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마주한 진짜 세상
한국에선 어디서든 3명만 모여도 정치가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2015년 꿈과 희망을 품고 갓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25살의 공무원 새내기가 그 선배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줄을 잘 타라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대한민국은 정의, 화합, 믿음, 정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해 내는 이상적인 나라라고 믿었으며,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다. 그래서 그 선배의 이야기는 그의 개인적인 의견이라 생각하며 무시하였고
그것이 나의 공무원 생활의 치명타가 되었다.
사람들과의 친목도모보다는 업무를 먼저 챙겼으며,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내 의견을 내었다. 예산과 인력을 아낄 수 있는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을 고민했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공무이고 내가 작성하는 문서는 공문서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고 잘하고 싶었다.
단기간에 업무적으로는 인정을 받아 낭중지추*라는 평가를 받으며, 신임직원에 잘 맡기지 않는 큰 업무와 프로젝트들을 도맡아서 하게 되었고 좋은 결과물을 얻었다.
* 주머니 속의 송곳, 뾰족한 송곳은 가만히 있어도 반드시 뚫고 삐져나오듯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남의 눈에 띔을 비유하는 말.
하지만 동시에 나는 말도 안 되는 업무량과 악성 민원인들의 민원들로 내 신체와 정신 건강 또한 잃고 있었다.
그 일들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으니 다음에 또 자세히 이야기해 보자.
왜냐면 사실 정말 큰 문제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 동료, 선배들에게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었고, 혼자서 밥을 먹고 윗사람이 없는 회식자리에는 부르지도 않았다.
그리고 업무 일정을 일부러 다르게 알려주거나, 크게 잘못된 업무의 기안을 내가 제안했다거나, 나의 업무를 가로채가는 일 등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일들은 드라마에서만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사건이 있는데, 내가 어떤 업무와 자리를 위해 누구와 뭐를 했다며 인간으로 또는 여성으로는 정말 수치스러운 이야기들이 떠돌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돌이킬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결국 그 일로 나는 내사까지 받게 되었다.
카카오톡, 메신저 대화, 집 주변 CCTV 자료 등을 제출하였고, 나는 내가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 증명해야 했다. 당연히 나는 어떠한 징계도 받지 않았으나
내가 결백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으며, 그런 소문을 퍼트린 사람에 대한 조사는 전무했다.
이 모든 일은 내가 공무원으로 입직하고 1년도 안 돼서 생긴 일들이다.
대나무는 부러지면 부러지지 굽혀지지 않는다.
이 와중에도 모든 업무는 나에게로 몰리고 있었고, 결국 나는 부러져 버렸다.
지난번 이야기처럼 질병을 얻어 휴직을 했고 그만두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업무로 알게 된 다른 부서의 선배가 나를 직접 찾아왔다.
나는 또 무슨 나쁜 소식을 전달하려 찾아오는 것인가 잔뜩 겁을 먹었지만 선배는 언제쯤 복귀할 것이냐 물었고 나는 솔직하게 그만두려 한다 말했다.
니가 그만 두면 이 세상에 공무원할 사람 1도 없어.
나는 그동안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려 했으나, 그 선배는 나쁜 기억 꺼내지 말라며 이야기할 필요 없다 하였다.
그리고는 “나는 누가 뭐라 해도 너가 그러지 않았을 거라는 것을 알아, 그 다른 사람들 생각이 뭐가 중요해 너가 이 일에 보람을 느끼고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 됐어. 누구 보고 알아달라고 일한건 아니었잖아? 잔말 말고 복직해. “라고 했다.
5분도 안된 짧은 만남에서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그만두지 말라는 말 한마디를 하려고 그 선배는 3시간을 걸려 차를 타고 왔다.
그 생각이 드니 점점 잊혀진 얼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야근할 때 샌드위치를 사다 준 직원, 혼자 A4용지 박스무한개를 옮길 때 말없이 와서 같이 들어준 직원, 커피 20잔 타오라고 했을 때 몰래 따라와 같이 도와준 직원, 매일 아침 힘내라며 따뜻한 말을 해준 엄마, 말없이 안아준 아빠.
그렇다 그동안 내 주변에서 묵묵히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주변의 한마디, 관심이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 알게 되었고 용기를 얻어 복직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열심히 출근하고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런 응원과 믿음을 나 자신이 의심치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 마주하는 세상은 생각보다 잔인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그 세상이 전부는 아니며, 내가 믿어 온 세상도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어쩌면 나만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새로운 기회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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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다시 한번만 더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