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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수 Jan 15. 2023

[베트남] 깟바섬, 땀꼭, 짱안

하이퐁은 하노이와 하롱베이 사이에 있는 도시로 하롱베이에 가는 관광객들이 지나치는 관광지는 아닌 대도시이다. 전 세계 관광객이 몰려드는 복잡한 하롱베이 대신 란하베이가 있는 깟바섬으로 가는 길에 비건 식당이 몇 개 있는 하이퐁에 한 이틀 묵기로 했다.(그리고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첫 번째 식당은 비싼데 맛이 별로였고 두 번째 식당은 저렴했지만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하노이 사람이 말하길 하노이에서 하이퐁으로 식도락 당일치기 여행을 많이 다녀온다는데 야시장 음식 대부분은 비건이 아니다.


깟바섬엔 채식식당이 없다고 나왔다. 그저 옵션이 있는 논비건 식당이 있을 뿐. 베트남에는 두부토마토랑 공심채 볶음이 굉장히 흔한 기본음식인데 원래 비건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비건 식당이 없어도 일반식당에 들어가 그 두 가지를 밥이랑 먹으면 된다고 들었다. 최악의 경우 그렇게 하거나 아니면 밥만 사고 장을 봐서 먹으려고 했다.


시내에서 멀어 조용하고 바로 앞에 작은 물가가 있는 숙소에 갔다. 

CatBaCorner, 

Hà Sen, Cat Ba, Cát Hải, Hai Phong, Vietnam

체크인이랄 것도 없이 방에 짐을 놓고 야외 테이블에 앉았더니 숙소주인 프엉이 차와 과일을 준다고 했다. 조금 출출해 밥 먹으러 나가려고 했는데 프엉이 밥을 해준다고 했다. 우리가 비건이라 동물은 물론 젖과 알도 먹지 않는다고 했더니 볶음 면을 만들어줬다. 조금 자극적이지만 맛있었다. 밥도 해주는 숙소였다..! 

프엉이 준 베트남 차와 과일
라면맛 볶음면

아침으로 찹쌀밥을 준 적이 있는데 그건 내 입맛이 아니었다. 꾸덕한 찹쌀밥 위에 콩가루랑 마늘 후레이크가 있는데 씹어 넘기기 쉽지 않았다. 언제는 비빔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시장에서 오이, 토마토, 고수를 조금 산 다음 프엉한테 혹시 국수그릇에 밥만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채소까지 잘게 썰어주었다. 고추장을 넣고 비벼먹었더니 그게 뭐라고 참 맛있었다. 쌀밥에 두부랑 채소볶음이면 좋다고 했더니 그렇게 아침을 차려준 날도 있었다. 한 번은 아침에 두유를 줬는데 너무 달아서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다. 파트너가 커피를 주문하며 노슈가라고 했더니 프엉이 와이!!!라고 했다. 프엉은 설탕을 정말 좋아하나 보다.

제일 맛있었던 아침
언제나 맛있는 비빔밥

숙소는 프엉네 가족이 운영하는데 남편과 프엉이 요리와 빨래 청소를 같이 한다. 프엉은 항상 숙소 주변에서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보고 도와준다. 외출을 할 때면 미리 알려주고 필요한 걸 챙겨준 뒤 다녀온다. 내가 비건이라는 걸 설명할 때 프엉은 말했다. 나도 알아요, 내 아들이 채식주의자예요. 네? 아들이 몇 살인데요? 다섯 살이요. 아들은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대요? 몰라요. 다섯 살 채식주의자라니! 꼭 만나고 싶어요!


저녁때 숙소에 돌아왔더니 그가 있었다. 다섯 살 채식주의자의 이름은 태풍이라는 뜻의 타이퐁이었다. 그는 영어를 잘했다. 프엉은 아들이 유튜브로 영어를 배우는데 자기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고 했다. 나는 다섯 살 타이퐁이 채식을 결심한 이유가 궁금했는데 그는 자기가 치킨 너겟을 먹지 않고, 죽이는 게 나쁘다고 했다. 내가 잘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동물을 먹으면 동물이 죽는다는 것을 이해한 듯했다. 


프엉네에는 큰 개와 청소년 고양이도 있다. 동물들 이름은 들었는데 까먹었다. 그저 조용히 가까이 와서 쓰다듬을 받고 자기 할 일을 하는 개는 차분하고 든든하다. 아기고양이는 세상을 배우느라 바빴다. 베트남 고양이들은 다들 매우 치댄다. 나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서 고양이랑 너무 가까이 지내면 재채기가 막 나오다가 눈이 가렵고 목이 따끔거리지만 고양이들이 놀자고 다가오면 콧물을 풀어가며 놀아야 한다... 특히 아기고양이는 계속 가까이 와서 귀엽게 들이대고, 풀이랑 놀고, 돌이랑 놀고, 나뭇잎이랑 놀고 뛰어다니고 점프했다. 얘만 보고 있어도 재밌었다.

프엉네 호기심 천국 청소년 고양이

프엉을 통해 란하베이 투어를 예약할 때 그는 우리가 먹을 것도 많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깟바 에코 투어리스트>라고 적힌 배에 탔다. 가이드 해피는 투어 초반에 채식이나 알레르기 여부를 물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다른 배들을 지나치면서 요상하고 시끄러운 음악을 크게 틀지도 않고, 배 엔진도 조용하고, 식사에 소랑 돼지는 아예 없는 우리 투어가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채식주의자 식탁에 앉아서 덴마크에서 온 이다와 마틸다랑 얘기하고 있었더니 직원들이 음식을 하나씩 가져다주었다.


밥, 두부토마토, 오이, 볶음면, 감자볶음, 땅콩볶음, 바나나, 계란부침이 나오고 먹을 만큼 덜어먹는 식이었다. 다른 식탁에도 비슷하게 나오는 듯했다. 세상에 이렇게 먹을 게 많을 줄, 맛있을 줄 몰랐다. 배에서 얼마나 맛있고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겠나 생각했던 게 부끄러웠다. 새 친구들이랑 신나서 이야기하며 먹느라 사진을 찍지 못한 게 아쉽다.


나는 바닷길 걷는 걸 좋아해 시드니나 부산에서도 꼭 바닷길을 찾아가는데 깟바섬에도 해변 두 곳을 잇는 바닷길 걷기가 있다. 딱 한번 가본 시내에 있는 비건 옵션 식당에는 은근히 비건 메뉴가 많았다. 채소볶음이랑 밥을 주문했는데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누구한테 추천하고 싶은 정도도 아니었다. 깟바섬은 지금 엄청나게 개발 중인데 아마 시간이 지나면 맛있는 비건 식당도 곧 생기겠지...

바닷가 산책로 풍경

땀꼭과 짱안엔 땅 위의 하롱베이가 있다. 숙소는 땀꼭에 하나 있는 비건 식당에서 가까운 곳으로 정했다. 두 곳 다 뱃놀이가 있는데 숙소가 있는 땀꼭에서는 자전거로 돌아다녔고 짱안에서 뱃놀이를 했다. 깟바섬에서 느낀 맛있는 비건 음식에 대한 아쉬움을 땀꼭의 비건 식당이 달래주었다. 

NGON Vegan Restaurant, 

Tam Coc Rd, Ninh Hải, Hoa Lư, Ninh Bình, Vietnam

베트남 음식이고 전부 다 맛있어서 매일 가도 질리지 않았다. 비건 옵션이 있는 다른 식당에 가볼까? 생각하고 메뉴를 보거나 숙소직원에게 추천받은 식당에 가볼까? 하면 식당 밖에서 동물을 굽고 있는 꼴이라 자연스럽게 안전하고 맛있는 비건 식당에 가게 되었다.

모든 음식이 맛있는 그곳
매일 가도 질리지 않는 그곳
쌀국수와 춘권

짱안 뱃놀이 근처에는 비건 식당이 없다. 구글로 찾은 채식옵션 식당에 갔다. 

Trang an Riverside garden restaurant

Thôn khê thượng, Hoa Lư District, Ninh Bình 430000, Vietnam

채식메뉴를 보는데 대부분 알이나 젖이 들어간다. 그냥 밥에 두부토마토를 먹고 싶었는데 없었다. 호탕하고 유쾌한 사장님과 구글 번역기로 소통했다. 동물 빼고, 알 빼고, 젖 빼고, 액젓 빼고, 새우 빼고. 볶음밥 말고 그냥 쌀밥! 두부 있어요? 토마토 두부 되나요? 채소볶음 따로! 처음에는 노노 하시던 사장님은 주방에 다녀오더니 오케이 했다. 생강차를 마시며 기다렸다. 내 뜻이 통했는지, 뭐가 나올지 몰랐다. 

브라보 구글 번역기

잠시 뒤 내가 설명하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드는 요리가 나왔다. 두부토마토랑 숙주볶음. 메뉴에 없는 음식인데도 맛있었다. 너무 맛있고 이렇게 만들어주셔서 고맙다고 사장님이랑 직원들한테 감사했다. 사장님은 우리 먹으라고 바나나도 따로 챙겨주셨다. 짱안에 다시 갈 일이 있으면 또 가고 싶다.


짱안 뱃놀이 강력추천합니다... 루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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