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내린다던 그녀가 갑자기 신음 같은 감탄사를 연발하는 거야. 사진을 찍는 소리도 들렸어. 이젠 놀랍지도 않아. 그녀가 햇빛을 보고 있다는 걸 나는 이미 눈치챘기 때문이지. 햇볕에도 색깔이 있다고 그녀는 말하더군. 봄이 다르고 여름이 다르고 가을도 겨울도 다 다르다고. 아침이 다르고 저녁이 다르다고. 겨울빛은 어떠냐고 물었지. 그녀의 대답은 이랬어. 겨울빛은 희고 푸르다고. 그리고선 소리쳤어.
“여 봐! 거실로 드는 햇볕의 길이가 달라졌어!!!”
매일 보는, 매일 뜨는 햇볕이 무에 그리 놀라운 건지, 무에 그리 신기한 건지, 그게 그리 감탄할 일인지, 나는 늘 의아할 뿐이야. 매일 아침 거실로 쏟아지는 빛에 넋을 잃고 감탄을 하거든. 변함없이 말이야. 그녀가 하는 말은 햇볕도 계절마다 색깔이 다르니 어찌 놀랍지 않겠느냐고. 가장 따뜻하고 빛나는 햇살은 겨울 햇살이라고 했어. 겨울나무 가지에 쏟아지는 햇살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묻더군. 가만히 바라봤지. 이어진 대답은 겨울 햇살은 말할 수 없이 설레게 한다나? 햇볕과 나무의 사랑이 눈물겹다는 거야. 겨울 햇볕이 나뭇가지를 어루만지는 그 섬세한 사랑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봄이 오는 건 햇살에 대한 사랑의 보답이라고. 방충망을 투과하는 아침볕은 살아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는 거야.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스며드는 빛살을 느껴보라고 외치는데 나는 그저 고개 끄덕여줄 수밖에.
그런 그녀를 보면 나도 덩달아 행복해져. 왠 줄 알아? 그녀가 좋아하는 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야. 햇볕 바람 나무 풀 등 모두가 자연이야. 산책하고, 햇살보고, 물장구치고, 별 헤기, 달빛 즐기기, 무지개 잡기 그리고 책 읽기... 그녀가 좋아하는 모든 것은 자연적인 것들이지. 명품 가방, 명품 보석에는 관심이 없어. 진짜야. 가장 좋아하는 건 능내리 산책이야. 매일 가도 매일이 다르다고 말해. 매일이 새롭다고 말이야. 그게 진심이란 게 보여. 그의 표정은 맑고 눈부시거든. 그게 진심이 아니고 뭐겠어.
지난여름이었어. 가족이 함께 퇴촌 드라이브 길을 달릴 때였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데 어디쯤에서 신작로를 가로질러가는 맑은 물줄기가 있더라고. 도랑물도 철철 흐르고 있었고. 그녀가 갑자기 소릴 질렀어. 멈춰! 멈추라고!! 나는 무심하게 그냥 지나쳤지. 갑자기 화를 버럭 내며 비명처럼 멈추라고 소릴 지르더라고. 나는 너무 놀라 멈췄고 후진을 했어. 결국 물길이 흐르는 도로에서 그녀가 한 일이 뭔 줄 알아? 신발을 벗고 스커트를 앞으로 모아 그러쥐고서 그 물길을 첨벙첨벙 걷는 거였어. 아이처럼 좋아하면서 말이야. 헛웃음이 나왔어. 이내 크게 외치듯 웃었지. 나도 함께 첨벙첨벙 아이들도 첨벙첨벙 그렇게 걸었지. 그 여름을 말이야.
아, 이 여자는 이게 사는 방법이구나. 이것이 그녀의 힐링이구나. 그녀는 자연이구나. 자연에 스며들어야 행복한 사람이구나! 깨달았지. 그러니 매일 아침 발코니로 거실로 쏟아지는 빛에 감탄하는 것이 이젠 놀랍지도 않은 거지. 타닥타닥 타닥타닥... 방충망으로 빛이 투과하는 소리를 들어보려 애쓰는 중이야. 토요일 아침이면 나도 바람이 되고 햇살이 되고 나무가 되려고 애쓰는 중이야. 희고 푸르고 눈부신 겨울햇살을 함께 읽을 수 있어야 하니까. 그게 함께 가는 길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