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빗소리 Mar 23. 2024

85살의 커리어우먼

위대한 유산


나의 할머니는 85살인 지금도 여전히 경제 활동에 매진 중이다. 더덕을 떼다 손수 깎아서 되파신다. 할머니의 더덕은 고정 단골이 있고, 자주 품절이 될 정도로 인기이다. 할머니의 더덕팬이 많아 하루도 일을 쉬면 안된다며 부지런히 시장에 출근하신다. 누가 보면 생활고에 시달려 일선에 뛰어든 노인처럼 보이지만, 놀라운 사실은 할머니에게 장사는 취미라는 것이다. 할머니가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절대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화를 내겠지만 말이다.



취미라는 말에 할머니가 역정을 내신다면, 다시 말하고 싶다. 장사는 할머니의 재능기부라고. 할머니에게 장사는 세상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증거이다. 내가 그저 죽음만 기다리는 무용한 인생이 아니라 건재하다는 것을 매일 증명하게 해주는 방편이다.



할머니에게는 돈 잘 버는 큰 아들이 있다. 큰 아들은 착하기까지 해서 생활고를 느낄 새도 없이 용돈과 생활비를 넉넉히 채워주곤 한다. 할머니의 특별한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돈이 수중에 넉넉히 있고, 내일 먹을 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걸 알면서도 손가락이 저리도록 더덕을 까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장에 좌판을 열고, 더위와 추위를 온몸으로 맞으며 버티신다.



좌판에서 오가는 사람을 바라보며 하염 없이 손님을 기다리다가 심심하면 손녀 딸(당시 육아휴직 중이었던 나)에게 전화를 건다.



"뭐해. 애기랑 놀고 있다고? 요즘은 어린이집에서 아이 다 맡아주고 엄마들은 일 나가면 된다는데, 너는 뭐한다고 요로코롬 3년이나 집에서 놀고만 있는겨. 사람이 나가서 일을 해야지."



휴직하면서 할머니의 복직 권유 전화를 받을 때마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놀고 먹으면 사람 배린다(?)는 할머니의 말에 마음이 흔들리기는 커녕 우리 할머니는 진짜 구시대적인 사람이구나 혀를 내둘렀다. 요즘 시대는 밥 안 굶으면서 한량으로 살 수 있는 게 능력인 시대인데 말이다.



복직을 하고 다시금 직장 생활의 고단함을 견뎌가니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코웃음치며 무시했던 할머니의 여러 말들과 할머니의 인생이 진지하게 다가왔다. 할머니의 인생의 여러 험난했던 순간들과 그때마다 그녀가 했던 선택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불을 박차며 노동의 현장에 서슴 없이 뛰어들던 그녀의 아침.



20대가 넘어가자마자 결혼을 했지만, 남편은 너무나 성미가 괴팍한 사람이었다. 독특한 성격에 다혈질의 사나이. 찬물에 손 얼어가며 어렵게 준비한 밥상도 벌컥 뒤엎는 게 일상인 남자였다. 마치 분노 발작 환자처럼 갑자기 화를 내곤 했던 할아버지 때문에 엄마는 어린 나이부터 자주 놀라 사시가 생겼다 한다. 나는 이 대목을 들을 때면 할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주먹이 불끈 쥐어지곤 했다. 성미가 고약한데, 심지어 생활능력마저 없는 남자. 집은 당연히 가난했고, 할머니는 4남매가 아기일 때부터 첫째 딸에게 아이를 모두 맡기고 일선에 뛰어들었다. 산후조리는 호사였다. 내 몸이 부서지든 말든 당장 내일의 먹거리를 걱정하며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할머니에게 일은 유일한 동앗줄이었다. 내 새끼들 밥 안 굶기고 공부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무언가. 할머니는 안해 본 장사가 없을 정도로 정말 다양한 일을 해왔다. 20대부터 80대까지. 무려 60년을 일해온 것이다. 퇴직도 없이.



할머니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자주 해왔는데, 똑같은 직장인이 되고 18년 동안 직장에서의 희로애락을 모두 느껴보니 할머니에 대한 감정이 좀 더 다채로워진다.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존경심이다. 그 많은 풍지풍파에도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경제 활동을 해왔다는 것은 범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진상인 손님이 있었을 것이고, 사기 당하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관절염 오도록 까봤자 오히려 손해나 보고 있는 이 놈의 더덕 따위 던져버리고 싶은 순간이 수백번은 있었을 것이다. 이제 그만 좀 일하고 집에서 쉬라고 버럭버럭 소리지르는 아들의 효도에 뜨끔하기도 했겠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들을 뒤로하고 어김 없이 아침마다 화장을 하고 시장으로 출근하는 나의 할머니의 걸음을 떠올려본다. 장군도 이처럼 위풍당당할 수 없을 거 같다. 위풍당당이라는 것이 꼭 형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단단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직장일에 권태를 자주 느낀다. 오랫동안 반복해서 해온 일이라 그런가보다. 열정적인 내 성격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월급은 턱 없이 적다는 생각도 종종 한다. 하는 일을 생각하면 두 배는 더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럴 때마다 할머니를 떠올린다. 할머니에게 직장은 그저 재능기부와 헌신일 때가 많았다. 지금은 잘 못 느끼지만, 할머니처럼 죽음에 가까워져 갈수록 '내가 사회에 쓸모가 있다'라는 감각이 얼마나 한 사람을 단단하게 붙잡는지를 점점 알게 되겠지. 그때를 예비하며 나는 재능기부와 헌신으로 직장 한 켠을 능숙히 담당하며 살려 한다.



85세의 빛나는 커리어우먼 할머니. 버는 돈을 종종 어렵게 사는 시장 상인들의 물건을 팔아주는 데에 다 날리는 소비요정이며, 긍휼함이 많아 남 돕는 일에 남보다 진심인 우리 할머니는 여전히 사랑스럽다. 명품가방보다, 금팔찌보다 남 도와주는 것을 더 귀히 여기는 할머니는 내가 아는 어떤 사람보다 더 풍족한 마음을 가졌다. 삼촌이 주는 생활비를 제외하면 모두 자신이 쓰고 싶은 데로 팍팍 쓴다. 진정한 80대의 플렉스다.



살면서 할머니처럼 살고 싶다 생각한 적이 없는데, 엄마 돌아가신 뒤 할머니와 대화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가며, 나는 할머니를 내 핏줄을 넘어 한 명의 직장인으로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게 되었고,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남들은 누워있는 나이에 여전히 크게 아픈 곳 하나 없이 경제 활동을 하는 노인. 할머니 나이 또래를 생각해보니 이런 노인이 제일 부러운 삶이지 뭐가 부러운 삶인가. 건물이 있어도 누워만 있다면 그건 그저 자식들 좋은 일일뿐 아닌가. 우스개 소리로 년시리즈가 여기 저기 자주 보이는데, 종국에는 결혼 잘한 년, 자식 잘 된 년, 부동산 있는 년을 뒤엎고 머리숱 많은 년이 최고라는 글을 보고 웃은 적이 있다. 할머니의 삶을 보니 숱 많은 것 보다 끝까지 건강하게 직장일 하는 년이 년시리즈의 결말 같다.



할머니 삶의 족쇄 같았던 직장이 오히려 할머니의 건강 비결이었고, 여전히 몸과 정신이 싱싱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보탬이 되고 있다는 것.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자신을 꼭 묶어 두었던 것들을 성장 발판으로 삼아 버리는 할머니가 멋지다. 이제는 안다. 모두가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번지르한 직장인만이 멋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기 삶의 장애물을 뛰어 넘어 그 장애물을 계단 삼아 나아가는 삶이 진정한 멋이라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다.



배움이 부족한 손녀딸을 위해 할머니께서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할머니 곁에서 삶의 정수들을 쏙쏙 빨아들이며, 무럭무럭 자라나 할머니처럼 멋진 노장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으니까.









대표

사진 삭제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미숙한 글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