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매주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시댁으로 향합니다. 한동안은 무거운 마음으로 문턱을 넘곤 했어요.
호랑이 기운이 솟아날 것 같던 정정하시던 시어머니가 갑자기 수술을 받게 되고 거동조차 힘들어지셨을 때, 집안 가득 고여있던 걱정의 공기를 기억합니다.
그랬던 어머니가 다시 일어서셨습니다.
일거수일투족을 남의 손에 의지하다 다시 '어머니'의 자리로 돌아오신 것이죠.
예전처럼 카트 끌고 재래시장까진 못 가도 간단한 밥과 반찬은 차리실 수 있게 되셨어요. 자식들이 효자 효녀들이라 어머님의 손발이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준 덕이 큽니다. 노년에 자식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그런 점에서 시어머니는 부자가 아니지만 제 눈엔 남부러울 것 없는 분입니다. 콩 한쪽이라도 자식들에게 나눠주려는 부자 같은 마음 때문에 발길이 끊이지 않는 거겠죠.
며칠 전에는 소유한 조그만 땅에 덩그러니 남겨져 버려질 배추가 아깝다며, 굳이 큰 아들에게 다 가져오라고 시키셨어요. 나이 많은 큰아들은 투덜대면서도 시키는 건 다하시죠.
그런데 어느새 그 많은 배추를 다듬어 겉절이까지 금세 담그셨더라고요! 자식들 손에 기어이 한 통씩 들려 보내야 직성이 풀리는 시어머니의 고집.
그 투박한 겉절이 속에 담긴 건 단순한 양념이 아니라, 다시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어머니의 자부심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맛있다고 했더니 참 좋아하시는 걸 보면.
그리고 지난주 일요일, 저녁 상에 올라온 김치볶음을 한 입 넣는 순간 나는 그만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너무 맛있어서요.
들어간 재료라곤 뻔했어요. 김치 숭덩숭덩 썰어 넣고, 들기름 넉넉히 두르고, 설탕 조금 뿌린 게 전부.
그런데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그 맛이 기가 막혔습니다. 촉촉하고 부들부들하고 고소하면서도 달큰한 그 맛!
혀끝에서 부드럽게 허물어지는 김치.
"어머니,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요? 제가 하면 이 맛이 안 나던데."
내 호들갑에 어머니는 별거 아니라는 듯 툭 던지시네요.
"뭐가 있나. 그냥 들기름 넣고 물을 부어서 약한 불에 뭉근~하게 오래 뒀지."
아, 비법은 '시간'과 '불 조절'이었습니다. 센 불에 후다닥 볶아내는 내 요리에는 없는 맛. 성격 급한 나는 흉내 낼 수 없는 깊이의 비결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곁에서 타지 않게 뒤적이며, 김치의 숨이 완전히 죽고 양념이 깊숙이 스며들 때까지 기다리신 겁니다.
빨리빨리 성과를 내고 싶고, 얼른 일을 해치우고 싶은 조바심을 때로 내려놔야 합니다.
서둘러 일을 끝내봤자 실수가 생기거나 잘 끝내도 다른 일이 또 떨어집니다. 일 잘하는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할 수밖에 없죠.
아프고 난 뒤 어머니의 시간은 조금 느려지셨지만 약불처럼 은근하고 끈기 있게 자신의 삶을, 그리고 자식들을 위한 밥상을 조려내고 계십니다.
밥 한 숟가락 위에 흐물흐물해진 김치 조각을 얹으며 생각했어요. 이 고소한 맛이, 온기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렀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