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제이 Jun 20. 2024

불안과 허무라는 파도타기

600일의 기록


 노크 없이 불쑥 찾아오는 막연한 불안감과 허무함 앞에 우리는 쉽게 무력해진다. 아무리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외면이 튼튼한 사람이라도, 불안과 허무의 방문을 막을 도리는 없어 보인다. 나 역시 그런 느낌을 종종, 아 수시로 받는다. 어제는 스티브 잡스 못지않은 열정 왕이었다가, 오늘은 보잘것없는 성적표를 손에 쥔 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벌벌 떤다.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건 마음먹는다고 해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아침에 찬물 샤워를 하고, 러닝을 하며 근력 운동을 하루도 빠짐없이 해온들 막을 수 없는 일이다.



 ‘불안과 허무라는 강력한 심리적 펀치는 정말 내 인생의 걸림돌일까?’ 오늘 처음 그런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은 불안한 감정과 허무한 느낌이 들면 극복하려 들었다. 이겨낼 방법을 찾고 고민했다. 그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거다. ‘거스르려 하면 더 심해지지 않나?’ 밀려오는 파도를 손바닥으로 막고 있으면 손 위로 파도가 흘러 넘어간다. 하지만 파도 쪽으로 손바닥을 밀어내면 원래 있던 파도보다 더 큰 파도가 생긴다. 그러나 반대로 파도가 밀려오는 방향 그대로 손바닥을 밀면 파도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빠져나간다. 어쩌면 더 빠르게 파도가 흘러나간다.



 우리 몸에 상처가 나 피가 고이면, 이내 딱지가 생기고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다. 늘 그때가 고비다. 우리 몸에 새 살이 나오려는 순간, 이유는 모르겠지만 상처 부위에서 통증이 멈추고 잔잔한 가려움이 시작된다. 주변을 살살 긁으면 느껴지는 알쏭달쏭 한 기분 좋음. 처음엔 살살 긁어도 만족스럽다. 하지만 점점 강도가 세지고, 결국 딱지를 뜯어내 다시 피를 본 뒤에야 멈추게 된다. 그렇게 작게 시작한 상처는 딱지를 떼면 뗄수록 점점 커진다. 끝내 밴드를 붙이지 않고는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가 커지고 ‘더 이상은 위험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야 긁는 걸 멈춘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긁어 부스럼’인 경우가 많다. 어쩌면 불안과 허무 역시 긁어 부스럼은 아닐까 고민해 본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면 되는 것 아닐까. 괜히 막으려고, 치유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다 결국 지쳐버리고 마는 것 아닐까? 그렇게 불안은 지나가고 허무만 커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과 우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어쩌면 우리가 겪는 불안과 우울은 그저 가벼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금방 딱지가 생기고 아물며 지나가버릴 작은 생채기일 수도 있다.



 너무 심각해지지 말자. 그리고 상처가 낫는 중에는 긁지 말자. 그 두 가지만 잊지 않아도 우리의 마음은 수술까지 갈 일이 없어진다. 그리고 많이 공유하자. 자신의 상태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해 보자. ‘이런 상태에는 약도 없어’, ‘이런 문제는 혼자 해결해야 해’라는 생각은 파도를 가로막거나, 파도를 향해 손을 밀쳐내는 행위이다. 스스로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생각을 버리고, 문제 위에 올라타자. 그리고 그것이 순풍을 만나 빨리 빠져나가길 바라며, 자신을 지지해 주고 응원해 줄 사람을 찾아. 만약 찾을 수 없다면 내게로 오라. 우리는 한 배를 탔으니까.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


작가의 이전글 왜 카페는 커피 마시러가는 곳이 아닐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