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빗소리 Apr 14. 2024

컴플렉스가 있으신가요?

컴플렉스가 있으신가요? 저는 작은 키와 까만 피부가 저의 컴플렉스예요. 키와 피부 때문에 어울리는 색감의 옷을 찾기도 쉽지 않고, 잘 어울리는 색조 화장 또한 찾기 어렵습니다. 옷과 화장에 대해서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온 거 같아요. 쉽지 않을 뿐이지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무수한 실험이 겹겹이 쌓여 지금은 고유의 패션과 화장룩이 생겼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요.


제가 어릴 때는 우리나라의 분위기가 훨씬 더 냉혹했던 거 같아요. 흑백논리가 강했고, 서구 문화에 대한 선호도 지금보다 좀 더 맹목적이었죠. 모든 사람이 적당히 큰 키에 하얀 피부를 강요받는 시대였어요. 어떤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매몰차게 놀리고 무시하는 문화가 강했어요. 초등학교 때 남자아이들이 피부색과 키를 가지고 놀리던 순간들이 참 많았지요. 중고등학교 때는 같은 여자아이들이 장난스레 외모로 서로를 무시하는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그런 것들이 상처가 될 때가 꽤 있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다양성이 존중되는 이 사회가 신기해요. 다른 나라에 이민온 느낌이랄까요.


가장 가슴이 아팠던 건 부모님이 주는 상처였어요. 유전적으로 당연히 부모님의 외형을 많이 물려받았고, 먼저 어려운 순간을 겪어보셨기에 저에게 해주시는 조언들이 비수처럼 꽂힐 때가 많았습니다. 너는 키가 작으니 늘 높은 굽을 신어야 해, 니 피부색에 이런 색깔은 절대 입으면 안 돼. 절대, 꼭. 이런 말로 점점 스스로를 가두어야 할 때 제가 느꼈던 답답함을 부모님은 알고 계셨을까요. 부모님은 저를 지켜 주시려 했던 말들인데, 오히려 그런 말들이 세상에 나가보기도 전에 저를 더 움츠러들게 했던 거 같아요. 이런 생각들이 들 때면 제 자신도 반성한답니다. 제 딸에게 저 또한 그러고 있는 건 아닌지. 때론 사람들에게 쓴소리도 듣고 스스로 겪고 이겨나가야 할 상처가 있는 법인데, 그것을 면역시킨다는 마음으로 가족 내에서 먼저 아이를 아프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컴플렉스에 매몰되어 살 순 없어 커가며 방법을 찾아갑니다. 무조건 높은 굽만 신으며 컴플렉스를 도드라지게 만들 순 없어 적당한 미들굽에, 잘 관리하여 비율이 좋은 체형을 가지려 노력하고, 내 체형에 잘 맞는 핏을 가진 옷을 입으려 옷을 공부하곤 했어요. 중간 피부색으로 화장을 해도 하얗게 들떠버리니 애초에 하얗게 되는 것을 포기하고, 제 피부색에 잘 맞는 파운데이션을 찾아 자연스럽고 건강한 혈색을 보일 수 있도록 화장 공부를 또 합니다. 그렇게 저는 저만의 고유한 패션과 화장룩을 찾아갔고,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가는 거 같아요.


김이나 작사가는 이런 말을 했지요.


한 사람의 결이나 질감은 잘 관리된 컴플렉스에서 비롯된다.


그 말을 들으며 깊이 공감했어요. 컴플렉스는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해서요. 성나지 않게 곱게 빗질을 하여 부드럽게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을 뿐이라고요.  


아무리 잘 관리해도 종종 만나는 무례한 사람들의 훅 들어오는 말에 와르르 무너질 거 같을 때도 있어요.


”나 그동안 선생님 키 궁금했잖아. 대체 키가 몇이야? 많이 작지?“

“선생님은 왜 키가 저 형보다 작아요? 선생님이 학생보다 작으면 어떡해요.”


순간 당황하지만, 침착하게 천천히 생각한 뒤 대답합니다.


“(가볍게 웃으면서) 글쎄요, 별로 말해드리고 싶진 않은데요?”

“무슨 소리야. 선생님보다 점점 더 커나가야지. 키 크면 좋아. 나는 너네들이 잘 먹고 잘 자서 더 크면 좋겠어.”


그들의 무례에 공격적으로 나가기보다 그냥 솔직한 내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내 기억에서 이 순간이 잘못 매듭지어지지 않도록. 제가 제 감정을 참거나 과도하게 공격적으로 표출한 순간은 아픈 매듭으로 남아 종종 기억의 흐름에서 걸리더군요. 최대한 모든 기억이 자연스럽게 망각되어질 수 있도록 그 순간이 물처럼 흘러가도록 합니다.


컴플렉스와 살아가는 것이 꼭 원한 건 아니지만, 꺼끌 거리는 느낌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행위 자체가 멋지다 생각해요. 컴플렉스가 없었다면 저는 지금처럼 패션이나 화장에 관심이 있지도 않았을 것이고, 내 감정을 부드럽지만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해보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저는 여전히 키가 작고 피부가 까맣습니다. 키가 작고 까만 피부란 요소 또한 나란 사람의 독특한 외형과 정서를 만든다는 거 자체를 이젠 인정하면서요. 종종 스트레스를 받지만, 스트레스만 받지는 않아요. 이제는 그것들이 없는 저를 상상할 순 없어요. 좋아하진 않아도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는 있어요. 그런 조화를 결국 만들어낼 수 있어 좋고요.


삶은 컴플렉스를 죽을 때까지 관리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나의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모두 끌어안고, 질질질 끌고 가면서 어떻게든 새 하루, 새 날들을 그것들과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 저는 이 지긋지긋한 것들과 좀 더 진하게 친밀해져보려 합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노래가 이 내용과 잘 어울리는 거 같아서 올립니다.


https://youtu.be/h2TLNdaQkL4?si=kCjD0Fa8zwXgCFmF

매거진의 이전글 제3의 인간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