작가들의 애정시를 그대로 훔쳐온 구절을 빼고는 맞춤법도 안 맞고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하지도 않는 글들이었어.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그가 뱉은 사랑의 말들을 나는 삼켰다가 다시 게워내고, 다시 씹었다가 토하기를 반복하면서 글을 썼어.

보통 사람이 죽는 글이었어. 썰어 죽이고, 떨어뜨려 죽이고, 눌러 죽이고, 으깨 죽이고, 치어 죽이고, 찔러 죽이고, 삼켜 죽이고, 졸라서 죽이고, 때려죽이고, 찢어 죽이고, 참 다양하게도 죽였어. 하나씩 여기저기 숨은 사람을 찾아 흔적도 없이 죽였어. 나는 플롯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아. 과도한 서사를 부여하고 행복한 순간에 죽여야 비극이 극대화돼. 행복하고 즐거운 고통이 없는 유토피아를 만들어서 잘 굴리다가 모두를 죽였어. 근데 주인공을 어떻게 죽여도 나보다 슬플 순 없었어. 신이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그가 창조한 세상의 결말이 아름답겠니. 좌절과 분노와 미련과 슬픔과 우울과 간절함으로 엉망인 글들을 많이 뱉었지. 어디에도 보여줄 수 없는 글들이었어.

언젠가, 사람이 죽지 않는 글을 합평 시간에 들고 갔는데, 이름도 모르는 후배가 와서는 너무 좋은 시라고, 물고기도 봉지도 비늘도 굉장하다고, 감격했다면서 자기도 그런 시를 쓰고 싶다고 그러는 거야. ‘후배님도 많이 경험하고 많이 써보면 더 좋은 글을 쓰게 될 거예요’라고 했어. 그 후배가 원초적으로 에로틱 코드를 읽고 좋았다고 말한 건가? 눈치챘을까 싶어서 조금 부끄러웠어. 그 무렵에 자학적으로 몸을 섞던 나를 쓴 글이었거든. 그때는 섹스할 때 유독 진짜 사랑을 하는 것 같다고 느꼈어. 그 행위가 우리를 진짜 사랑하는 관계라고 정의하는 것 같았어. 내가 뭘 해도 그 눈이 다시 반짝이지 않을 걸 아니까, 걔가 나의 몸뿐이라도 사랑해 주길 빌었어. 거절한 적이 없으니까 어쩌면 그게 통한 걸지도 몰라.


근데 그 관계가 꼭 비닐봉지 속 물고기 같았어. 어항에 물고기를 풀어주기 전에 봉지 채로 담그는 거 알아? 물고기가 어항의 물 온도나 어항 환경에 잘 적응하라고 그렇게 해. 갑자기 풀어주면 스트레스받아서 죽을 수도 있다나 뭐라나. 같은 어항에 담겨 있지만 절대 하나가 될 순 없어. 금붕어와 금붕어 사이에 그 얇은 막 때문에 절대 하나가 될 수도 없고, 한 번도 하나였던 적도 없어. 그냥 봉지 속에서 비늘을 반짝반짝 빛내며 춤추는 널 보기만 했겠지.


나는 눈을 꼭 감은 채로 거칠고 폭력적인 밤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걔가 헐떡이며 쓰러지고 나면 그 애의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나 사랑해?”라고 물었고, 그는 숨을 몰아쉬면서 “사랑하지 않으면 너를 안지 않았을 거야”같은 말을 했어. 언제나 심장소리를 들으면서 물어봤어. 거짓말에 능숙하지만 심장이 뛰는 건 속이지는 못할 테니까. 빠르게 몰아치는 그 심장소리를 들으면 조금 안심이 됐거든. 바보가 분명해. 그렇게 과격하게 몰아붙였으니 심장이 크게 뛰는 게 당연한 건데. 알고 있었어 사실. 근데 그렇게라도 스스로를 속이고 싶었던 거지.

걔가 근데 고백할 때 딱 그랬다? 정확히는 심장이 딱 그랬지. 나를 품에 꽉 안고서는 자기 귀가 새빨개진 것도, 목소리가 얼마나 떨리는지도 모르고 달콤한 말들을 속삭였어. 무슨 말이었는지는 기억 안 나. 그 뒤에 하필 “이 심장은 이제 네 거야”같은 말을 해서 나는 크고 빠르게 뛰던 걔 심장소리만 기억나.

거칠게 밤을 보내고 나면 고백하던 그날에 심장이 뛰던 것처럼 빠르고 크게 뛰었어. 그렇게 뛰어대는 심장소리를 듣고 그때 같은 마음으로 나를 사랑한다고 안심하고 싶었나 봐. 그 심장소리를 못 듣게 된 건, 조금 더 나중의 이야기야. 유리병은 이제 먼지가 쌓였고, 물고기는 봉지가 터지면 죽잖아. 사랑에 몸을 바친 건 내가 아니라 걔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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