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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Apr 14. 2024

컴플렉스가 있으신가요?

컴플렉스가 있으신가요? 저는 작은 키와 까만 피부가 저의 컴플렉스예요. 키와 피부 때문에 어울리는 색감의 옷을 찾기도 쉽지 않고, 잘 어울리는 색조 화장 또한 찾기 어렵습니다. 옷과 화장에 대해서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온 거 같아요. 쉽지 않을 뿐이지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무수한 실험이 겹겹이 쌓여 지금은 고유의 패션과 화장룩이 생겼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요.


제가 어릴 때는 우리나라의 분위기가 훨씬 더 냉혹했던 거 같아요. 흑백논리가 강했고, 서구 문화에 대한 선호도 지금보다 좀 더 맹목적이었죠. 모든 사람이 적당히 큰 키에 하얀 피부를 강요받는 시대였어요. 어떤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매몰차게 놀리고 무시하는 문화가 강했어요. 초등학교 때 남자아이들이 피부색과 키를 가지고 놀리던 순간들이 참 많았지요. 중고등학교 때는 같은 여자아이들이 장난스레 외모로 서로를 무시하는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그런 것들이 상처가 될 때가 꽤 있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다양성이 존중되는 이 사회가 신기해요. 다른 나라에 이민온 느낌이랄까요.


가장 가슴이 아팠던 건 부모님이 주는 상처였어요. 유전적으로 당연히 부모님의 외형을 많이 물려받았고, 먼저 어려운 순간을 겪어보셨기에 저에게 해주시는 조언들이 비수처럼 꽂힐 때가 많았습니다. 너는 키가 작으니 늘 높은 굽을 신어야 해, 니 피부색에 이런 색깔은 절대 입으면 안 돼. 절대, 꼭. 이런 말로 점점 스스로를 가두어야 할 때 제가 느꼈던 답답함을 부모님은 알고 계셨을까요. 부모님은 저를 지켜 주시려 했던 말들인데, 오히려 그런 말들이 세상에 나가보기도 전에 저를 더 움츠러들게 했던 거 같아요. 이런 생각들이 들 때면 제 자신도 반성한답니다. 제 딸에게 저 또한 그러고 있는 건 아닌지. 때론 사람들에게 쓴소리도 듣고 스스로 겪고 이겨나가야 할 상처가 있는 법인데, 그것을 면역시킨다는 마음으로 가족 내에서 먼저 아이를 아프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컴플렉스에 매몰되어 살 순 없어 커가며 방법을 찾아갑니다. 무조건 높은 굽만 신으며 컴플렉스를 도드라지게 만들 순 없어 적당한 미들굽에, 잘 관리하여 비율이 좋은 체형을 가지려 노력하고, 내 체형에 잘 맞는 핏을 가진 옷을 입으려 옷을 공부하곤 했어요. 중간 피부색으로 화장을 해도 하얗게 들떠버리니 애초에 하얗게 되는 것을 포기하고, 제 피부색에 잘 맞는 파운데이션을 찾아 자연스럽고 건강한 혈색을 보일 수 있도록 화장 공부를 또 합니다. 그렇게 저는 저만의 고유한 패션과 화장룩을 찾아갔고,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가는 거 같아요.


김이나 작사가는 이런 말을 했지요.


한 사람의 결이나 질감은 잘 관리된 컴플렉스에서 비롯된다.


그 말을 들으며 깊이 공감했어요. 컴플렉스는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해서요. 성나지 않게 곱게 빗질을 하여 부드럽게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을 뿐이라고요.  


아무리 잘 관리해도 종종 만나는 무례한 사람들의 훅 들어오는 말에 와르르 무너질 거 같을 때도 있어요.


”나 그동안 선생님 키 궁금했잖아. 대체 키가 몇이야? 많이 작지?“

“선생님은 왜 키가 저 형보다 작아요? 선생님이 학생보다 작으면 어떡해요.”


순간 당황하지만, 침착하게 천천히 생각한 뒤 대답합니다.


“(가볍게 웃으면서) 글쎄요, 별로 말해드리고 싶진 않은데요?”

“무슨 소리야. 선생님보다 점점 더 커나가야지. 키 크면 좋아. 나는 너네들이 잘 먹고 잘 자서 더 크면 좋겠어.”


그들의 무례에 공격적으로 나가기보다 그냥 솔직한 내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내 기억에서 이 순간이 잘못 매듭지어지지 않도록. 제가 제 감정을 참거나 과도하게 공격적으로 표출한 순간은 아픈 매듭으로 남아 종종 기억의 흐름에서 걸리더군요. 최대한 모든 기억이 자연스럽게 망각되어질 수 있도록 그 순간이 물처럼 흘러가도록 합니다.


컴플렉스와 살아가는 것이 꼭 원한 건 아니지만, 꺼끌 거리는 느낌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행위 자체가 멋지다 생각해요. 컴플렉스가 없었다면 저는 지금처럼 패션이나 화장에 관심이 있지도 않았을 것이고, 내 감정을 부드럽지만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해보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저는 여전히 키가 작고 피부가 까맣습니다. 키가 작고 까만 피부란 요소 또한 나란 사람의 독특한 외형과 정서를 만든다는 거 자체를 이젠 인정하면서요. 종종 스트레스를 받지만, 스트레스만 받지는 않아요. 이제는 그것들이 없는 저를 상상할 순 없어요. 좋아하진 않아도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는 있어요. 그런 조화를 결국 만들어낼 수 있어 좋고요.


삶은 컴플렉스를 죽을 때까지 관리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나의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모두 끌어안고, 질질질 끌고 가면서 어떻게든 새 하루, 새 날들을 그것들과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 저는 이 지긋지긋한 것들과 좀 더 진하게 친밀해져보려 합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노래가 이 내용과 잘 어울리는 거 같아서 올립니다.


https://youtu.be/h2TLNdaQkL4?si=kCjD0Fa8zwXgCF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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