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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이 Jun 19. 2024

왜 카페는 커피 마시러가는 곳이 아닐까?

600일의 기록


 나는 카페에 가는 걸 좋아했다. 한 달에 30번 넘게 카페에 방문했던 적도 있으니, 하루에 한 곳 이상을 방문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내가 카페에 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쉬러 간다. 무슨 그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쉰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알아내기 위해선 꽤 많은 시간 고민해야 했다.



 처음에는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갔다. 진짜 맛있는 커피를 사냥하듯 이곳저곳 맛보러 다녔다. 커피 맛에 눈을 뜬 건 오래지 않았다. 7년 정도 됐으려나. 그전까지 내게 커피는 그저 진한 보리차 정도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커피의 고소함과 쌉싸름함, 약간의 산미가 기분 좋게 느껴졌다. 평소 먹는 음식이나 음료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과 향이 생소했던 탓인 것 같다.



 스타벅스를 시작으로 여기저기 도장 깨기를 하듯 카페를 탐험했다. 좋은 장비를 쓰는 곳을 찾아간다거나, 스페셜티를 취급하는 곳, 핸드 드립, 융드립을 하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결국 내가 스스로 커피를 내려 마시는 데까지 도달했다. 커피를 맛보는 게 참 좋았고, 가게 직원들과 커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았다. 그래서 카페를 다니는 걸 좋아했다.



 다들 눈치챘겠지만, 나는 이제는 더 이상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가지 않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제 커피 맛도 비슷비슷하다’는 거다.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처음 스페셜 티를 맛봤을 때의 감동을 이제는 느낄 수 없다. 어지간한 카페에서 내주는 커피보다, 내가 스스로 내려 마시는 커피 맛이 더 좋다. 게다가 가끔씩 만나는 ‘이런 커피로 카페를 운영한다고?’ 싶은 카페를 만났을 때 느끼는 당혹스러움이란. 





 그럼에도 나는 카페에 간다.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게 아니라 쉬러 간다. 가서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한다. 깊은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굳이 사무실이나 집에서 해도 될 일을 왜 카페에 가서 할까? 나는 카페가 갖는 한적한 느낌을 좋아한다. 이곳은 일상과 다른 새로운 공간이라는 착각을 만들어주는 ‘공간 분리’ 기능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무실 건물에 입점한 카페라 하더라도 카페가 갖는 특유의 분위기 덕에 심리적으로 다른 곳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일상에서 벗어난 느낌. 나에게 카페는 여행과도 같다.



 그래서 나는 여행지에서 카페를 가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나에게 카페는 여행의 대체제인데, 진짜 여행지에서 그 대체재를 찾는 행위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여행이라는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처라니, 뭔가 맥락이 맞지 않는 듯하다. 설악산에 가서 공기청정기를 틀어 놓는다는 비유가 맞으려나. 어쨌든 나는 그럼에도 카페를 간다. 여행지에서도 카페를 간다. 기분이야 어쨌건 간에, 여행지에서도 다른 공간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여행이 신물이 난 것 같다. 여행이 일상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여행을 통해 더는 감흥을 느끼지 못하 됐다. 살면서 다녀본 곳도 많고 먹어본 것도 많다. 심지어 맛있고 좋은 것들은 서울에 다 있더라. 여행지에서만 맛볼 수 있거나, 여행지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더는 느낄 수 없게 됐다. 감동적일 것도 탄성을 자아낼만한 것도 별로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아가라 폭포나 아프리카 초원을 보면 조금 다른 기분이 드려나?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것들을 이미 티비를 통해 대리 만족해버렸다. 아예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봤다면 엄청난 감동을 느꼈을 테지만, 이미 예고편으로 대충 분위기를 다 파악해버린 탓에 별다른 기대도 갖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다시 카페를 찾게 된다. 쉬러 간 곳에서도 쉬는 곳의 대행업체를 찾게 되는 거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갈증. 그것을 조금이라도 적실 수 있을까 해서 카페를 찾는 거다. 그러나 내 도파민은 이미 닳을 만큼 닳았다. 웬만큼 강한 충격이 아니고서야 도파민이 나오지 않는다. 보다 큰 충격, 좀 더 화끈한 것, 엄청나게 자극적인 것. 내 뇌는 그런 걸 갈구하지만 나로선 더 이상 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그냥 카페인이나 한 술 떠 마시는 거다. 이걸로 적당히 해결하라면서. 그렇다. 내게 카페는 한숨 쉬는 곳, 그리고 적당히 적당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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