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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씀 Jan 04. 2020

2020년을 위한 뒤늦은 2019 회고록.

열심히 사는건 지겹고, 이젠 잘 살고 싶다.

보통 회고록은 연말에 새해를 맞기 전에들 쓰지만,

나는 게으르므로 쓰고 싶은 마음이 든 지금,

써보도록 하겠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이번엔 희한하게도,

핸드폰 잠금화면에 보이는 '2020년 1월 1일'이,

내게 그다지 낮설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연말이 되면 알 수 없는 우울함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편인데,

2019년에는 펭수가 박원순 시장과 함께

제야의 종을 치기 전  약 4시간만 우울했던 것 같다.

'한해가 감을 슬퍼하는 것도 결국,

다 에너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365일이 빽빽하게 담긴 한 해를

간결하게 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문득 내 스스로를 뒤돌아 보게 됐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내가,

나중에 나이를 지긋이 먹었을 때는,

나의 지난 날들을 어떤 문장으로 기억하게 될까.


...그래서 해봤다!


- 2011년: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암을 치유하겠다는 터무니없는 꿈을 가지고

6년제 약대에 입학.


- 2012년: 졸업 후 마주하게 될 진로가 꿈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좌절, 휴학, 한국으로 귀국.


- 2013년: 한국에서 대학교 1학년으로 재입학.


- 2014년: 야전공병으로 군 입대 후 산에서 끝없는 곡괭이질과 휴가를 따기 위한 발악.


- 2015년: 일말상초 이후 독서, 운동, 공부 그리고 마침내 전역. + 남포동에서 프리허그 도전.


- 2016년: 복학 후 교수님 지목으로 연구회 회장 역임, 또 다른 교수님 추천으로 인생 첫 인턴.


- 2017년: IT에 대한 열망을 갖기 시작해 1년짜리 미국 실리콘 밸리 마케팅 인턴 도전, 그리고 다시 출국.


- 2018년: UX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해 퇴근 후 독학 시작, 귀국 및 복학 후 원하던 스타트업 인턴 지원, 그리고 입사.


- 2019년: 인턴 연장제의 받고 학업과 근무 병행 후(두 학기동안) 8개월만에 퇴사, 그리고 원하던 회사에 고난 끝에 정규직으로 입사.



해마다 일어난 사건들이 하도 많아서 한 문장으로 줄인다는 것도 참 어려운 것이구나 싶다.


2019년의 목표는 처음으로

'열심히'가 아니라 '잘' 살자였다.

작년을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할 수 있으나,

정말로 '잘' 살았다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결과적으로는 잘 산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저 평소처럼 열심히 산 것과

상당한 '운'의 조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취업의 문턱을 넘고나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직장인으로서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입사하자마자 큰 프로젝트를 맡아

야근을 밥먹듯이 하다보니 지금은 예전처럼

자기계발에 힘을 쏟을 여력이 없어졌다.

글쓰기도 마찬가지고. 결국 다 핑계겠지만.


올해의 목표는 작년과 같은 '잘 살자'다.

하지만 작년의 '잘 살자'와는 사뭇 다른 느낌.

2019년에는 무언가를 이뤄내는 것이 목표였다면,

2020년은 내 자신을 정비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아직도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고 있기는 하지만,

운동도 좀 하고,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데이터 및 코딩 공부도 하고,

여러 사람들도 만나고, 글도 꾸준히 써보고.

(목표를 세워보니 결국 또 스스로를 돌본다기보다는

혹독한 한 해가 될 것 같은 느낌이긴 하지만)


아직 회사에 적응 중이다 보니

요즘엔 삶의 균형이 없어진 느낌이다.

무엇이든 잘 하고 싶다는 욕심이

회사에서도 그대로 들어나게 되고,

망할 놈의 책임감이 너무 과도해

자연스레 야근을 밥 먹듯이 하게 된다.


요즘 회사의 시니어 분들과 학교 선배들은

내게 '번아웃'에 대해 끊임없이

진지한 걱정을 해주고 있는데,

아직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내 성격이 이 모양인데 어떡하나.

물론, 나 역시 언제올지 모를

이 '번 아웃'을 가만히 주시하고 있기는 하다.


그토록 원하던 일을,

좋은 환경에서 하게 되었으니,

일을 오래오래 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좀 돌볼 필요가 있어보인다.


운동해서 체력도 기르고,

다른 분야 공부도 틈틈히 하면서 깊이를 키우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며 안목도 넓히고,

글을 쓰면서 지기 기록도 틈틈히 하면서

더 나아가 욕심을 좀 더 부리면,

진행하고 싶었던 사이드 프로젝트도 하고.


결론은 2020년 목표를 모두 달성하기 위해서는

야근을 줄여야 한다는 쪽으로 귀결되는 것 같은데,

이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오늘은 일단 헬스장부터 등록하러 가야겠다.

(부디 연말에 이 글의 마지막 줄이 부끄럽지 않길.)

매거진의 이전글 순간을 그려낸 영원한 화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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