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 넌 누구냐? 카사 밀라&구엘 공원
♬ 마로니에 - 칵테일 사랑
그동안 나는 주로 가족이랑 여행을 다녔다. 그래서인지 다소 차분하게,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는 여행에 익숙해있었다. 물론 이번 여행을 계기로 현지인과 만나서 술도 먹고, 마음껏 떠들며 노는 익스트림한 방식이 내게 좀 더 어울리다는 걸 깨달았지만… ㅎㅎ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나는 법. 머리를 싹 비우고 에너지를 분출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조용히 사색에 잠긴 채 생각의 재료를 채워넣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래서 여행의 둘째 날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천재적인 건축가, 가우디의 발자취를 쫓으며 보내기로 했다.
가우디를 제외하고서는 바르셀로나를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르셀로나 관광에 있어서 가우디의 존재는 가히 절대적이다. 거의 모든 여행사에서 바르셀로나 관광 일정을 짤 때는 가우디 투어를 중심에 놓는다. 책을 읽어도 가우디, 영상을 봐도 가우디, 먼저 여행한 사람에게 물어봐도 가우디. 처음 스페인에 가겠노라 결심한 순간부터 가우디의 이름은 지겨울 정도로 내게 따라붙었다. 도대체 그 놈의 가우디가 누구길래?
안토니오 가우디. 1852년에 태어난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다. 1926년에 사망할 때까지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구엘 저택, 구엘 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등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많이 지었다. 그가 만든 작품들은 지금까지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학도들에게는 그저 ‘빛’... 그 자체인 전설적인 인물.
(안토니오 가우디 1852~1926)
마음 같아서는 하루 동안 가우디의 모든 작품을 다 보고 싶었지만 이 날 해변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불꽃놀이 축제가 열린다길래 오후 동안 카사 밀라, 구엘 공원만 보고 저녁에는 해변에 가기로 했다.
성공적인 ‘가우디 투어’를 하려면 부지런해야한다. 당일에 부지런히 걸어다녀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최소 그 날 오전부터 꼼꼼히 예약을 해야한다.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을 하지 않고 가면 오래 줄을 서서 기다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예약해서 원하는 시간대에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그 날 나는 스스로를 다시 봤다. 전 날에 그렇게 술을 퍼마셨는데도 일찍 일어나서 표를 예매했다고? 내가 이렇게 부지런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니! 심지어 그 날 조식도 먹었다!! 가족이랑 여행 갔을 때는 잠도 다 못 깬 채로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충전'이나 ‘주유'의 느낌에 가깝게 조식을 대하던 나였는데…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습관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고 싶다면 환경을 바꾸라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또,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우선 그 무언가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라던 연기학원 선생님의 말씀도. 내가 그렇게나 형편없는 사람은 아니었구나.
호텔에서 주는 푸른 사과를 한 입 베어 먹고, 카사 밀라로 발걸음을 향했다. 카사 밀라는 가우디가 1906년에 설계를 시작해 1912년에 완성한 고급 ‘아파트’다. 지금도 4가구인가가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 ‘아파트'라면 높게 솟은 네모 각진 몸체가 익숙하겠지만, ‘카사 밀라'는 뭐랄까… 매끄럽게 흐르는 모양새다. 가우디의 건축 방식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자연의 모습에 착안한 ‘곡선’인데, ‘카사 밀라'는 그 전형이라 할 만 하다. 그래서 ‘라 페드레라' (채석장)이라는 독특한 별명도 갖고 있다.
‘카사 밀라'가 처음 세상에 공개 되었을 때는 비판의 목소리가 매우 컸다고 한다. 사실 가우디의 많은 작품이 그의 생전에는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고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살던 세상은 모든 것이 이성에 의해 계산되고, 예측 가능함이 미덕으로 숭상되던 모더니즘이 지배하던 곳이었다. 그런 시대에 살면서 자연과 곡선의 미학을 무려 건축에 반영한 가우디는 타고난 이단아일 수 밖에. 오죽했으면 가우디가 건축학교를 졸업할 때 교장이 “지금 내가 이 졸업장을 천재에게 주는 건지, 미친놈에게 주는 건지 모르겠다.” 라고 했을까.
물론 가우디는 일반적인 천재의 삶과는 달리 살아서도 ‘난 놈'으로 인정을 받고 천수를 누렸지만, 그의 작품이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가지게 된 건 포스트 모더니즘이 발흥한 이후라고. 이러나 저러나 더 이상의 설명은 가우디가 시대를 앞선 ‘또라이 천재' 라는 사실의 부연일 뿐이다.
‘카사 밀라'에 들어서면 곡선이 사방을 조용하게 감싸는 로비를 먼저 보게 된다. 가운데가 뚫려 있는 구조의 건물이라서, 마당이라 해야할지 현관이라고 해야할지 어쨌든 이 곳에 사는 가구 모두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잠시 숨을 멈추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가우디. 당신은 도대체 누굽니까.’
1층 바로 다음 순서는 옥상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금세 바르셀로나 전경이 한 눈에 보이는 옥상에 닿는다. 시선 가는 모든 곳이 바르셀로나라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가 않는다.
또, 넓직한 풍경 사이 사이에는 카사 밀라의 굴뚝이 우뚝 서 있다. 투구를 쓴 장수 같이 생긴 독특한 모양이 눈길을 끄는데, 액운을 막아주는 수호신 같은 역할로 설계된 친구들이라고 한다. 마치 우리네 ‘장승’처럼.
나는 이 모든 풍경에 홀린 듯, 넋을 놓고 그저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내 옆에서 줄곧 서성이던 한 동양인 여성분이 말을 걸어왔다.
“한국 분이시죠?? 와 대박!! 그럼 혹시 그 분 맞나요??? 그… 설명… 하시는 분…?”
내가 더 대박. 같은 나라 사람을 마주친 것도 참 기쁘고 신기했지만, 여기서 나를 아는 분을 만나다니. 참 넓은 것 같으면서도 좁은 세상이다. 정말 착하게 살아야겠구나… ㅋㅋ
그 분의 이름은 ‘로라’. 한국식으로는 ‘지연’. 나랑 동갑이시고, 아일랜드에서 생활하시는데 지금은 한 달 동안 유럽을 주욱 돌아보는 중이라고 하셨다. 로라씨도 이 날 계획이 ‘가우디 투어’를 하는 것이었어서, 목적이 맞은 우리는 구엘 공원까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우선 카사 밀라를 좀 더 만끽하고!
옥상에서 인생샷을 충분히 건진 우리는 계단을 타고 내려와서 카사 밀라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자연의 모습에 착안한 곡선이 가우디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이라더니 ‘역시’, ‘과연’. 인체의 오묘한 원리가 건물 곳곳에 반영된 것이 정말 흥미로웠다. 등갈비 뼈를 연상케 하는 벽면은 특히나.
척추 동물이 등뼈로 지탱된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그러나 새삼스럽지 않은 사실을 새삼스럽게 만드는 능력이 바로 창의성이다. 세상에 아예 없던 무엇을 새로 만드는 건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미 존재하는 것을 새로운 질서로 배치하고 조합하고 연결하는 것 또한 그에 못잖게 위대한 인간의 일이다. 가우디. 정말 위대한 인간이다.
카사 밀라를 얼추 둘러 보고 나니 또 배가 고파졌다. 이런 날에는 내가 하루에 세 끼씩 꼬박 꼬박 밥을 먹어야만 움직이는 몸을 타고 났다는 게 원망스럽다. 인간은 참 연비가 좋지 않은 생물이다. 카사 밀라 바로 앞에 좋은 식당이 있어서 고민할 것도 없이 털썩 자리에 앉아버렸다. 메뉴를 확인하니 가격은 좀 비싼 편. 무엇을 시켜야 할 지 몰라서 옆자리 꼬마가 맛있게 먹고 있는 돈가쓰 비스무리한 음식을 주문하려는데
아이고, 키즈 메뉴란다. ㅋㅋ
그래도 저 메뉴를 포기할 수 없었다. 가장 가격이 합리적이고, 먹음직스러워 보였기 때문에. 키즈메뉴에 1인 1음료를 시키는 조건으로 웨이터 아저씨와 극적인 쇼부를 봤다. 음료는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전통 칵테일, 샹그리아로 주문했다.
샹그리아를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와인에 사과와 오렌지 레몬 등 다양한 과일과 탄산수 혹은 사이다를 섞어 하루 정도 차갑게 숙성 시키면 된다. 무알콜을 원한다면 와인 대신 포도주스를 넣으면 되고, 탄산수를 넣을 거라면 설탕을 좀 쳐서 단 맛을 살려주는 게 좋다. 이렇게 만들어진 샹그리아는 와인보다 좀 더 달큰하고 먹기에 편해서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맛있게 먹을 만하다. 여름에 참 잘 어울리는 산뜻한 음료다.
스페인식(?) 돈까스에 샹그리아 한 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식사였다. 돈까스는 9유로, 샹그리아는 5유로. 물론 한국 기준으로 저렴한 식사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둘이 합쳐서 어제 먹은 모히또 값이 채 되지 않았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내내 모히또는 이게 비싼 건지 아닌지 판별하는 나름의 잣대로 역할을 했다. ㅠ)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구엘 공원으로 가는 길. 저 쪽에서 얼굴을 하얗게 칠한 사람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혹시 ‘마임’이라도 보여주려나 싶어서 지켜보는데, 다짜고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는 거다. 물론 나도 해외여행을 원 투데이 하는 게 아니라서 사진을 찍으면 분명 돈을 달라고 할 건 알았지만, 고작 사진 찍는 건데 달라면 얼마나 달라고 할까 싶어 그냥 가만히 있었다.
4명이 2.5유로씩. 총 10유로를 달란다. 뭐 이런 양아치가 다 있나. 사진 한 장 찍어놓고 13000원을 달라고? 하다 못해 마임이나 뭐 똥꼬쑈를 하는 성의라도 보이던가. 아무것도 없이 10유로? 네오나르도 디카프리오랑 사진을 찍어도 그렇게는 안 내겠다.
기가 막혀 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크게 인심 써서 네고하는 것인냥 5유로를 부른다. 짜증나서 따지려던 순간 ‘극대노’한 로라씨가 먼저 나서서 녀석을 쫓아냈다. 다시 한 번 느꼈다. 여행지에서 먼저 사진을 찍자고 다가오는 사람은 결코 믿어서는 안된다. 같은 관광객 신분이라면 괜찮지만 요상한 분장을 하고 다가오는 경우라면 100%다. (사진을 꼭 첨부하고 싶었는데, 다들 기분 나빠서 지웠다고... 참으로 아쉽게 됐다.)
카사밀라에서 구엘 공원까지는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 정도 가야 한다. 바르셀로나 대중교통의 최고존엄은 인원에 상관없이 버스, 지하철 모두 사용 가능한 ‘T10’ 티켓이다. ‘T10’ 티켓 하나로 4명이 알뜰살뜰하게 버스를 타고 구엘 공원에 갔다.
햄버거와 콜라, 봉준호와 송강호, 병무청과 ‘씨발’ 처럼 환상의 시너지를 내는 조합이 있다. 구엘과 가우디도 그렇다. 구엘 백작은 카탈루냐 지방의 재력가로서, 40여 년 동안 가우디를 든든하게 후원한 인물이다. 1883년부터 구엘 가문의 전속 건축가로 임명된 가우디는 구엘 백작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며 ‘구엘 저택' , ‘구엘 별장' , ‘구엘 공원’ 등 수많은 걸작을 쏟아냈다. 그 중 ‘구엘 공원’은 가우디와 구엘의 ‘브로맨스’를 대표하는 최대의 역작이다.
어느 날, 징글맞은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구엘 백작은 가우디에게 전원 주택 건설을 의뢰했다. 가우디는 지중해와 바르셀로나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최적의 장소인 페데라산을 부지로 결정하고, 60여 채의 건물이 있는 대규모 주택 단지를 건설하려고 하였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공사에 차질이 생기면서 3채의 건물만 있는 공원을 만들게 되었다. 구엘 백작에게는 다소 딱한 일이지만 바르셀로나 시민들에게는 어마어마한 행운인 셈. 훗날 구엘 가문이 공원을 바르셀로나 시에 기증하면서 구엘 공원은 모든 시민의 공간으로 거듭났다.
구엘 공원에서도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한 가우디 건축의 철학은 그대로 나타난다. 가우디는 산을 깎고 흙으로 계곡을 메우는 일반적인 건축 방식을 거부하고, 과정이 좀 성가시고 불편할지언정 산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채 공원을 만들었다. 등고선을 따라 도로를 깔고, 계곡 위로 다리를 놓는 등의 방식으로. 그래서인지 구엘 공원은 물결 모양 모자이크로 꾸며진 건물 자체의 화려함과는 별개로, 전체적으로는 푸근하고 따스한 느낌을 준다.
구엘 공원을 한없이 마냥 걷다가 어느새 산 가장 높은 곳에 이르렀다.
바르셀로나의 모든 모습이 다 보였다. 저 멀리 옥수수를 닮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보였고, 더 멀리 짙푸른 지중해도 보였다. 눈으로만 보는 게 아쉬워 코로도 보고 귀로도 보았다.
이 도시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여기서 떨어져 의식을 잃더라도, 그래도 지구는 돌테지. 하지만 내가 감각하지 않는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누가 내게 눈부신 사랑을 가져 줄까. 이 세상은 나로 인해 아름다운데.
언젠가 지금 내가 감각하는 바를 아쉬워해야한다는 사실을 아쉬워하면서 내려왔다. 로라씨와도 작별하고 우리는 다시 바르셀레노타 해변으로 향했다.
내려오는 길에 노란 리본을 보았다. 우리에게 ‘세월호 리본'으로 익숙한 그 노란 리본 말이다. 이 곳 사람들은 카탈루니아 분리 독립을 주장하다 수감된 양심수의 석방을 촉구하는 의미로 노란 리본을 단다고 한다.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노란 리본이 쓰이기 시작했는지 나는 모른다. 어쨌든 이 곳에서도 노란 리본은 희망의 심볼이구나. 2014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