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을 쓸 때는 항상 소재가 명확히 있거나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쓰곤 했다. 오늘 문득 든 생각은 소재가 마땅치 않아도, 시간적 여유가 없어도 습관에 의해 쓰는 글쓰기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하여 내가 아는 많은 작가들은 공무원처럼 성실하게 일정한 시간에 글쓰기를 수행(?)하는 이들이 상당수이다. 머리 안에 있는 글쓰기를 담당하는 부분은 마치 식스팩처럼 끊임 없이 습관에 의해 단련되어야 할 부분이어서이지 않을까.
비오는 토요일이다. 한 없이 늘어지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책상 앞에 앉아 무엇이든 써본다. 습관 같이 자연스러운 이 과정을 통해 어쩌면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새로운 글쓰기 소재를 만날 수도 있는 일이니까.
#2
사람의 행, 불행을 양팔저울로 재보면 비슷하지 않을까. 때론 지나치게 밝아보이는 나의 어떤 면도 그 이면을 바라보면 꼭 그만큼의 어둠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깝거나 먼 지인들의 삶을 들어보면 그들 또한 행복과 그만큼의 불행을 이고 지고 사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군가의 행복에 사람이라 잠시는 질투할 수 있으나 오래 질투하거나 그 이상의 감정을 품지는 않도록 스스로의 생각을 끊임 없이 돌아본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불행에도 과도한 반응을 하지 않도록 한다. 언제든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나의 일이라 생각하고 그의 마음을 진심으로 위로하려 한다. 그에게 들은 이야기들은 다른 이에게 전하지 않고, 과한 친절을 베풀어서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게 하려 노력한다.
#3
매일 아침, 꼭 무인도의 지도를 받는 듯 하루가 생소하다. 매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 사람의 삶이라는 게 신기하고 긴장된다. 잘 살아내는 방법은 모르겠지만, 눈앞의 모든 일들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해본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이 가장 바라는 선은 무엇일까도 고민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고, 실수가 많은 행동을 자주 하지만, 내 하루의 어느 조각 중에는 나의 진심이 분명 묻어있으리라 생각한다.
#4
유연하고, 아직 변화할 가능성이 많은 존재인 어린이들과 함께 지낸다는 건 축복이다. 20~30대에는 그리 원치 않았던 직업을 얻어 살아가느라 이런 생각을 많이 못해본 거 같다. 그들을 쳐다볼 때면 그들 너머의 미래의 어른을 동시에 보는 거 같은 환상에 휩싸일 때가 있다. 아직은 규정지을 수 없고,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아이들의 삶이 멋지다. 지금의 그들과 미래의 그들이 함께 이 교실에 있다는 마음으로 수업에 임하곤 한다. 내가 가르치는 하나 하나의 수업들이 이 아이들의 미래에 좋은 선택을 하게 되는 밑재료가 되었으면 한다. 내가 생각하는 공부의 이유는 더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함이니까. 공부를 통해 넓어진 견문으로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를 올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키워진다 생각한다. 이 어린이들이 언제나 더 좋은 선택을 하길. 그리고 어떤 선택을 했다면 끝까지 책임 있는 자세로 선택에 임하길.
교사 생활이 힘들 때면 내가 가르치는 어린이들 중 하나는 분명 나로 인해 삶이 좀 더 나아졌을 거라는 생각에 몰두해본다. 그게 사실일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누군가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내 모습 자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