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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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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an 29. 2024

1월 27일 ~ 1월 28일 감사 일기

1월 27일

1. 서울 숙소로 묵은 신라스테이에서의 아침. 밖에서는 잠을 잘 못 자는 성향이라 5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습니다. 호텔에 있는 커피 티백을 우리며, 22층의 방 창문에서 햇빛으로 인해 주황으로 물드는 도시의 마천루를 감상했습니다.  아이가 늦잠을 자는 시간 동안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감사합니다.


2. 최근 몇 달 동안 많은 소설을 걸신 들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어대고 있습니다. 정말 저 세상 창의성 같이 느껴지는 신기한 소설들이었습니다. 책만 열면 쏟아지는 새로운 세상들은 제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인지, 세상이 얼마나 넓고 넓은 곳인지를 알게 합니다.


마치 손톱을 갈아버리는 네일 파일처럼 소설들은 제 영혼의 모서리를 사정 없이 갈아버립니다. 물처럼 살아가라고. 그 마저도 잘 안되면 그냥 꼭 잡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물살을 느껴보라고. 죽을 거 같이 답답했던 마음들도 그저 이 물살 위에 흘러가다보면 다 거짓말 같이 사라진다고.


책을 읽는다는 건 이 세상의 끝까지 가보는 것. 그리고 아무리 가도 끝 없이 확장되는 세상의 거대함에 놀라는 것. 결국 나란 존재의 미미함과 하나님의 크심을 알게 되는 것. 하여 기도 외에는 내가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마침내 깨닫게 되는 것.


책이 있어 감사하고, 그 책을 통해 제가 겪는 지금의 힘든 시간을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어 감사합니다.


3. 사랑하는 친구와 여행 마지막 날을 함께 보냈습니다. 비록 아이들과 함께 만나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파편처럼 점점이 흩어지기 일쑤였지만, 카톡으로 서로의 안부만을 주고 받던 세월에 친구가 짓는 표정, 목소리를 덧 입히는 것은 꽤나 소중한 작업이었습니다.


진정한 친구. 그건 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친구가 해외에 있던 기간에도 저는 인생의 고비마다 친구에게 과분한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 사이에 필요한 건 많은 말이나 잦은 만남이 아니란 걸 압니다.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에 기꺼이 마음 한 켠을 내어주는 일. 그 터널 안의 사람의 안부를 걱정해주는 일. 기도조차 부탁하지 못해 허덕이는 나를 위해 대신 기도해주는 일. 그런 일들이 우리에게는 더욱 필요한 일이었고, 서로에게 그런 것들을 주었다 생각합니다.


내 앞의 세월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릅니다. 그저 남은 세월동안 제가 사랑하는 이들의 안녕을 위해 전심으로 기도하며, 온 힘을 다해 위로하고 돕는 것이 작은 제가 할 유일한 일일 것입니다.


누군가를 깊이 만나는 것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으로 늙고 있어 감사합니다.


4.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여 아이를 깨끗하게 씻기고 뜨끈하게 밥을 지어 먹였습니다. 상쾌한 몸과 부른 배를 안고 제 품 안에서 새근새근 잠든 호두를 바라보니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습니다.


내 몸과 성정을 꼭 닮은 자식을 낳아 최선을 다해 돌보는 기쁨, 아이가 즐거워하는 것을 지켜보는 흐뭇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호두가 태어나 제게 준 수많은 기쁨은 제 마음의 하늘에 별처럼 박혀 지워지지 않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1월 28일

1. 여행의 피로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습니다. 눈이 너무 따끔거려서 자기 전 눈 스프레이를 뿌리고 잤는데, 오늘은 통증이 없었습니다. 다행입니다.


2. 제가 바빠서 호두가 스스로 옷을 챙겨 입었는데, 옷 코디가 그럴싸합니다. 많이 컸습니다.


3. 점점 호두의 머리 묶기 지침이 세분화되고 있습니다. 아침에 시간이 없는데, 지침이 너무 복잡해서 따르기기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오늘은 고객님을 어느 정도 만족시켜드려 다행입니다.


4. 성령의 나무 찬양에 요즘 꽂혀서인지 성령의 9가지 열매를 궁금해하고, 자꾸 외우려 하는 호두를 보니 뿌듯합니다.


5. 도서관에 예약해놓은 무라카미 하루키 신작 소설을 찾아왔습니다.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팬은 아니나 한동안 베스트셀러를 평정한 그의 책 내용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앞의 몇 장을 읽어보았는데, 역시는 역시였습니다. 문장에 재능이 있는 작가들은 문장 구성력이 확실히 다릅니다. 그의 소설 내용은 제 스타일이 아니지만, 그의 작가적 재능은 무척 끌립니다. 하루키는 이렇게 제게 독특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작가입니다. 세상은 넓고, 다양한 재능을 가진 작가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6. 육아는 다시금 나를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한 뒤 비슷한 상황에서 내가 듣고 싶었던 말, 받고 싶던 대우를 아이에게 해줄 기회를 줍니다.


엄마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시대 상황과 불우했던 환경을 생각하면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선택을 합니다. 호두에게 내가 바랐던 엄마로서 서고 싶습니다. 제게 다시금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7. 진영(가명)엄마, 진영이와 함께 군에서 운영하는 어울림센터 키즈카페에 놀러 갔습니다. 시설도 깨끗하고 놀기에 좋았습니다. 진영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올해 상반기에 휴직이시니 더 자주 만나며,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8. 남편 없이 홀로 5일째 풀 육아를 하다보니 몸이 방전된 거 같습니다. 오늘 저녁은 소파에서 골골대며 있었습니다. 계속 놀아달라는 호두의 말이 무섭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남은 힘을 쥐어 짜내며 적당히 놀아주었습니다. 또 하루가 갔네요. 감사합니다.


9. 구병모의 위저드베이커리를 다 읽었습니다. 제게는 무척 충격적인 내용이었고(좋은 의미로), 몇몇 책속 문장은 제 뒷통수를 사정 없이 갈겨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만 징징대고, 꿋꿋하게 버티며 살아가야겠습니다. 책 속 주인공이 그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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