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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gang Dec 14. 2022

"그렇게 기도하니까요"

사랑은 온유하며





아침 6시 그는 출근을 합니다. 그가 현관문을 나서면 저는 거실 중앙에 앉아 무릎을 꿇습니다. 교회 밴드에 올라오는 설교문을 읽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그리고 기도합니다.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내가 기도해야 할 제목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마음을 모읍니다. 주위 기도가 필요한 사람부터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는 시간, 이 나라의 안녕과 질서. 정치 경제 사회문화를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남편을 딸들을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를 때면 울컥 눈물이 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특별히 그를 위한 기도를 더 깊이 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이 나를 이끈다는 강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기도하므로 그를 위한 간절한 소원을 이룰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이 있을까 싶습니다. 기도를 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설령 내가 기도한 것들이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나는 기도했으므로 모든 결과는 응답이라 여깁니다. 설령 실패로 이어져도 내가 기도했으므로. 그분의 뜻이 아니려니. 또는 다른 뜻이 있으려니, 믿음으로 연결합니다. 기도는 나의 특권이고 그분의 특권이라 여깁니다.


“…그렇게 기도하니까요."

제 카톡 프로필 메시지입니다.


마이클 랜돈 감독의 영화 <사랑은 온유하며> 명대사이기도 요. 동검도 예술극장에서 2년 전에 본 영화입니다. 영화를 소개하자면요.


1900년 서부개척 시대가 배경입니다. 주인공 마티 부부는 결혼식을 올리고 서부로 이동하던 중 도망가는 말을 잡으려다 남편이 바위에 떨어져 세상을 뜨고 말죠.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클라크라는 남자가 다가와요. 홀로 딸을 키우며 살고 있던 클라크는 마티에게 자신의 딸을 보살펴주면 내년 봄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마차를 마련해 주겠다고 제안하죠. 시대 배경상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한 집에 사는 것은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라, 형식적인 결혼식을 치른 계약결혼 같은 것이었어요. 홀로 딸을 키우는 클라크의 삶도 만만치 않아요. 그러나 근면 성실함. 마티와 함께 동거하며 살아가는 그들 삶은, 사랑은 이런 것이구나,를 가슴이 뭉근하도록 느끼게 해 주거든요. 그 어느 것 하나라도 결코 쉽지 않은 삶이지만 클라크에게는 그가 믿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사는 삶이 있더라고요. 클라크는 마티에게 말해요. 같이 길을 걷고 있을 때 넘어지는 걸 막을 수는 없지만 곁에 있어줄 수는 있다고요. 그는 늘 긍정적이지요. 현실은 만만한 것이 없고 그 골짜기에서 빛은 보이지 않지만 그는 늘 소망을 말하거든요. 내일은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죠. 묵묵히 기다리고 묵묵히 참아주고 묵묵히 보살피고 배려하는 한없이 깊은 클라크의 마음이 보여요. 마티가 물어요.(정확한 질문이 생각나면 좋겠는데 생각이 안 나요. ㅠ) 뭘 믿고 그렇게 긍정적이냐는 그런 류의 질문이었던 것 같아요. 눈 내리는 그 골짜기 언덕, 그가 앉은 바위, 오직 보이는 곳은 첩첩 산 뿐이지만 거기가 교회이고 기도의 처소였던. 그 기도소에서 클라크는 마티에게 말해요.


"그렇게 해달라고 기도하니까요."


그렇게 기도했으니까 반드시 응답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인 것이죠. 그 순간 옆에 있는 신의 존재 즉 클라크가 믿는 하나님의 존재를 마티도 느끼는, 평화를 보았어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감동이 너무 커서 소리 없이 눈물만 주르륵 흘렸던. 웅웅~~ 나에게만 들리는 그 특별한 울림. 서부시대의 그들과 현재의 나를 잇는 사랑의 울림 말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니까. 기도할 수 있음이 곧 응답이라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말씀보다 더 가슴에 사무쳤던 그 영화 그 장면. 사랑에는 희생과 배려와 책임이 따른다는, 사랑의 온유함이 어떤 것인지를. 사랑은 이래야지. 그 한방으로 그 한 장면으로 사랑을 송두리째 설명해버린. 기도는 그런 것이고 사랑은 그런 것인 거죠.


일주일이면 삼사일 교회 성전으로 새벽예배에 갔거든요. 그런데 남편의 근무조건이 바뀐 2년 전부터 남편의 새벽 출근으로 예배에 나가지 못했어요. 이후 얼마간은 늦도록 잠을 잤지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죠.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죠. 클라크가 조용히 읊조린 "그렇게 해달라고 기도하니까요." 그 말의 깊은 의미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요.


기도를 마치고 나면 거실 가득 햇볕이 듭니다. 점점 더 길게 뻗어가는 햇살의 길. 따뜻한 무차 한 잔을 들고 거실 큰 창 앞에 섭니다. 후룩후룩 뜨끈한 무차 한 모금, 무차 향을 넘기며 서 있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00님~~ 카톡 프로필 문구가 궁금해서요. 혹시 시간 되시면 무슨 의미인지 알려주세요♡ 바쁘시면 담에 만나서 이야기해주세요~~♡ 평안한 저녁되세요.”



교회 권사님께서 제게 보낸 톡입니다. 그에 대한 답이 오늘 글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 4-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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