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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홍 Jun 03. 2024

엄마와 해외여행 다녔습니다만 2 <영국 민박>

- 1일1드로잉100 (10)


스마트폰이 없던 1990년대 말,

영국 히드로공항에서부터 무식하면 용감한  모녀의 배낭여행이 시작되었다.


핸드폰 로밍도 하지 않았는데, 그 시절 공중전화를 사용했었고, 국제전화가 비싸다는 이유로 고국의 가족과는 우리가 접선을 시도해야만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참으로 스파이스러운 여행을 했었던 것이다. 세상에나.


요즘엔 여행정보가 차고 흘러넘치는 통에 몰라도 될 것까지 알고 가는 바람에 여행의 신선도가 떨어질 지경인데.


지금의 난 이때의 터프한 여행기억은 모조리 잊어버린 듯 되도록이면 편한 여행을 쫓아다닌다. 사실은 이불속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까지 젖어들진 말아야겠지.


첫 해외여행인 주제에 숙소를 미리 예약하는 것이 아니라 한인민박을 이용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까지 가지고.  

호텔은 너무 비쌌고, 엄마 나이에 유스호스텔을 쓰기도 어려울 듯했기 때문이었.


그런 상황이니 현지에 내리면 숙소부터 잡아야 했다. 그러지 못하면 낯선 타지에서 길잠을 자야 할지도 모르는 노숙자 운명! 거의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의 벌칙을 뛰어넘는 수준인데.


문제는 나라별로 공중전화 쓰는 법이 다르고, 당장 그 나라 동전이나 전화카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영국 '히드로 공항'에 내린 순간부터 패닉이 살짝 왔고, 엄마에겐 들키지 않으려고 허둥지둥... 공중전화 사용하는 것부터 난관인데 여기서 버스나 지하철 표를 어디서  어떻게 사서 공항을 벗어나야 되나, 머릿속이 캄캄해졌다.


울며 엄마를 찾고 싶은 아이의 심정이었지만 나의 엄마는 오히려 아이가 되어 주변을 보며 흥분한 상태.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야 했다!

여행에서 내가 정신줄을 놓으면 무사히 집까지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순간 요즘엔 사라지고 없을 것 같은 민박집 호객행위하는 한국인 남자를 만났다. 자기 숙소가 지하철 역에서 가깝고 숙박비도 저렴하다고 열심히 설명하는 통에 엄마와 난 당황했다.

울릉도에서 봤던 민박집 호객행위를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 보게 될 줄이야!


허둥거리고 있던 나는 사실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뭣보다 한국인을 만나 너무 반가웠고.

숙소 가격도 저렴한 데다 청년이 어벙해 보여(?) 괜찮겠다는 엄마와의 속삭임 끝에 모르는 청년을 따라가게 됐다. 속으론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내가 엄마의 보호자니까.


온갖 걱정을 하며 도착한 영국 민박집은 저렴해 보이는 인테리어였지만 청년 셋이 운영하는 안전한 곳이었다. 휴우.

우리 말고도 내 또래의 젊은 여자들끼리 온 팀, 혼자 온 아가씨도 있었다. 또 한 번 휴우.


이 민박집에 온 덕에 모르는 것은 다 물어보면서 무사히 영국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주인 청년이 우리 모녀만 빼고 다른 언니들을 데리고 일일 투어도 해줘서 살짝 삐지긴 했지만 모녀가 눈치 없이 거기 끼어서 열심히 사는 총각의  산통을 깨트릴 필요는 없잖은가.

대신 엄마를 위해 멀건 된장국을 아침으로 차려줘서 고마웠다.

혼자 여행 다니는 아가씨는 이 집에서 이런 아침이 나온 건 처음이다, 아주머니가 오셔서 먹는다며 후루룩 쩝쩝 자기가 더 좋아했다.


원래 한식을 좋아하지만 해외로 나가니 한식이 더욱 당기는 통에 한인민박에서  한식을 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 같은 '한류'는커녕 지나가면 '중국인?일본인?'이라고만 물어보던 때라 한식당도 찾기 어려웠다.


 여행에서 겪은 사건들이 너무 많아 해외여행하면 힘든 생각부터 난다.

고생한 대신 가장 선명하고 생생한 여행의 기억으로 남아 이후로도 엄마와 만나기만 하면 이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서로를 탓하다가 낄낄댔다.


영국여행은 그야말로  시작에 불과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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