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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소설?

by 오제이


작년 7월, 책 추천이 홍수처럼 밀려왔다.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니지만, 걸작이라는 소리만 듣고 무작정 장바구니에 쏟아 넣고 고민도 없이 결제 버튼을 눌렀다. 괜한 허영심에 충동구매를 했다. 전자책으로 사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가뜩이나 좁은 작업 공간에 책을 모셔두고 살 뻔했다.


그로부터 1년 하고도 2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장바구니에 있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 책들 가운데 한 권을 펼쳐보았다. 책의 서문을 읽으며, 내가 왜 이런 책을 샀나? 싶을 정도로 생소한 기분이 들었다. 내게 이 책을 추천해 준 사람이 정말 이 책을 읽어보았는지도 의문이었다. 내 주변에 이런 취향을 가진 사람이 있을 리 없는데. 누구의 추천이었을까?


내가 이 묵혀둔 책을 다시 꺼내기로 결심한 건 얼마 전 읽은 소설 <마침내, 안녕> 때문이다. 잔잔한 문체에 적당히 먹먹한 서사가 매력적인 그 책을 읽으며, 나도 한때 소설을 탐닉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때는 소설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책을 덮을 수가 없어서 이동하는 중에도 책을 봤다. 심지어 술 약속에 갈 때도 옆구리에 책을 끼고 갔는데, 신호등에 잠시 붉은 불이 들어왔을 때도 횡단보도에 서서 책을 펼칠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언제부턴가 실용서나 교양서만 보게 됐다. 아마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던 날부터였던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정보 전달을 위해 만들어진 책만이 진짜 책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소설을 한낱 반찬 즈음으로 취급하고야 말았다. 게다가 굳이 반찬 중에서도 그 지위를 논하자면, 아마 콩자반 정도의 위치가 아니었을까? 배가 몹시 고프고 먹을 게 아무것도 없어야 비로소 젓가락이 가는, 절대 메인으로 취급받을 수 없고, 여러 찬이 있을 땐 손이 잘 안 가는 그런 느낌말이다.


그러던 올해 9월의 어느 날, 우연히 전자책 구독 서비스에서 읽은 소설이 마중물이 되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소설에 관한 흥미를 끌어 올리고야 말았다. 잊고 살았던 소설의 매력에 다시금 눈 뜨게 된 것인데, 그로 인해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들어 기이한 느낌을 받는 중이다. 설렘은 설렘이지 왜 두려움까지 느끼냐면, 소설이 지닌 특유의 오락성과 중독성에 정신을 온통 팔린 나머지 예정에 없던 시간까지 과소비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어서다.


그리하여 오늘, 잊고 지내던 책을 펼치며, 나는 속으로 두 가지 상반된 소망을 기도했다. 하나는 책이 너무너무 재밌어서 순식간에 읽길 바라는 마음이며, 다른 하나는 책이 무진장 어렵고 지루해 1장도 채 못 읽고 덮어버리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과연 이 책으로 인해 소설에 대한 흥미는 더욱 불타오르게 될까, 아니면 잠시 잠깐 타오르는 폭죽 같은 불장난으로 남게 될까. 두근대는 마음으로 책장을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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