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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투컴 Oct 23. 2024

중고 서점에 책을 팔고 깨달은 것

중고서점에 책을 팔고 깨달은 것

     

 나이가 들면서 생각도, 물건도 좀 더 단출해지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였을까?

코로나가 한참 기승이던 3년 전부터 웬일인지 내 눈엔 집안의 많은 짐들이 부담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늘어져 있는 짐들을 보고 있자니 뭔가 답답한 마음이 들었고 주변을 단정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는 잘 못해도 그릇을 사서 모으고 정리는 잘 못해도 아기자기한 소품은 좋아했기에 집 안에는 해가 거듭될수록 많은 물건들이 쌓여 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나는 물건을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최대 난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짐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책, 우리 집에서 책은 가장 정리가 어려운 물건이다. 결혼 후 25년 동안 5번의 이사를 다니면서도 유독 책만큼은 버리지 못했었다. 책은 비울 수 있는 물건 항목에 없었다. 다만 아이들이 크면서 어린이용 전집이 빠지곤 했지만 그 자리엔 늘 다른 책이 비집고 들어가 책장은 늘 빼곡했다. 결국 나는 정리를 위해 중고서점에 책을 팔기로 결심했다. 나는 전에도 몇 번 중고서점을 이용한 적이 있다.

      

 중고서점에 책을 팔려면 확인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중고서점 앱을 켜서 책을 팔 수 있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바코드를 찍어보는 일이다. 그런데 사실 이 시간은 나에게 고통의 시간이기도 하다. 최근에 산 베스트셀러는 재고가 넘쳐 구매를 할 수 없다고 나오고 아끼는 책들마저 천 원에서 많게는 오천 원 정도로 책정이 되었다. 천 원 미만의 책도 많았다. 내가 샀던 책들이 이런 취급을 받는 걸 보니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까워하고 속상해하다가는 결국 책 정리는 할 수 없겠다 싶었다. 그렇게 쓰린 속을 부여잡으며 아이들과 나의 책을 정리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남았다. 우리 집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건 남편의 책, 유독 책을 좋아하는 남편은 그만큼 책 욕심이 많다. 그래서 내 책은 간혹 중고서점에 팔아도 남편 책은 건드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남편 책을 팔지 않고서는 정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책을 좀 정리하자고 얘기를 꺼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남편의 반발이 엄청났다. 용돈을 아껴 책 한 권씩 사서 모으는 것이 일상의 행복이었던 남편이었기에 반대하는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런저런 상황 다 생각하면 정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아 남편을 다시 설득했다. 남편은 처음에는 안 읽는 책 몇 권을 빼서 내놓기 시작했다. 나는 그 옆에서 바코드를 찍어 판매를 할 수 있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확인했다. 가격을 확인할 때마다 남편의 한숨이 탄식으로 이어졌다. 자신이 한 권 한 권 리뷰를 봐가며 샀던 책이 그런 대우를 받으니 화가 날만도 하다 싶다. 꾹꾹 참으며 책 몇 권을 꺼낸다. 그리고 골라낸 책만 빼고 다 팔아버리라고 한다. 이게 웬일인가 싶어 다시 한번 물어보았지만 자신은 고르는 것만으로도 괴로우니 그냥 알아서 다 팔아버리라는 것이다. 의아한 생각도 들고 아까운 생각도 들었지만 남편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정리해 버리기로 했다.       

 나 역시도 이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남편이 좋아하는 소설가의 책이 천 원, 신작이 나올 때마다 한 권씩 사 모으던 남편의 설렘이 고작 천 원으로 환산이 되다니.. 나 역시도 마음이 무겁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정리를 마치고 나니 중고서점에 팔 수 있는 책이 다섯 상자 가량 나왔다. 팔 수 없는 책도 제법 있었다. 팔 수 없는 책은 오래된 것이 아니라 재고량이 많아 매입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다음에 팔 수 있겠지 싶어 몇 권을 골라 책장에 꽂고 나머지는 재활용으로 버렸다. 재활용통에 책을 버리는 건 처음이라 뭔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책 정리를 끝낸 후 남편과 책을 팔기 위해 중고서점에 갔다. 우리 말고도 책을 팔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처럼 상자에 담아 팔러 온 사람, 가방에 대 여섯 권을 넣어 팔러 온 사람, 그런 와중에도 중고 책을 사 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순서를 기다리며 나와 남편은 책을 파는 앞사람들을 보고 있다, 남편은 화가 난 사람처럼 말이 없다. 아니 화가 난 게 맞다. 팔짱을 낀 채 앞사람이 팔고 있고 책 제목과 가격을 확인한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쉰다.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다시 되돌리기엔 너무 늦기도 했고 다시 들고 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 앞사람이 가지고 온 책을 다 팔고 8만 몇 천 원을 받아간다. 족히 세 상자도 넘어 보였는데 10만 원도 안 되는 가격이다.   

   

 이제 우리 차례, 가져온 책들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점원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지 모르겠는 젊은 여성이 야무지게 책 상태를 확인하고 분류를 한다. 그렇게 책 분류가 끝나고 바코드를 찍자 책 가격이 찍히기 시작했다. 남편의 표정이 이내 일그러진다. 바코드가 찍힐 때마다 소리 없는 남편의 탄식이 들리는 것 같다. 그렇게 20여분이 지나고 우린 다섯 상자의 책값으로 13만 2천300원을 받았다. 책 다섯 상자에 13만 원이라, 책을 산 가격을 생각하면 기가 찰 수밖에 없는 금액이다. 난 받은 금액 그대로 남편에게 주었다. 속상했을 남편을 위한 나름의 위로였다. 하지만 그게 더 남편을 속상하게 했다는 걸 잠시 후에 알게 되었다. 속상해하는 남편을 위한 위로였지만 남편에게 25년 넘게 자신이 모아 온 책들이 이런 대접을 받았다고 확인해 주는 것이었나 보다. 남편은 이제 더 이상 책을 사지 않겠다고 한다. 그렇게 선전포고를 하고 이내 입을 닫았다. 그렇게 우리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비어진 책장은 보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비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몸소 체험했으니 이제 채우는 일에도 신중해지겠지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는 얼마 못 가 나는 나의 행동을 후회하게 됐다. 원고 작업을 할 때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을 찾으려고 책을 찾는데 내가 찾는 책이 보이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중고서점에 책을 팔 때 함께 팔아버린 것 같다. 자세히 살펴보니 정작 읽어야 할 책은 다 팔고 중고 서점에서 매입하지 않은 책만 남아 책장을 채우고 있는 것이었다. 초라해진 내 책장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 순간 뭔가 잘 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의 책장도 살펴봤다. 채 10권도 되지 않는 남편의 책을 보고 나니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어 아찔해진다. 그때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25년, 5번의 이사에도 늘 굳건히 지켰던 남편의 자산이자 희망을 내가 정리라는 명목 하에 하루아침에 빼앗아 버린 것은 아닐까? 비움에도 기술과 철학이 필요하구나.. 아주 비싼 대가를 치른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과감히 비우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생 아직 배울게 많고 채울게 많다. 그래도 우리가 판 책이 누군가에는 설렘이 되고 나침반이 되길, 남편을 위해, 나를 위해 희망회로를 돌려본다. 그렇게 나는 중고서점에 책을 팔고 뼈아픈 깨달음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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