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의 일이다.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동료 작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코로나 이후 3년 만이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어제 만난 듯 반갑다. 그리고는 목소리만큼이나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한 방송국 드라마 신인 공모전에 입상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내 일처럼 너무 기뻐 길 한가운데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내가 이렇게 놀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 작가는 3년 전만에도 드라마를 쓰던 사람이 아니었다. 나와 동갑인 그녀는 나처럼 구성작가로만 일해 왔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나이 50을 넘기고 드라마 작가로 입상을 했다니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가 3년 전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했던 그 말이 생각났다
처음에는 이 말이 그녀가 답답했던 현실에 던지는 희망 주문 정도로 생각했었다. 아무도 미래와 노후를 책임져주지 않는 프리랜서의 삶에 그런 막연한 희망조차 없으면 어쩌나 싶어서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또 다른 의미가 숨어있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으니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알아가라는 당부이기도 했다. 그녀와 연락을 하지 않는 동안에도 이 말만은 뇌리 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3년 후, 그녀는 결국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결과로 증명해 냈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드라마에 뜻이 크게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드라마를 잘 쓸 것 같다는 누군가의 한 마디에 용기를 냈단다. 그리고는 2년 정도를 드라마 공부에 매진했고 결국 드라마 공모전에까지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입상 과정에도 걸림돌은 있었다. 드라마 대본을 보고 입상작으로 뽑으려고 했는데 이 작가의 나이를 보고 모두가 놀라 장시간의 회의가 진행됐고, 결국 발전 가능성을 인정받아 당선작으로 결정이 되었다고 한다. 당선과 함께 이 작가는 드라마 신인 공모 역사상 최고 연장자 수상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지금 이 작가는 방송사와 계약을 맺고 3년 안에 온에어를 목표로 드라마 작업에 매진 중이다.
“어느 구름에 비 들어 있을지 몰라”
사실 나는 이 말의 힘을 동료 작가의 입상 소식을 듣기 두 달 전에도 경험했다.
동생은 3년 전부터 임용고시를 준비해 왔다. 마흔 중반을 넘긴 나이에 시작된 도전이다. 동생의 삶은 어찌 보면 새로운 선택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 시작은 대학생부터였던 것 같다. 동생은 천문우주과학과에 입학했지만 2년 뒤 무역학과로 전과를 했다. 자연과학대에서 상경대로의 전과이니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과감히 전과를 한 후 졸업을 한 동생은 무역회사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되었고, 동생은 또다시 쉽지 않은 도전을 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블럭방을 차렸고, 그로 인해 자영업의 녹록지 않은 현실도 몸소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항상 찾으며 도전했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큰 사기를 당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이 역시도 과정의 하나로 생각하고 잘 이겨냈다. 크고 작은 사건들로 동생은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많이 피폐해졌지만 동생은 피폐해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알아보기 위해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몇 년을 그렇게 심리학 공부에 매진하더니 얼마 안 가 대학원까지 입학해 석사까지 마쳤다. 이후 지자체 청소년 센터와 학교에서 기간제 상담 교사부터 시간제 상담 교사까지 일을 하게 되었다. 동생의 도전과 선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학교생활을 해보니 정교사와 기간제 교사와의 공공연한 차별을 몸소 경험하게 되었고 결국 동생은 임용고시까지 도전을 하겠다고 했다. 늘 동생의 용기를 응원하지만 마흔 중반에 임용고시를 보겠다는 이번 도전은 조금 무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동생은 여기저기 구름을 찔러보면서 매번 자신의 가능성을 용기로 실행해 왔다. 나는 항상 이런 동생이 존경스러우면서도 놀라웠다. 결국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격려와 응원을 전했다.
“어느 구름에 비 들어있을지 몰라. 그래, 찔러봐. 그게 너 다운거지? “
그렇게 시작된 동생의 도전, 첫 해에는 1차에서 불합격
이듬해는 1차 합격, 2차 불합격,
그리고 올해 세 번째 도전 끝에 임용고시에 합격을 했다.
동생은 내 얘기를 듣고 세 번까지는 찔러보기로 했단다. 동생도 내가 해준 그 말이 내내 뇌리에 남았다고 한다. 그렇게 동생은 49세 나이에 임용교시에 합격을 했고, 지금은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 중이다.
나이가 누군가에게는 걸림돌이 되지만 누군가에겐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나이 때문에 입상 문 앞에서 잠시 브레이크가 걸렸던 동료 작가와는 달리 학교에서는 경력 있는 동생을 더 반겼다고 한다.
51세에 드라마 공모전에 당선된 동료 작가와 49세에 임용고시에 합격한 동생,
이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다큐멘터리보다 더 깊은 울림을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이젠 이 말이 나의 귓가에서 더욱 크게 맴돌고 있다.
“어느 구름에 비 들어 있을지 몰라”
참 무겁지만 희망적인 말이다.
희망적이지만 무서운 말이다.
무섭지만 가슴 설레는 말이다.
결국 돌고 돌아 남의 얘기를 빌어 나에게 전하는 말이다.
나에게 용기를 가지라는 말이다.
늦지 않았으니 기꺼이 나를 알아가라는 말이다.
이 말을 증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용기를 내어 구름을 찔러보는 중이다. 내가 뭐를 해낼 수 있는지 알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그들처럼 드라마틱한 결과를 증명해 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나의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도전을 기꺼이 하려 한다.
나는 요즘 사람들만 만나면 이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느 구름에 비 들어 있을지 몰라, 이런 얘기 들어본 적 있어?"
그렇게 나는 이 말의 힘을 널리 널리 알려나가는 중이다.
이 에피소드의 세 번째 주인공이 누가 될지 기대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