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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k Apr 01. 2019

아로마(Aroma) 에이스(Ace)

‘무쌍’이라는 칭호가 부끄럽지 않은


  아직 국내에는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지 못한 브랜드가 있습니다. 몇몇 마니아들의 청음기를 통해, 혹은 입소문을 통해 그 브랜드의 이어폰들의 소리가 괜찮다는 소문이 조금씩 퍼지는 중입니다. 홍콩의 아로마 오디오라는 브랜드입니다. 아직 아로마 오디오 홈페이지에도 제대로 실리지 않은 A.K.A ‘무쌍’, 아로마 에이스를 소개하려 합니다. 아로마 오디오는 100만 원대부터 약 500만 원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고가의 이어폰을 제조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에이스는 현재 국내 판매가 약 490만 원이 책정된 아로마의 플래그십 기종입니다. 커스텀과 유니버설 모델 중 선택이 가능한데, 이 글은 유니버설 모델을 기준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두 개의 스위치, 네 개의 음색 모드



  웹상에서 아로마 에이스에 대한 정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국내 리뷰는 물론이고 해외 소개글조차 몇 개 보이지 않습니다. 홈페이지에서조차 제품 설명을 찾을 수 없으니 사실상 제가 아는 정보라고는 제품을 대여받을 때 함께 동봉된 한 장의 브로슈어가 전부입니다. 심지어 브로슈어도 중국어로 적혀 있어서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했지만 어쨌든 기재된 스펙을 통해 에이스의 구조를 간략하게나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에이스는 유닛 당 12개의 BA가 사용된 다중 BA 이어폰입니다. 얼마 전까지 BA의 수를 많이 늘린 제품들이 인기를 끌다가 요즘에는 BA의 수를 줄이는 대신 저역에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사용한다든지 혹은 고역에 정전형 트위터를 장착하는 식의 하이브리드 방식이 유행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만져보는 순수 BA 구성의 제품입니다.  


  12개의 BA 드라이버는 각각 저역 4개, 중역 4개, 고역 2개, 초고역 2개의 4웨이 구조로 배치되었습니다. 다수의 BA 드라이버를 사용한 이어폰답게 감도도 110dB로 제법 높은 편이어서 함께 사용할 DAP의 배경 노이즈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하겠습니다. 임피던스는 1kHz 기준 26~30옴으로 적당한 수준입니다. 에이스의 특징이라면 플레이트에 위치한 두 개의 스위치로 음색 조절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두 개의 스위치 배열에 따라 총 네 가지의 음색 모드를 선택하는데, 각각의 명칭들을 트럼프 카드 속 인물들에서 가져왔습니다. 기본이 되는 밸런스 모드는 제품명에도 사용된 ‘에이스’, 보컬 특화 모드인 ‘킹’, 고역 특화 모드인 ‘퀸’, 그리고 저역 특화 모드인 ‘잭’입니다. 



  설명서를 보지 않는다면 처음에는 스위치를 어떻게 조작해야 해당 모드에 맞춰지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리뷰를 작성하는 이 시점에도 궁금한 것이 두 개의 스위치 중 하나는 ‘NO/1’, 다른 하나는 ‘KE/2’라는 표기가 적혔는데 이 기호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두 스위치가 모두 위로 올려진 ‘NO/KE’가 에이스 모드, ‘1/KE’가 킹 모드, 둘 다 내린 ‘1/2’가 퀸 모드, ‘NO/2’가 잭 모드입니다. 뭔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호를 사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대여 기기만 해당하는 문제일 수 있는데 이어폰 좌우 유닛을 대칭으로 놓고 바라봤을 때 양쪽에 달린 스위치 배열이 서로 반대입니다. 가령 에이스 모드를 설정하기 위해서 유닛 한쪽 스위치는 모두 아래로, 다른 쪽은 모두 위로 맞춰야 하는 식입니다. 상식적으로 이 부분은 아마도 상용품에서는 정상적인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개별 모드와 스위치 배열을 따져보면 에이스의 음색 조절 방식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합니다. 첫 번째 스위치인 ‘NO/1’은 중음역대 조절과 연결되고 나머지 ‘KE/2’는 저음역대 조절과 연결됩니다. 두 버튼 모두 위로 올려진 밸런스형의 에이스 모드를 기준으로 각각의 스위치를 번호쪽으로 내리면 해당 음역대의 음압이 조금 낮아지는 방식입니다. 마치 EQ를 조절할 때 원하는 음역대를 부스팅하는 대신 나머지 음역대를 줄이는 방식으로 튜닝하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스위치를 변경하면서 들어보면 각 모드에 따라 해당 음역대의 음압이 줄어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4웨이 구조에서 아래 두 음역대, 저역과 중역만 건드릴 뿐 고역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청주파수에서 가장 민감한 대역을 조절하는 것이므로 모드에 따라 고역에 대한 느낌까지도 함께 영향을 받습니다. 


  이와 같은 스위치 조작식 이어폰들이 최근 많이 출시되는 추세입니다. 아무래도 고가의 이어폰이다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마치 1+1 구성으로 구입하는 것을 선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전에 비해 각 음색 모드에 따라 소리차가 확연히 구분되는 이어폰들을 흔히 접하곤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종류의 이어폰에 높은 만족감을 받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보통은 이어폰의 다양한 소리 중 한 가지라도 마음에 드는 모드가 있다면 다행이지요. 오디오 마니아들만큼 아주 미세한 차이까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드뭅니다. 조그마한 차이로 인해 제품의 호불호가 확연히 갈립니다. 따라서 아무리 많은 종류의 소리를 들려준다고 해도 다양한 소리들을 모두 활용하도록 튜닝하는 일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골고루 사용할 만한 개별 모드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기준점을 잡는 일입니다. 기준이 틀어지면 정말 어쩌다가 소가 뒷걸음질치다 사고 한 번 치지 않는 이상 나머지 소리들도 좋은 소리를 낼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로마 에이스의 기준점인 A 모드는 그 세팅이 꽤나 절묘합니다. 전반적으로 밀도가 높은 꽉 채우는 성향의 소리인데, 그 중에서도 뛰어난 해상력의 중고역을 뒷받침하는 저역과 극저역 재생 능력이 빛을 발합니다. 에이스가 표현하는 소리의 입체감은 이어폰으로서는 최상급의 정위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보통의 이어폰들이 무대의 좌우를 넓게 표현하면 대신 깊이감이 떨어지고, 반대로 깊이감을 살리면 좌우 폭이 좁아집니다. 무리해서 둘 다 취하려 하다간 자칫 무대가 비었다고 느껴지거나 혹은 음역대 밸런스가 너무 저역으로만 편향되는 문제가 드러나는데, 에이스는 입체감을 잘 살리면서도 이런 문제점들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무대의 규모와 모양, 그 속의 악기 배치, 악기 소리의 풍성한 양감과 해상력 모두 합격점을 줄 수 있겠습니다. 마치 서브우퍼를 단 듯한 웅장한 저역이 무대를 채우는데 머릿속 정위를 기준으로 가장 아래쪽에 깔려서 다른 음역대의 소리는 간섭하지 않은 채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합니다. 덕분에 어느 곡을 들어도 곡의 스케일이 크게 느껴집니다. 다만 취향에 따라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질 만한 무대와 관객석 사이의 가까운 거리, 그에 따른 강렬한 소리 표현입니다. 



  A 모드와 잘 어울리는 앨범으로 얼마 전 출시된 미국의 핫한 여성 아티스트 빌리 아일리시의 신보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를 추천합니다. 록 장르로 구분하던데 앨범 수록곡들을 쭉 들어보면 록과 팝이 혼합된 느낌입니다. 비트가 강조된 곡들이 많고요. 공통적으로 빌리 아일리시의 허스키한 보컬이 어두운 분위기를 부각시킵니다. A 모드의 밀도감은 강렬한 곡의 분위기를 한층 북돋아주면서도 보컬의 세세한 음색까지도 명확히 표현합니다. ‘Bad Guy’ 같이 비트가 중요시되는 곡은 강력하지만 딱 떨어지는 리듬 표현력을, ‘Wish you were gay’(음??) 초반부처럼 서정적인 멜로디와 보컬이 주가 되는 부분에서는 자연스러운 해상력을 뽐냅니다. 


  개인적으로 A 모드 다음으로 선호하는 모드는 고역 특화 모드인 Q 모드입니다. 무대와의 거리가 너무 가깝게 느껴질 때, 에이스 모드보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 곳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편안한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작업을 하면서 오랜 시간 음악을 들을 때 부담스럽지 않아서 즐겨 들었습니다. A 모드에 비해 저역 및 보컬의 음압이 낮아졌지만 질감 표현은 여전합니다. 토널 밸런스가 높아지면서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살짝 화사해졌지만 무대가 비었다는 느낌보다는 환해졌다는 긍정적인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Q 모드는 네 가지 모드 중 가장 넓은 사운드 스테이지를 자랑합니다. 따라서 무대를 넓게 활용하는 유형의 곡과 잘 어울립니다. 율리아 피셔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을 틀었습니다. Q 모드로 들어도 바이올린의 음색이 크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이 곡의 경우 A 모드보다 Q 모드가 더 잘 어울립니다. A 모드로 들었을 때에는 스테이징을 소리로 가득 채우는, 예전 스타일의 하이파이 시스템에서 듣는 것 같다면 Q 모드는 요즘 유행하는 현대적인 하이파이 사운드에 가까운 스타일입니다. 무대를 최대한 넓게 펼쳐주고 중고역의 해상력을 극대화시키는 시원한 성향의 튜닝입니다. 저역이 줄어들었지만 존재감이 사라지지 않는 정도였습니다. 화사한 소리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쪽이 더 밸런스가 잘 맞는다고 느껴질 만한, 역시나 잘 만들어진 소리입니다. 


  보다 다이나믹하게 듣고 싶다면 J 모드를 선택하시면 됩니다. Q 모드의 저역이 허전했다면 넓은 공간감은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아래 음역대를 풍성하게 울리는 J 모드로 들어보세요. 다만 여기서부터는 음역대 밸런스가 맞는 사운드와는 거리가 있는 편입니다. V자 음색이 두드러지게 드러납니다. 가령 앞선 곡을 들으면 바이올린 독주 파트에서는 별 문제가 없지만 총주로 들어서면서 바이올린이 다른 악기 소리 사이에 묻힌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면 아예 장르를 바꿔볼까요? 화이트 스네이크의 ‘Isthis love’를 들으며 80년대 감성으로 돌아가봅시다. 베이스와 드럼 비트의 묵직함 등 전통 록 장르와 잘 어울리는 음색입니다. 무대의 온전한 입체감은 밸런스 모드가 단연 앞서지만 좌우 폭을 보다 길게, 보컬은 살짝 뒤로 밀어넣은 널찍한 아치형 스테이징이 주는 매력이 있지요.


  마지막 보컬 특화 모드인 K모드, 개인적으로는 가장 취향에 맞지 않는 모드이긴 합니다. J 모드와는 반대로 보컬이 도드라지는 역V자 음색이 두드러집니다. 무대의 폭이 좁아지고 무대 중앙만 다소 앞으로 튀어나와서 확실히 보컬을 비롯한 중음역대의 집중도가 확 올라갑니다. 보컬 모니터링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최적의 모드가 아닌가 싶지만 에이스의 가격을 생각한다면 나머지 모드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가격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드였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스위치 두 개가 만들어내는 네 가지 경우의 수를 채우기 위해 넣은 모드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극히 주관적인 취향이니까요. 음색의 변화도 가장 크게 느껴지는 모드입니다.




  이제껏 고가의 이어폰들을 들으면서 가격대에 어울리는 소리를 들려준 인상깊은 제품들도 여럿 기억 납니다. 밸런스형 제품도 있었고 절묘한 저역 튜닝으로 이어폰으로 듣기 어려운 공간감을 무기로 내세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 성향상 스위치가 달린 이어폰이 리스트 상위권에 드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오죽 했으면 커스텀 이어폰을 만들 때에도 굳이 스위치는 필요 없을 것 같다며 빼버리고 한 소리만 택했을까요. 하지만 지금 누군가 제게 기억에 남는 최고의 이어폰이 뭐냐고 묻는다면 당분간은 아로마 에이스를 꼽겠습니다. 처음 귀에 꽂았을 때부터 충격적일 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최대한 개인의 취향을 숨기고 이어폰의 성향만을 기술하려 했는데 막상 써놓은 글을 읽어보니 실패했습니다. 어쩔 수 없어요. 좋은 건 좋다고 해야죠. 



  아마 소리만 놓고 보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할 만한 이어폰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격이 문제이지요. 500만 원에 가까운 이어폰에 대중적인 인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마니아 중 마니아들의 영역으로 보아야겠습니다. 아로마 에이스는 그 부류 속한 이어폰들과 견주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제품입니다. 다만 아직은 약한 아로마 오디오의 브랜드 파워가 제품 선택 과정에서 에이스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에이스에서 스위치를 없앤 개별 제품들이 보다 저렴한 가격에 출시되는 것입니다. 특히 밸런스형 A 모드와 과 고역 특화 Q 모드는 각각 중저역의 밀도 높은 소리 성향과 넓은 무대를 기반으로 한 고역 성향의 유저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을 만합니다. 단독 출시로 200만 원대에 출시된다면 좋겠지만, 아마도 힘들겠지요. 그런데 반값이 250만 원이라니.. 이래저래 어마무시힌 제품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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