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동동 뜬 오이지를 건져먹는 여자를 남자는 신기한 듯 바라본다. 도대체 그걸 뭔 맛으로 먹느냔다. 여자도 식탁 위의 오이지 사발이 낯설 때가 있다. 지금 무얼 먹고 있는 건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오이지 그릇을 보노라면 별 생각이 다 든다. 넌 누구니? 오이지를 바라본다. 아무 치장도 없이 오로지 맹물과 오이뿐인 큰 사발을 행여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부끄러워질 것 같다. 손님이 온다면 감출 것도 같다. 아무 잘못도 없는 오이지가 그런 내막을 안다면 얼마나 서운할까.
탕수육에 자장면을 시켜놓고 정작 배달된 음식엔 손도 대지 않으면서, 오이지만 먹어대는 여자를 누가 이해할까. 남자는 기가 막히다는 듯 노려보더니 오이지 하나를 건져 입에 넣는다. 우적우적 씹는 표정이 심상찮다. 진짜 이걸 뭔 맛으로 먹느냐고 여자를 향해 어깨를 으쓱한다.
“나도 몰라. 더운 여름엔 이게 최고야. 이걸 먹으면 밥이 넘어가. 내 속을 씻겨주는 것 같아. 느끼하고 텁텁한 속을 지우고 말끔하게 정리해주거든. 신기해.”
여자는 랩을 하듯 무심하게 중얼거리며 오이지 하나로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다. 언젠가 보았던 낯익은 장면도 스친다.
“엄마, 이걸 뭔 맛으로 먹어?”
밥상 위에는 애호박 숭덩숭덩 썰어 넣은 갈치조림이 있었다. 국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을 정도로 조림은 국물이 자작자작했다. 장날 땡볕을 마다않고 장을 봐 온 엄마가 여름 오후 갈치조림을 했다. 그날 그녀는 갈치조림으로 배를 채웠고, 엄마는 오이지 하나로 밥 한 공기를 비웠다. ‘그걸 뭔 맛으로 먹느냐’고 소리쳤던 장면이 휙 스쳐간다. 남자가 여자에게 외치는 표정과 흡사하다. 갈치조림을 두고도 오이지만 먹던 여자, 탕수육을 시켜두고도 오이지만 먹은 여자.
“자장면이 불어 터졌어. 탕수육 아까워서 어떡해,” 남자가 말한다. 넌 먹지도 않을 거면서 왜 이렇게 많이 시킨 거냐고 타박이다.
“먹으려고 했지. 그런데 안 먹히는 걸 어떡해. 매스꺼운 속이 그 맛있는 걸 거부하네.”
차를 탈 때만 해도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맘껏 먹어야지! 생각했다.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였다. 배도 고팠으니까. 현관문을 들어서자 탕수육이 배달됐다. 빠른 세상이다. 똑똑한 배민에게 맡기면 무엇이든 척척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좀 느긋하게 시킬 걸 후회한다. 손을 씻고 우선 탕수육 큰 덩어리 하나를 입안에 밀어 넣는다. 그러나 속이 그걸 거부한다. 차멀미를 했던 탓이다. 더위로 땀을 너무 많이 흘린 것도 이유이다.
탕수육을 밀어놓고 냉장고에서 오이지 사발을 꺼낸다. 뒤집힌 속을 가라앉힐 수 있는 것은 맹물에 담가놓은 오이지밖에 없을 것 같아서다. 햇반을 데우며 오이지 국물부터 먼저 마신다. 그만 속이 확 뚫린다. 밥 한 숟가락에 오이지 하나, 밥이 넘어간다. 입맛이 돈다. 내장이 제자리를 찾아 안정을 찾는다. 오이지 국물과 양념하나 없는 오이지 한 조각이 속을 평정한다.
오이지를 닮은 한 사람을 생각한다. 내세울 수 없는 한 사람. 드러내고 싶지 않은 한 사람. 누군가 보면 부끄러워지는 한 사람.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촌부, 늙어버린 여자. 그렇게 쓰고 나니 저절로 눈물 한 방울 또르륵 흐른다. 자신도 모르게 의식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눈물일 것, 엄마에 대한 참회의 눈물일까. 그녀의 기억 속 엄마는 항상 늙어 있었다. 모두 할머니라고 불렀고 또는 당연하게 할머니니? 물었다. 엄마를 할머니라 부르는 사람들이 싫었고, 엄마가 늙은 것이 싫었다.
맹물에 담가놓은 맑은 오이지 사발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버젓이 손님상에 오를 수도 없는 그러나 가장 입맛을 당기는. 남이 볼까 부끄러워 숨겨 놓는 존재. 만인 앞에서 “내 엄마야!”라고 당당하게 소개해 본 적이 없었듯, 몰래 밀쳐뒀다 혼자 먹는 볼품없는 오이지.
뒤로 은근슬쩍 방치하듯 두고 보았던,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이방인 같았던 한 사람, 엄마를 생각한다. 밥을 뜨기 전 국물부터 마시게 되는 오이지 소금물 같은, 한 조각 입에 넣으면 후룩 느끼한 속을 퍼즐처럼 편하게 재생시키는 오이지 같은, 그런 사람 엄마. 양념이 필요 없는 천연의 맛 같은, 엄마와 딸. 두 여자는 여름날 텁텁한 속에 오이지만 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둘은 다른 듯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