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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Apr 16. 2024

미워하는 마음

지난 밤 꿈에 엄마께서 나오셨어요. 1년 전에 돌아가시고 난 뒤 2번 정도 꿈에 나타나셨는데, 찰나의 장면으로만 등장하셔서 어떤 꿈인지 잘 기억조차 안났어요.


마지막 2주 동안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계셨는데, 꿈에서도 산소호흡기를 끼고 계셨어요. 그래도 모습은 편안해보이셨어요. 이전 꿈과 달리 오래 계셔서 저는 엄마께 제 속에 숨겨둔 말들을 어렵게 꺼냈어요.


엄마의 친구들 이야기였어요. 저에게 큰 상처를 준 사람들이죠. 저는 가까운 친구들에게조차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어요.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을만큼 길고 깊은 상처여서 였습니다.


엄마의 친구 A. 엄마께서 쓰러지신 뒤 며칠을 휴대전화를 꺼놨더니 휴대전화에는 온갖 친구들의 메시지가 쌓여 있었죠. 내내 침묵하다가 의사선생님께서 이제 가망이 없다 하실 때 친구분들께 일일히 메시지를 했어요.


“엄마께서 쓰러지신 뒤 의식을 찾지 못하십니다. 의사선생님께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시는데, 아직 가족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날 밤 엄마의 친구 A가 제 번호로 연락을 했더군요. 엄마의 계에서 엄마가 앞으로 내야 할 곗돈을 완납해주면 좋겠다고. 이대로 가시면 받을 수 없을 거 같아 연락한다고.


메시지를 받는데 부들부들 떨리더군요.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울었습니다. 저는 엄마를 보낼 준비가 안되었는데, 아직 돌아가시지도 않은 엄마를 산송장 취급하는 거 같아 분노가 치솟았어요.


저한테 그런 문자를 보내놓고 정작 2주 뒤 장례식 때는 저와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던 A. 저는 A를 오랫동안 증오했습니다. 나이란 계급장 떼고 정말 맹렬하게 싸우고 싶었는데, 엄마 가시는 길에 누가 될까봐 주먹만 쥘뿐이었습니다.


또다른 친구 B. 엄마의 집을 마지막으로 보고싶다며 장례식 치룬 며칠 뒤 집으로 왔던 그분. 엉엉 울면서도 엄마의 예쁜 물건들을 이리 저리 탐색하던 그분의 눈빛은 그 이후로도 못 잊겠더라구요. 엄마의 장식품 중 몇 개를 자기 줄 순 없는지 물어보더군요. 그린티에 예전에 글 쓴 적도 있지만 엄마께서 안목이 높으신 편이라 예쁜 물건을 잘 고르시거든요. 설사 그렇다 해도 부모를 잃은 자식 앞에서 그게 할 소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엄마의 납골당에 시간날 때마다 간다며 눈물 짓는 그분을 보며 저는 쓰게 웃었습니다.


사실 엄마 장례식을 치르며 엄마의 친구분들께 감동 받은 순간이 훨씬 많았어요. 좋은 분이 몇 배는 더 많은데도 A와 B의 일은 제게 큰 상실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가뜩이나 외롭고 추운 마음인 그때의 내가 그런 상처를 겪느라 힘이 들었죠.


엄마에게 이 얘기를 모두 다하며 꿈에서 엉엉 울었어요. 그게 사람이냐고. 어떻게 부모 잃은 자식에게 그런 상처를 줄 수 있냐고. 미주알고주알 다 얘기했어요. 제 속에 있는 모든 이야기들을.


엄마는 제 얘기를 들으며 같이 엉엉 울었어요. 고개를 계속 끄덕이면서. 한참 같이 울어주다 말씀하시더군요.


그치. 그렇게 하면 안되는 거지. 그런데 엄마는 그 사람들 밉지 않아.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는 거야. 우리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눈을 떴습니다. 너무 생생해서 오늘 이 이야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글로 남겨야겠다 생각하며 하루종일 하나도 까먹지 않도록 마음에 꾹꾹 새기며 있었어요.


엄마는 알았던 거 같아요. 비록 제 깊은 곳에 있었지만, 그게 제게는 해결되지 않는 미움이었단 걸. 그 미움을 질질 끌고 살아가는 제가 안타까우셨나봐요. 너랑 나도 그런 실수 할 수 있는 거라고. 우리도 누군가를 우리도 모르게 상처준 적이 있었을테니, 그저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다 생각하자고. 거짓말 같이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무엇보다 제가 정말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이란 건 늘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들도 그저 그런 실수를 한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엄마가 돌아가신 뒤 천국을 믿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인이어도 천국이 잘 안 믿어졌어요. 그런데 엄마 같이 착한 사람이 죽으면 그저 끝이라는 게 더 안 믿겨지더군요. 엄마는 편안한 곳에서 행복하게 다음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꿈속에서 만난 엄마는 편안해보였습니다. 딸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조차 미워하지 않으며. 저도 엄마 딸이니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이제 날려 보내주려 합니다. 아침부터 백만송이 장미란 노래가 떠오르더군요.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 없이, 아낌 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엄마와 그립고 아름다운 나라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미워하는 마음 없이 살아가렵니다. 딸의 마음에 그 어떤 무게의 짐도 지워지길 바라지 않는 나의 다정한 엄마가 있기에. 이제는 다른 나라에 살면서도 굳이 꿈에까지 나타나 그 짐까지 가져가버리는 엄마가 있어서. 지금 이 나라가 외롭고 춥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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