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난다며 집을 나서는 아이에게 오늘도 난 질문 공세를 한다. ‘잘 다녀와’ 한 마디면 되지만 뭐가 그리 궁금한지 매번 질문을 하고 만다. ‘누구 만나러 가?’ ‘어디서 만나?’ 아이는 뭘 그렇게 시시콜콜 물어보냐고 하지만 난 요즘 아이들이 누굴 만나고, 어디서 만나고, 무얼 먹는지가 궁금했다.
“삼수하는 친구가 있어서 만나러 가”
“아이고, 이런, 힘들겠다. 몇 년씩 공부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지”
여기서 끝나면 되는데 나는 꼭 안 해도 될 오지랖을 부린다.
“친구 공부하느라 힘든데 밥은 네가 사. 맛있는 걸로 사줘”
“그건 알아서 할게. 그런데 그렇게 밥 사주는 거 친구들이 오히려 기분 나빠해”
“그게 왜 기분 나빠. 친구 힘내라고 밥 한 끼 사주는 건데”
도통 이해가 안 된다.
“내가 밥 사준다고 무조건 좋아하지 않아. 기분 나빠 할 수도 있어”
“뭘 기분이 나빠. 그냥 사주면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되지. 암튼 요즘 애들 너무
복잡하고 어쩔 땐 너무 따박 따박 따진다 말이야. 우리 땐 말이야~...”
막 라떼 스토리를 시작하려던 순간.
‘나, 갈게’
하며 아이가 집을 나선다.
일전에 논쟁이 됐던 뉴스 기사가 생각났다. MZ 세대 여럿이 식당에 갔는데 4명만 식사를 하고 1명은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요즘 애들 참 정 없다’. ‘젓가락 하나만 더 놓고 좀 나눠 먹지’라는 의견도 있었고 ‘배가 고프지 않으면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되지, 굳이 용돈 쓸 필요 있나’, ‘그냥 친구들 밥 먹는 거 기다려주는 건데 너무 확대해석 아닌가? 라며 의견이 분분했다. 이런 상황은 결국 더치페이 문화로 생겨난 현상이었다. 우리 집에서도 깻잎 논쟁 이후로 이 사건을 두고 아이들과 더치페이 문화에 대한 입장들이 오가기도 했다.
사실 더치페이 문화가 더 이상 논쟁이 아닌지는 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 시작이 궁금했다. 우리나라에서 더치페이 문화 정착이 늦어진 건 정서적인 부분도 있지만 메뉴 때문이기도 했단다. 한식 자체가 메뉴를 공유해서 먹는 음식이 많아 따로 내기가 힘들었고, 무엇보다 한 사람이 돌려가면서 내는 문화가 만연했기 때문에 더치페이가 오랜 기간 동안 자리 잡지 못했다고 한다. 불과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더치페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해서, 각자 내는 행위를 '없이 사는 사람' 내지는 '쩨쩨한 구두쇠' 따위로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각자 먹은 만큼만 칼같이 계산하는 행위는 한국인의 정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하나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젠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린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4년 지금, 요즘은 MZ 세대를 넘어 거의 전 세대에서 더치페이는 이제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서로 사겠다고 카드를 내밀며 카운터 앞에서 싸우는 모습은 예전처럼 흔히 볼 수 없는 그리운 풍경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조차 더치페이를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쏘는 문화’에 익숙했던 베이비부머들도 은퇴로 수입이 감소하자 MZ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더치페이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 나은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다.
나의 대학 시절을 생각해 본다. 누구나 용돈이 부족하던 시절, 용돈을 두둑이 받아온 선배는 ‘얘들아, 가자. 오늘 내가 쏠게’라 외치며 일주일치 용돈으로 밥을 사주고 술을 사줬다. 선배는 그 하루를 플렉스 하고 다음 날부터는 또다시 용돈을 받아온 누군가에 얻어먹으며 다음 용돈 받는 날을 기다렸다. 용돈이 항상 부족했던 나는 이런 돈 많은 이런 선배가 있어서, 용돈을 나눠 밥을 사주던 친구들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그래서 늘 고마웠고 미안했고 그 마음이 정겨웠다. 그러면서도 용돈을 많이 받는 선배와 친구가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내가 더 많게도 적게도 아닌 내가 쓴 만큼, 내가 먹은 만큼만 내니 아주 미안할 일도 고마울 일도 또 정겨울 일도 없을 것이다.
요즘은 데이트를 할 때도 더치페이를 한다고 한다. 사실 내가 데이트할 때만 해도 남자들이 밥을 사는 건 익숙한 문화였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남자가 사는 밥을 먹어야 제대로 대우를 받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요즘 MZ세대들이 들으면 어이없어할 일일지 모르겠다. 그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 밥 잘 사주는 오빠와 결혼을 했다. 그때는 남자 친구가 사면 다음에 내가 사더라도 요즘 식으로 더치페이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고루한 생각일는지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사이에서 뭔가 무 자르듯 반 반 나누는 게 나로서는 여전히 좀 야박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시대가 변했는데 내가 변하지 않은 것인가? 아무튼 나는 정과 사랑이라는 감정과 더치페이라는 합리적인 계산법 그 간극에서 잠시 주춤하게 될 때가 있다.
이런 내가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아이들의 친구 엄마들 모임부터에서다. 적당한 거리는 필요하고 그렇다고 뭔가 이런저런 계산하기도 복잡할 때 오히려 더치페이는 그 만남을 오히려 깔끔하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됐다. 가끔씩 누구 집 아이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한 턱 쏴~!’라는 대놓고 얻어먹은 적이 있지만 대부분은 더치페이로 부담을 하다 보니 그 만남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처음에는 너무 따박따박 나누는 것 같아 민망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처음이 어렵지 요즘은 자연스럽다 못해 편해지기까지 했다. 오히려 마음속 계산할 일이 적어지는 게 더치페이였다. 그렇다고 더치페이를 적극 찬성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는 나만의 기준을 만들었다. 둘이 만날 때는 ‘내가 한번’, ‘네가 한번’ 번갈아 내면 되고 둘 이상일 때는 더치페이를 하는 것이다. 물론 둘 이 상어도 좋은 일이 있을 땐 한턱 쏘는 걸로 한다. 내 마음이 기우는 이에겐 나는 기꺼이 지갑도 마음도 열어 둘 것이다.
이 당연한 얘기를 하기 위해 참 말이 길어졌다. 난 사실 더치페이에 찬성도 반대도 아니다. 어차피 어떤 결말을 내기 위한 시작은 아니었다. 다만 ‘그땐 그랬지’ , 달라진 문화 속에서 옛날 생각이 나서 그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대학 시절 용돈 털어 밥을 사주던 선배의 정이, 지금은 한집에 사는 밥 잘 사주던 그 오빠와 함께 했던 그 시절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돌고 돌아 그 얘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