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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범근 Oct 20. 2020

원래 져보면 세상이 달라보입니다.

실패를 받아들여야 할 때. 

오늘은 좀체 힘이 나지 않는 하루였다.  이유는 분명하다. 얼마 전에 참여한 서울국제지하쳘영화제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그럴리가 없을텐데 생각하며 몇 번이나 수상자 목록을 뒤져봤지만... 나는 떨어졌다. 내심 우승을 하지 않을까 망상을 펼치고 있었던지라 본선 진출도 하지 못했다는 소식은 참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머리가 어지럽고 입안이 썼다. 오랜만에 느껴보지만 내게 아주 익숙한 패배의 맛이었다.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음식이 서빙되는데에 정해진 순서가 있듯이 패배가 사실로 다가오기까지는 몇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첫번째 단계는 부정이다. 그럴리가 없어. 설마. 다시 확인해보자. 부질없는 행동을 몇 번 반복하다보면 쎄-하니 내 주변의 공기가 다르게 느껴지는 절망의 단계가 온다. 


 내가 패배를 할 때마다 보는 영상이 하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0년 부산지역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떨어졌을 때를 기록한 영상다큐, <새로운 날들>이다. (노무현을 좋아하고 말고를 떠나서, 패배 직후의 먹먹함과 열패감을 추스리는 과정을 가장 잘 담아낸 영상이지 싶다.) 거기 보면 이호철 전 비서관이 울고 있는 캠프 자원봉사자를 다독이는 장면이 나온다. 


https://youtu.be/PFqRgI9EByU


"처음 저보지예? 내는예, 의원님 선거만 이번에 세번째 집니다."


"나는 한 번도 져본 적 없어요."


"그지요? 져보면은 세상이 바뀌어 보입니다. 괜찮습니다."


 정말이다. 지면 세상이 달라보인다. 사실 달라진 것은 내가 나를 보는 시선, 그거 하나 뿐일텐데 말이다. 하긴. 패배하기 전보다 내가 조금 더 한심하고  못나보이게 되었으니 세상이 더 냉랭하고 삭막한 공간처럼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걸까? 만일 이겼다면. 세상은 원래 내게 포근하고 따뜻한 공간이었거니 생각했을 거면서. 


 고3시절, 대학에 줄줄이 낙방하면서 스스로가 정말 '잉여인간'이 된 것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수능이 끝난 뒤, 갈 곳 없고 할 일 없이 눈총이나 받는 게 일과의 전부이던 그 때.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입시박람회가 열리던 삼성동 코엑스에서 강동구 길동의 우리집까지 일부러 마냥 걸었던 기억이 난다. 걸으면서 시간을 보내지라도 않으면 하루는 쓸데없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11월 끝자락의 매선 공기는 너무도 차가웠다. 그러나 귓바퀴를 벌겋게 만들고 발가락을 얼어붙게 하는 찬바람보다 무서웠던 건 집에 가서 몸을 녹이면 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해야한단 사실이었다. 이 넓은 세상에서, 무엇하나 내게 허락된 일이 없어 보였다. 


그 무서운 잡념을 잊으려면... 뭐라도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영상을 만들었다. 내가 즐기는 일이었긴 하지만 그때는 말 그대로 활로(活路)를 찾기 위해서 그 일을 했다. 그리고 한국역사인물랩배틀을 만들 즈음부터 조금씩 패배의 쓴 맛을 잊어갔다. 의상, 소품, 배경 등등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이다보면 하루는 그 자체로 충만했다. 대박에 대한 염원은 언제나 있었지만, 내 처지를 잊고 눈 앞에 놓인 일들을 하나하나 처리할 때 나는 더 앞으로 나아갔다. 처지를 잊는다는 것.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것이 세번째 단계. '승화'이다.


 패배가 승화되는 건 운이 잘 풀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패배감이 두고두고 마음을 저릿하게 만드는 컴플렉스가 되거나, 아예 자포자기 후 주저앉아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니까. 대개 전자는 승리의 경험이 없을 때, 후자는 승승장구하던 이가 극복하기 힘든 큰 패배를 맞이했을 때 발생한다. 


 나는 내가 이 단계를 다 지나온 줄 알았다. 어린 시절 겪은 수모와 시련의 경험이 굴기의 바탕이 되어 큰 인물로 자라나는 것이 위인의 서사 아닌가. 수십만 구독자를 가진 주목받는 뉴미디어 창작가. 나는 그 한 지점을 이미 겪어냈으니 공들여 만든 단편영화가 공모전에 탈락해서 속 쓰려하고, 조회수가 100을 넘네 마네 하는 것에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그런 찌질함은 내 인생에서 다시 겪을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유튜버로서 제일 잘나가던 그 시절에는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퇴보라고 생각했겠지. 


 쓸데없이 비대해진 자의식 탓에... 오늘은 패배를 쿨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산다는 게 뭔가'까지 생각하고 말았다. 이게 꼰대지 뭔가. 지는 지면 안되는 놈인가. 아니. 그래도 억울하다. 이 영화, 정말 자신있게 잘 만들었는데. 그럼 내 최선이 고작 이 정도란 말인가?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그럼 내 길은 뭐지? 있기는 있나? 안돼. 또 이런다. 안돼. 안돼!!


 사실은 오늘만큼은 퍼질러앉아 마음껏 궁상을 떨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럴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 재수없는 날이었다. 이번주 일요일까지 라이프플러스 앰베서더 지원영상을 만들려면 씬 몇개라도 촬영을 끝내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터덜터덜 좀비같은 걸음으로 집 밖을 나서며 카메라를 들었다. 이것도 결국 헛짓거리 하는 거 아닌가 싶었기에 렉버튼 누를 기운도 잘 나지 않았다. 


마지못해 흐느적 흐느적 몇 장면을 찍다보니 생각보다 그림이 괜찮았다. 조금만 공을 들이면 더 예쁘게 나올 것 같아서 정말로 공을 들여보았다. 어? 가만히 있어봐. 좋은데? 집에 돌아와서 색보정을 하고, 자막을 넣고, 음악을 넣어보았다. 좋아. 아주 좋아. 어느새 찝찝한 패배의 뒷맛이 조금은 옅어져 있었다. 


 언젠가 주방에서 조리원으로 일하는 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다. 너는 도대체 왜 사냐고 내가 물었다. 요리할 때'만' 섹시해보이는, 어딘가 잘못된 요섹남. 그 놈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내가 오늘 점심으로 제육볶음을 먹고 싶다 쳐. 그럼 적어도 먹기 한 시간 전에는 재료를 준비해야겠지. 냉장고 다 채우고 나면 재료 썰고, 양념 만들고, 고기 굽고, 쉐낏쉐낏해서 불맛 살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제육을 일단 존나 맛있게 먹는 거야."


"그 다음은?"


"뭐긴 뭐야 새끼야. 설거지 해야지."


"그 다음은?"


"뭐긴 뭐야 새끼야. 저녁에 뭐 먹을까 생각해야지."


 다른 건 모르겠으니 일단 일용할 제육볶음을 맛있게 만드는데에 혼신의 힘을 다해보자는 '제육인생론'. 그래. 자꾸만 비참해지려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제육인생론'이 아닐까. 요리 몇 번 만들어서 판다고 내가 단숨에 백종원이나 고든램지같은 거물 외식 사업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그릇 한 그릇 더 나은 제육볶음 만들기에 매진하다보면 뭐라도 되리라. 그래 씨발, 설령 뭐가 안 되더라도, 내 앞에 있는 맛있는 제육볶음 한 그릇만큼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으리라.


"한순간의 패배가 모든 것은 아닙니다.

결코 헛일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고생 좀만 더 하고 갑시다."


영상다큐 <새로운 날들> 中 노무현 후보의 말. 


그는 이 말을 남기고 3년 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 


그런고로 오늘은 이만 자고,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지. 내일 눈 뜨고부터는 라이프 플러스 앰배서더 지원 준비에 최선을 다해보자. 떨어지든 붙든 일단은 해보자. 




*7월 17일, 서울지하철영화제에 탈락하고 난 후 쓴 글. 글 말미에 언급한 라이프플러스 앰베서더에도 나는 합격하지 못했다. 


그때 만든 자기 소개 영상.

https://youtu.be/BpKeAij0Ye8


나는 다시 무력함과 패배감을 헤치며 나아가는 중이다. 새로운 꿈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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