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쪽배 한 척, 강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돛대도 없고 삿대도 없었다. 묘하게도 흐르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마치 강물의 흐름마저 그 작은 배를 피해가듯.
선화는 그 배를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이른 아침 안개가 강을 휘감고 있었고, 바람은 잠잠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는 강둑으로 다가갔다. 발밑에서 풀이 눌리고 물기가 발끝에 닿았다. 그 배가 그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는 한 발짝 더 내디뎠다. 그의 어린 시절, 어머니가 그를 부르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지금은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목소리.
“선화야, 여기야.”
강 건너편에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그의 기억 속 어머니의 얼굴이 불쑥 떠올랐다. 흐릿하고 희미한, 그러나 따뜻했던 얼굴. 오래된 사진처럼 바래져버린 그 얼굴을 붙잡으려는 듯 선화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손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쪽배는 그 자리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한참 바라보다 결국 배에 오르기로 결심했다. 발끝을 밀어 넣으며 배에 몸을 실은 순간, 배가 미끄러지듯 강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돛대나 삿대도 없는데, 이상하게도 배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는 배 위에서 과거의 기억들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어릴 적 방 안에 걸려 있던 하얀커튼, 주말마다 들르던 동네 도서관, 그리고 그곳에서 혼자 읽던 그림책들. 모든 것이 또렷하고 선명하게 그를 덮쳐왔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기억이 아니었다. 억압되었던 감정들, 잊으려 했던 상처들이 강물처럼 흘러들어왔다.
“이건… 내 안의 연못인가.”
선화는 비로소 자신이 그 연못 위를 항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못은 깊이를 가늠 할 수 없었다. 끝을 알 수 없었고, 무엇이 그 아래에 잠겨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깊이를 더는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 연못은 그의 것이었고, 그 속에는 잊힌 자신이 있었다.
배는 멈췄다. 그는 천천히 배에서 내려 강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안개 속에서 그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보였다. 무릎이 까져 울던 자신, 칭찬받고 싶어 어머니를 졸라대던 자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잊으려 애썼던 자신.
선화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물속의 어린 선화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강 위의 안개가 걷히고 태양이 떠올랐다. 그는 그제야 처음으로 깨달았다.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것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