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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홍 Jun 26. 2024

나의 촌스러운 미용실 <단골의 매너>

- 1일1드로잉100(17)


예전에는.


미용실을 선택하는 데 있어 기술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인테리어라고 생각했다.


영화계에서 일했다 보니 연예인들 단골 미용실이 어딘지 정보가 들려와 강남의 유명한 곳을 찾아다녔던 때가 있었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헤어디자이너들은 하나같이  선남선녀였고, 과자 부스러기를 흘리면 안 될 것처럼 인테리어가 으리으리 반짝거렸다.

여러 명이 팀으로 돌아가는 그런 곳에서 섬세한 케어를 받고 나면 여배우(?)라도 된 기분, 미모가 자기 신분상승한 기분을 느꼈으나.... 하루밖에 가지 못했다.


신데렐라의 마법이 깨진 것처럼 정신 차리고 보면 그 얼굴이 그 얼굴이었고, 몇 십만 원이 사라져 버린 걸 깨닫게 된다.


회사를 나온 이후에는 마법을 부려서라도 외모를 보여줘야 할 장소, 사람이 없어지고, 미용실 마법에 거는 기대도 사라지면서 실속부터 차리게 됐다.

그저 집에서 가깝고, 동네 미용실 원장님과 속 편히 대화 나누면서 서비스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이 최고.

그렇게 동네 미용실 원장님과 알고 지낸 지 십 년이 넘었는데.


1인 미용실이라 혼자 왼쪽 손님 파마롤 감아놓고, 오른쪽 손님 커트, 건너편 손님 뿌리염색을 하는, 손이 무지 빠르고 정확한 원장님이 운영하는 곳이다.

말이 너무 많지도 작지도 않은 점도 좋고, 비슷한 나이 또래라 통하는 점도 많았다.


커트한 머리카락을 치워줄 직원이 없어 바닥의 머리털을 밟고 지나다닐 만큼 정신없지만 상관없었다.

럭셔리한 곳에서 케어받는 즐거움대신 다른 장점들이 있었으니까.


나를 믿고 친해지다 보니 원장님이 속내를 털어놓는 순간이 있는데, 갑질 아닌 갑질하는 손님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일에 대해 처음으로 토로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손님에게 손님얘길 하겠는가.


그 단골도 오래된 관계인데, 미용실 오픈시간에 예약해 놓곤 오후 12시넘어 와가지고 자기 시간 없으니 빨리 해달라 재촉한다고 다.

다른 손님들이 있든말든 안하무인.


10회, 15회를 한 번에 쿠폰으로 끊으면 할인을 해주는데, 할인금액에서도 5만 원 더 싸게 해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해 깎고야만다는 것이다. 

다른 손님들은 호구 만들기.


거기다 미용실 수건, 드라이기, 에센스 등 남의 업장 물건들을 자기 집처럼 사용하기 등등등, 같은 손님인  내가 다 화끈거릴 정도였다.


서비스직이라면 당해봤을 어려움이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겠지만 손님이면 손님으로서 지켜야 할 예의가 있지 않을까.


단골일수록, 친해질수록 선을 넘어도 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지켜야 할 선이 있을 때 오래갈 수 있다. 

부모 자식 관계, 부부, 친구 사이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렇게 말을 하는 나도 잘 못 지킨다.

'선'이 어디까지인지 헷갈릴 때도 있는데, 

상대가 반복해서 말하는 불만은 고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 지점이 상대의 '선'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원장님, 여보, 나는 잘하고 있는 거 마, 맞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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