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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Mar 22. 2020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면서요

내 나이가 어때서

(개인적인 주관입니다)


 캐나다에서 살면서 느꼈던 가장 큰 감정은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하지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문화충격을 다수 경험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크게 내 관점을 바꿔준 경험은 나이에 대한 차별이 없다는 것이었다.


 스무 살,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다. 본사 직영점이었던 지라 가맹점을 희망하는 점주들이 1~2주가량 트레이닝을 받곤 했는데, 어느 날 50대의 여성분이 트레이닝을 받으러 왔다. 카페 운영은 물론 에스프레소 머신 작동법도 몰랐지만 트레이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다. (물론 내가 아닌 직원분께 교육을 받았다)

 몇 주 뒤 본사 VOC가 올라왔다고 하여 내용을 들어보니, 트레이니가 만든 음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 같이 있던 직원 말로는 나이 많은 사람이 본인 커피를 만든 것에 불만을 품고 글을 올린 것 같다고 했다. 그 손님은 주문 후 음료를 받을 때까지 트레이니가 음료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며 내내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대체 뭐가 그렇게 싫었을까? 카라멜 마끼아또는 젊은 사람만 만들고 마실 수 있는 특권이라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하지만 내가 일했던 캐나다 스타벅스 매장에선 만 24세의 내 나이가 꽤 어린 축에 속했다. 한국이었다면 취업 준비 스트레스, 뒤쳐졌다는 불안감 등 및 주변 간섭에 지쳐있을 시기였을텐데. 동료들의 나이대가 정말 다양했고 몇몇은 결혼 및 자녀도 키우고 있었다. 파트너 나이가 많다고 커피가 맛없을 거라 판단하는 손님도 없었다.


 처음엔 동료들, 손님들에게 존댓말을 하지 않고 you 혹은 이름으로 부르는 게 괜히 무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편안함이 고맙게 느껴졌다.


 내가 만약 한국에 일하러 온 외국인이고 반말 / 존댓말로 인한 위계질서 때문에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를 얻지 못했다면 정말 억울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특정 나이엔 어떤 것을 이뤄야 한다는 혹은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캐나다라고 그게 없다는 말은 아니다. 겉으로 티는 안내도 속으로 판단하는 사람은 어딜 가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첫 만남부터 나이를 묻고 서열을 따져가며 그 나이 동안 뭐했어요?라고 상처를 받아본 적은 없었다.


 어느 나이에 어떤 삶을 살던 그건 본인의 선택이고 따를 자유가 있다. 그걸 판단할 기준은 누가 쥐어준 걸까?


 - 이상 코로나로 인해 취준길이 막막해진 취준생의 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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