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영화' 보다는 '여러번 본 영화'

by 오제이


아내와 영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영화 보는 감각이 서로 잘 맞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엔 《퓨리오사》를 봤는데, 영화보다 리뷰가 더 길었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았을까.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건네는 것을 좋아하고, 또 다른 이의 시선을 들여다보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누군가 우리에게 주제 하나만 던져주면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


영화를 다 본 후에도 우리의 호기심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퓨리오사라는 인물을 넘어서 매드맥스 세계관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정보를 찾아 헤매다, 유튜브에서 매드맥스 시리즈 전체를 짚어주는 한 영상에 도달했다. 감독의 커리어와 연출 의도를 섬세하게 짚어낸 유튜버의 해석은 흥미로웠고, 우리는 그의 시선과 우리의 감상을 맞대보며 또 한참을 떠들었다. 참, 우리는 정말 말이 많은 부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애써 이해하려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 비록 의도와는 다른 결론을 내리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 진심으로 붙잡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깊고도 벅찬 감동이 밀려들지 않을까. 나는 그래서 영화 관람이 끝난 뒤에도 할 이야기가 많은 작품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감상을 나누는 그 시간들이 좋다.



한 번은 이런 날도 있었다. 잠들기 전, 아내에게 가볍게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가 밤을 새우고 말았다. 그날 우리의 주제는 '여러 번 본 영화'였다. 이미 '인생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몇 번이고 나눠서 서로의 취향은 충분히 익히 알고 있었지만, 여러 번 본 영화는 조금 다른 결의 질문이었다. 우리는 그 차이에 대해 곱씹고 파고들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또 떠들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며 우리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여러 번 보게 되는 영화란, 큰 사건이 없고 대단한 빌런도 등장하지 않는 잔잔하고 따뜻한 영화라는 것. 물론 무엇이 큰 사건이고 누가 대단한 악당인가 하는 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전반적으로 따뜻한 영화에 끌린다. 이를테면, 《기생충》처럼 숨이 막히도록 완벽한 영화는 두 번 보기 쉽지 않다. 반면 《인턴》 같은 영화는 언제든 부담 없이 재생 버튼을 누를 수 있다. 이 차이에 대해 선을 긋는 건 평론가의 몫으로 넘겨두고 싶다. 우리는 아직 그만큼의 내공은 없으니까.



나는 내 삶을 '다시 보고 싶은 영화'로 만들고 싶다. 매드맥스나 반지의 제왕처럼 웅장한 세계관을 창조하는 거대한 서사를 꿈꾸기보다는, 누구든 편하게 다가와 안부를 묻고, 함께 웃고,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장면들이 많았으면 한다. 그렇게, 다시 보고 싶은 장면처럼 곁에 머무는 사람이고 싶다.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


keyword
작가의 이전글거울 속의 나와 셀카 속의 나는 왜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