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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실천국 가로수길, 임대료를 내리지 않는 이유는?

by 우창균





'공실 천국 가로수길'

가로수길을 걷다보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게 '임대문의' 현수막입니다.

말 그대로 가로수길은 10개 중 4개가 공실로 '공실천국'이나 다름 없는데요.

근데, 가로수길 공실이 절반 가까인데, 왜 임대료는 안 내려갈까요? 이상하지 않나요?

한켠에선 애플 스토어가 가로수길 임대료를 다 높여 놨다는 얘기도 들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가로수길의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요?

오늘의 주제는 '공실 천국 가로수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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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컨설팅 회사 쿠시먼앤웨이크필드에 따르면,

2025년 2쿼터 기준 가로수길 공실률은 43.9% 으로 같은 분기 명동이 4.9%, 성수동이 3.4%보다 훨씬 높죠. 숫자로만 보면 10곳 중 4곳이 공실이라는 뜻입니다. 거의 절반에 가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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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가로수길을 가보면 '임대문의' '통임대' '단기 임대' 같은 현수막 문구를 너무나도 쉽게 볼 수 있는데요.

일부 매장에서는 '깔세' 라는 문구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깔세는 보증금 없이 월세를 일부 선납하고 임차하는 방식인데, 말 그대로 팝업과 임대차의 중간 개념 정도로 보시면 될것 같습니다. 그만큼 임차가 어렵다는 뜻이겠죠?


그럼, 이렇게 공실 문제가 심각한데, 왜 임대료를 내리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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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대형면적, 통임대, 복층으로 구성된 리테일 비중이 높습니다. 강남역, 명동 같은 주요상권들도 물론 유사하죠. 메인 상권의 경우 대형 임차인 예를 들어 애플 같은 곳들을 유치하기 위해 공간 자체를 대형으로 가져가는데요. 그러다보니 분할을 하기가 어렵고, 한 칸이 비게 되면 큰 공실이 되고, 자연스럽게 소규모 테넌트가 들어오기 어려워 집니다.

즉, 크게 만들어서 큰 돈을 벌려는 목적 때문에 그에 걸맞는 임차인을 구하기 어려워지는거죠. 그러기 때문에 임대료를 막연히 내릴 수도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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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가로수길의 임대료가 서울 평균보다 확연히 높습니다. 특히 중대형 상가의 경우 2023년부터 2025년 1분까지 꾸준히 올랐다는 내용도 있네요. (위 내용 참고~)


셋째, 옵션가치 때문인데요.

임대인은 '지금 깎느니, 더 좋은 임차인을 기다린다'라는 유인을 갖죠. 또 임대료를 내리면 건물 가치가 떨어진다고들 하죠? 건물 가치는 임대 수익을 건물 금액으로 나누는 수익률로 표기하곤 하는데, 수익률을 동일하게 요구하는 전제로 분자인 임대료가 낮아지면 자연스럽게 분모인 건물 가격이 떨어지게 되죠.

또 건물 가치가 떨어지면, 해당 건물의 감정평가를 통해 받은 대출 금액이 줄어들 수도 있어서 임대인에겐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장기 공실을 감수하는 선택이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상가임대차보호법상 임대료 상한도 5%도 제한되다보니, 임대료를 낮춰주면 나중에 높일 수 있는 상한선도 낮아지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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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애플의 효과는 어땠을까요?

2018년 애플스토어 오픈 전후로 애플의 20년치 임대료 600억 선지급 이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그게 임대료 기대치를 끌어올렸다는 해석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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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정확히 선지급이었냐는 이견도 있었죠. 다른 기사에서는 근저당권 설정은 맞지만, 이는 애플 측의 위험 분산을 위한 장치일 뿐이고 실제 토지주에 따르면 매달 임대료를 별도로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포인트는 사실과 무관하게 앵커 딜 소문이 기대값을 올렸다라는 것입니다.

애플 근저당권을 근거로 주변 임대인들이 임대료를 높였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죠.

전후 관계를 따져보면, 애플의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애플의 잘못'이라고 하기엔 애플스토어가 오픈하면서 많은 유입이 되었으니 상권에 일부 도움을 준것도 사실이겠죠?




그렇다면, 가로수길을 채우던 콘텐츠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팝업' 으로 한번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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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테일 팝업 전문 기업 스위트스팟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팝업스토어는 1,488건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2024년엔 680건 정도였었는데 약 2배가량 성장한 수치네요.

또한, 전체 팝업스토어 중에서 유통사의 팝업스토어가 49%로 절반 정도를 차지했습니다. 성수동이 핫하긴 하지만 여전히 유통사의 팝업스토어 비중이 높죠. 특히 현대백화점이 다른 곳들보다 더 높은 비율을 차지했습니다. 아무래도 더현대가 가장 큰 원인일것 같네요.


브랜드는 팝업스토어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길 원하죠? 단순 판매만을 위한 공간은 살아남기 힘듭니다.

결국, 넓은 공간과 안정적인 유동인구가 필요한 것이죠. 그럼 자연스럽게 공실이 넘쳐나고, 유동인구가 사라진 가로수길에서는 이러한 니즈를 충족시키기 부족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죠.


그렇다고, 성수동의 팝업스토어 같은 형태가 상권의 정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짧게 자극을 주고 사라지는 이벤트형 팝업의 피로감, 무수히 많은 쓰레기 문제 그리고 높아지는 권리금 등의 이슈가 생기면서 팝업에 대한 니즈가 약해졌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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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소의 예시지만, 20평에 권리금 20억이라니... 그 돈이면 작은 건물을 사는게 나을것 같네요.




그래서, 다른 나라의 사례를 한번 찾아봤는데요.

런던의 옥스퍼드 스트리트 아시나요? 한국으로 치면, 강남역 같은 중심거리인데요.


과거 팬데믹 기간동안 옥스퍼드 서커스 거리의 공실률은 15%까지 상승했다고 하는데요. 도시의 중심지라는걸 감안해보면 굉장히 높은 공실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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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공실에 사진과 같은 캔디샵이 다수 들어서게 되었는데요. 일명 American Candy store인거죠.

근데, 이런 캔디샵들이 무분별하게 생기면서 시의회는 큰 피해를 입었는데요.

이상하지 않나요? 오히려 공실이 문제일텐데 말이죠.


실상은, 비즈니스 세금 회피 수단으로 사용 되어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영국의 경우 임차임들은 사업세를 지불하는데요. 만약, 공실이 된다면 그 사업세를 임대인이 지불해야 합니다. 즉, 공실이 길어지면 막대한 세금을 부담해야하죠. 그러다보니, 중간업체가 임차인으로 계약을 맺고, 다시 캔디 스토어 같은 곳에 재임대 즉 전대를 주는 구조가 생겨난거죠. 그리고 사업세를 징수하기 전 회사가 해산되거나 연락이 끊기도록 설계되어 중간업체와 복잡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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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웨스트민스터 시의회는 옥스퍼드 스트리트에 있는 30개 매장이 총 790만 파운드. 한화로 약 134억에 달하는 사업세 회피 혐의로 조사중이라는 기사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관광객에게 가격을 과다하게 부과하거나, 일부 매장에서는 불법 또는 모방 상품 등을 판매한 걸로 문제가 되기도 했죠.


이러한 문제들로 지속적으로 발생하던 공실과 길거리가 무분별하게 회손 되던 옥스퍼드가 웨스트민스터 'Meanwhile On'으로 점차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Meanwhile On은 신생 브랜드, 기업가, 크리에이터들이 런던 중심부에서 매장을 열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인데요. 공실이거나 활용도가 낮은 점포를 새롭게 바꿔 대표 상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신생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거죠.


실제로 옥스퍼드 스트리트, 본드 스트리트, 리젠트 스트리트 등 런던의 유명 거리에 리테일, 커뮤니티, 문화 경험을 결합한 공간을 활성화 시키기도 했습니다. 60개 이상의 소규모 비즈니스들이 메인 상권에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했죠.


https://www.westminster.gov.uk/meanwhile-on?utm_source=chatgp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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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조금씩 거리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으면서, IKEA가 기존의 TOPSHOP 위치에 새로운 앵커 테넌트로 자리잡게 됩니다. 실제 TOPSOP 위치는 옥스퍼드서커스의 메인에 위치해 있기도 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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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타이틀만 봐도 '옥스퍼드 스트리트 더 달콤해졌다 - 캔디샵들이 줄어들면서'

이처럼 캔디샵이 옥스퍼드 서커스에 큰 영향을 끼쳤고, 지금은 어느정도 이겨낸 것을 알 수 있죠.

실제 공실도 15%에서 9.3%로 약 40% 가량 감사했다고 합니다.


런던의 옥스퍼드스트리트를 보면, 높아진 공실률과 법규를 악용하는 세금 회피 등의 문제가 이슈화 되었지만, 시의회의 적극적인 노력과 시장이 안정화 되면서 나아진 사실인걸 알 수 있네요.




다음으로는 공실 40%까지 상승했던 뉴욕의 블리커 스트리트입니다.

블리커 스트리트는 미국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빌리지를 가로지르는 거리인데요.

뉴욕 보헤미안 문화, 음악, 에술, 문학의 중심지로 오랜 역사를 보유한 곳이죠.

밥 딜런, 마일스 데이비스 등 전설적인 음악가와도 밀접한 곳이고, 한때 랄프로렌, 코치, 마크 제이콥스 등이 자리잡고 있던 스트리트였습니다. 저도 한때 마크 제이콥스 참 좋아했는데 어느순간 사라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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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2010년 중반대 이후 임대료가 급등하고, 동시에 유동인구가 감수하면서 2017년경 공실률이 40%에 육박하게 되는데요.


그때, 'Love Bleecker' 프로젝트가 2018년에 시작됩니다.

바로 Brookfield Properties와 Skylight 이라는 부동산 회사에 의해 말이죠.


https://byskylight.com/case-study/love-bleecker-street-n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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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light 이라는 홈페이지를 보면 Bleecker 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나와있습니다.

Forbes기사에 따르면, Skylight 은 젊은 브랜드를 육성하고, 아트 설치물도 접목시키고, 이벤트도 기획하는 등 다양한 방문 이유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실제 인근 매장들을 직접 찾아가 거리 자체를 공동체로 이야기를 만든거죠. 이게 말이 쉽지, 각기 다른 상점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끈다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예비군 가보면 아시잖아요. 아무도 말 안듣는거.


그리고 브룩필드는 부동산 회사 답게 매장 7개를 매입한 후 'Love Bleecker'라는 리테일 활성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요. 큐레이션된 소규모 브랜드와 커뮤니티 이벤트를 중심으로 팝업스토어를 운영하고, 예술/정치 토론회나 뷰티 워크숍, 음악 공연 등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접목시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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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첫 3개월 방문객은 무려 33만명, SNS노출도 55만회나 이루어졌고요. 27개 공실이 10개로 감소하는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물론 임대료도 $600–700/ft² → $300–350/ft 으로 줄어들었고요. 대략 50% 가까이 떨어졌네요. 처음엔 팝업으로 시작하다가 다년 계약으로 전환하는 사례도 발생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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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빈 상가를 채우는 개념이 아니라 블리커 스트리트에 예술, 공동체 정체성과 맞는 브랜드를 엄선했는데요. 특이하게도 브랜드별로 블리커에 들어오려는 이유와 관련된 서류를 받기도 했다네요. 일종의 면접 같은걸 본거죠? 그래서 더 확실히 성과를 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 블리커 스트리트는 뉴욕 보헤미안 문화와 럭셔리 리테일의 상징이었으나, 임대료 폭등과 유동인구 감소로 순식간에 몰락했죠. 하지만 Love Bleecker 프로젝트를 통해 큐레이션, 커뮤니티, 스토리텔링 기반의 상권 회복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임대료 인하가 아니라 '공간의 역사와 정체성'을 살려 브랜드와 경험을 엮어낸 사례라고 볼 수 있겠네요.



한번, 정리해보자면요.

가로수길의 공실은 가격 하나의 문제만이 아니라, 구조와 기대가 겹친 결과였습니다.

메인 로드의 통임대, 대형, 복층 구조는 회전이 느리고 앵커 임차인을 받기가 쉽지 않죠. 그리고 임대인의 옵션가치인 건물 가격 하락, 대출 영향, 상임법상 임대료 상승 제한 등의 요소도 있었죠.

한편, 팝업/콘텐츠 수요는 성수, 대형 복합몰로 이동하며 가로수길에서 할 수 있는게 더 줄기도 했죠.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옥스퍼드 스트리트는 공공이 나서서 임시점포 질 낮은 테넌트를 정리하고, 초대형 앵커로 공실률이 줄어들었습니다.

블리커 스트리트는 부동산 민간 회사의 적극적인 큐레이션으로 블록 하나를 온전히 리셋하기도 했고요.

각각이 꼭 정답은 아닐겁니다. 하지만 분명 가로수길에서도 차용할 부분이 있겠죠?


결국 핵심은, '무엇을 경험하러 가는가'를 먼저 설계하고, 구조적인 계획과 서포트가 필요해 보입니다.

가로수길,

언젠간 공실 천국에서 가야할 이유가 있는 거리가 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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